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혐오 발언 규제, 신중해야 하는 까닭

새 날 2015. 6. 18.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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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이 성별이나 종교,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 등으로 상대방을 모욕하거나 위협하는 '혐오발언'을 규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를 위해 지난 1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혐오발언 제재를 위한 입법 토론회'를 개최하고 앞으로 이를 토대로 혐오발언 규제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언론에 알려진 바로는 주로 인터넷에서 사용되고 있는 '좌빨' '수꼴' '홍어' '과메기' '종북' 따위의 표현을 법으로 아예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제하겠다는 게 해당 법안의 핵심 취지입니다. 

 

우리 사회의 편가르기 문화는 이미 도를 넘어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까지 치닫고 있습니다.  비단 망국적 지역감정뿐만이 아닙니다.  정치적 지향을 달리하는 진영에 따라 서로를 헐뜯는 문화는 어느덧 치유 불가의 수준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한 비하 표현은 또 어떤가요.  종교 분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가치관과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자신보다 못하거나 만만한 계층을 향한 무한 적개심의 형태로, 아울러 정치적인 이유 등 특정 목적을 갖고 이뤄지는 온갖 혐오적 표현은 그 도를 한참이나 넘어선 지 오래입니다. 

 

ⓒ뉴스1

 

특히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의 발흥과 활개는 이러한 비정상적인 사회 현상에 기름을 붓고 있는 형국입니다.  일베저장소와 그 아류 사이트들을 매개로 하는 혐오 표현은 우리 사회 곳곳에 독버섯처럼 번져 사회의 안정성마저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들로부터는 자신들이 뱉어낸 배설물에 깔깔대거나 히죽거리고 서로 비슷한 패턴의 댓글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인기글 등극을 통해 자위하기에 바쁜 모습이 어른거립니다.  패륜적이며 반사회적인 표현조차 거리낌없는 이들에겐 이러한 행위가 그저 재미에 불과할 뿐이겠습니다만, 대중들에겐 충격으로 다가오거나 눈살 찌푸려지게 만드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를 비하하거나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오뎅에 비유하고 또한 성적 비하로 사회에 충격을 던졌던 몇몇 사건들은 앞서 언급된 그들에 의해 빚어진 망동의 대표적인 사례들입니다.  아울러 특정 정치적 목적을 지닌 채 '종북'이라는 낙인을 찍어 반대 진영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고, 선거에서마저 이를 악용하여 의도적으로 자신의 진영에 유리한 정치적 지형을 만들어 온 세력 또한 현실 속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러한 되먹지 못한 표현에 대한 제재는 인간 존엄성 회복 차원이 됐건, 그도 아니면 사회 정의 실현 측면이 됐건 간에 어떤 방식으로든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부분이긴 합니다. 

 

그러나 개인과 집단의 법익을 보장해 주기 위함이기도 한 이러한 규제는 반대로 헌법을 통해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옭아매거나 훼손시킬 개연성이 다분합니다.  단칼에 뚝딱하며 무 베듯 그리 단순하게 받아들일 사안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특히 칼자루를 어느 진영이 쥐고 있느냐에 따라 혐오에 대한 잣대가 그때그때 달라질 수 있는 공산이 크기에 긍정적인 요소보다는 부정적인 요소가 오히려 많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명예훼손이나 모욕죄의 혐의에 대해서도 그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법적 기준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지극히 객관적이지 못한 형태로 드러나고 있는 현실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참모습입니다.  이러한 뒤틀린 환경은 오히려 법을 통한 혐오 발언 규제를 더더욱 좋지 않은 방향으로 악용할 여지를 낳게 할 가능성이 큽니다.  

 

때문에 심정적으로는 저 역시 해당 법 발의에 찬성하는 입장입니다만, 현실을 돌아볼 땐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법제화에 나서겠다고 한다면, 인종이나 국적, 성별 등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불변의 특징에 대한 혐오 표현으로 국한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울러 작금의 혐오 표현의 발원이 어디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볼 때 이를 제재하는 법을 만들겠다고 나선 정치인들에게 과연 이를 언급할 자격이 있는가를 되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진짜 막말과 혐오 표현의 대부분은 정치인들로부터 비롯된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툭하면 '종북' '종북' 거리는 여권 정치인들이 태반인 상황이고, 상대방을 향한 혐오와 증오적 표현을 일삼는 정치인들 또한 부지기수입니다.  물론 막말에는 여당이나 야당이 따로 없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정치적 계략의 일환쯤으로 보이는 막말마저 일삼는 부류들이 허다한 우리네 정치 지형은 정작 이를 제재하는 법을 만들기에 앞서 정치권 스스로 막말과 혐오적 표현을 자제하는 행위에 솔선수범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절로 들게 합니다.  결국 혐오 표현 규제를 법에 호소하기에 앞서 정치권에서의 자정 노력이 급선무라는 사실을 그들 스스로 각인시키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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