생각의 편린들

국정원이 불법 해킹 의혹에서 살아남는 법

새 날 2015. 7. 1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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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국가정보원의 해킹 툴 구입 의혹 건은 두 가지 측면에서 볼 때 굉장히 놀라운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우선 해당 소프트웨어의 해킹 능력은 입이 절로 벌어지게 만들 정도로 가공할 만하다는 사실을 꼽을 수 있다.  어느 정도냐면, 얼마 전 영화 속에서 보았던, 말 그대로 영화나 소설에서나 등장할 법한 장면들이 해당 의혹과 함께 고스란히 오버랩되는 탓이다.  허구 세계에서나 나올 만한 기술들이 실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혀를 내두르게 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번 의혹은 근래 떠오르고 있는 생활 속 사물들 - 물론 아직은 대부분 전자기기 일색이다 - 을 유무선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정보를 공유하는, 사물 인터넷 환경이 주는 편리함의 이면에 감춰진 잠재적인 문제와 모순점들을 여실히 노출시키고 있는 사례 아닐까 싶다.  해당 기기들엔 고유 IP주소가 하나씩 할당이 돼 있을 테고, 때문에 이 자체만으로도 해킹의 대상이 된 채 그에 취약해지는 건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 끔찍한 상상도 일견 가능하다.  물론 공포 영화 따위에서나 등장할 법한 소재이긴 하지만, 첨단 의료기기 역시 조만간 사물 인터넷의 한 축을 이루게 될 테니, 이를 해킹하여 특정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 등이 결코 헛된 망상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이번 국정원 해킹 논란이 보여 주고 있는 셈이다.

 

ⓒ연합뉴스

 

두번째로 놀랍게 다가오는 사안은 다름 아닌 국가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이 이러한 불법 해킹 툴을 비공식 라인을 통해 구입하여 활용하고 있다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국정원은 14일 이탈리아 해킹팀으로부터 해당 소프트웨어를 구입한 사실에 대해 공식 시인했다.  그렇지만 국민을 대상으로 사용한 적은 없다며 못 박고 나섰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야만 휴대전화 감청이 허용된다.  따라서 제아무리 국정원이라 해도 국가기관이 임의로 해킹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불법에 해당한다. 

 

이를 구입한 37개 국가 중 우리나라는 19번째로 많은 8억6천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원은 해킹 툴 구입이 오로지 대공 감시를 위한, 즉 북한의 사이버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이었으며, 민간 사찰용은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껏 국정원이 벌여온 일련의 행동들을 반추하자면, 단순 해명만으로 국민들의 불안감을 완전히 불식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2년 총선과 대선 즈음, 이의 구입과 관련 질문이 유독 늘었다고 하는데, 대선 당시 댓글을 통해 공공연하게 선거 개입을 일삼았던 국정원의 흑역사가 엄연히 존재하는 데다, 당시 댓글사건에 대해 국정원 측이 내놓은 해명의 상당수가 거짓으로 밝혀졌던 터라 작금의 해명 역시 의구심을 품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는 누구를 탓할 사안이 아닌, 국정원 스스로의 문제다.



국정원은 그간 각종 정치 및 선거 개입과 간첩조작사건 등으로 인해 국민들 사이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이런 와중에 민간인 사찰이 가능한 불법 해킹 툴을 구입했다는, 그것도 댓글을 통해 선거 개입 활동을 벌이던 시기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은, 앞에선 국정원 개혁을 떠들어 오면서 뒤로는 여전히 국민 사찰 따위를 통해 불법 행위를 저질러 온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만에 하나 실제로 국정원이 휴대전화와 카카오톡 문자 등을 불법 감청했거나 해킹했다면 이는 심각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 이는 국정원의 원훈(院訓)이다.  이렇듯 국가에 헌신적인 데다 대공 및 대테러 보안업무나 해외정보 업무를 주로 담당하는 국정원이, 우리 국민을 적으로 간주한 채 감시해 오진 않았으리라 생각하고 싶다.  그러나 환골탈태를 선언하며 새로운 조직으로 거듭나겠다던 국정원이 공교롭게도 대통령선거 당시 댓글을 통한 선거 개입 활동으로 본분을 벗어나 있던 시기와 같은 때 해킹 툴을 구입한 정황은 아무래도 찜찜한 구석이 많다. 

 

국정원 스스로 국민을 대상으로 사용한 적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하고 나섰으니 그에 대한 충분한 검증이 이뤄지도록 국회 등에 긴밀하게 협조해야 할 테며, 이를 통해 결백을 증명해야 한다.  아울러 모든 정황에 대해 한 점 의혹 없도록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길만이 국민들의 불안을 잠재우는 첩경이요, 국정원이 사는 유일한 방법이란 점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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