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유치원' 명칭 변경 추진이 반가운 까닭

새 날 2014. 12. 25.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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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인 1941년, 일제칙령 제148호 '국민학교령'에 의해 현재의 초등학교인 소학교가 '국민학교'로 변경됐습니다.  이는 황국신민을 양성하겠노라는 일제의 초등교육정책이 반영된 탓인데요.  우리에겐 너무도 가슴 저리며 아픈 기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명칭이 다시 제자리를 찾는 데까지는 무려 50년 이상의 세월이 소요돼야만 했습니다.  광복 50돌을 맞은 지난 1995년, 정부는 국민학교의 명칭을 초등학교로 변경키로 결정하였으며, 이에 따라 이듬해 3월부터 비로소 '초등학교'라는 명칭이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일제의 잔재는 초등학교에 그치지 않습니다.  '유치원'이라는 명칭에도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현재 쓰이고 있는 '유치원'이란 명칭은 1897년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자녀 교육을 위해 부산 용두산공원 인근에 세운 '부산유치원'에서 유래된 것이라 알려지고 있습니다. 

 

당시 일본인들은 1840년 독일 프뢰벨이 설립한 세계 최초의 유치원인 ‘어린이의 정원(Kindergarten)’이라는 명칭을 일본식 조어 방식에 맞게 '유치원'으로 바꿔 사용하였으며, 이후 해당 명칭은 우리의 유아교육 기관에 그대로 도입된 채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한국 최초의 유치원은 1909년 함경북도에 세워진 나남유치원이며 앞서 언급한 보다 먼저 설립된 부산유치원은 일본인 자녀를 위한 기관이었으므로 엄밀히 말해 우리 유치원이 아닙니다.  다만, 일본인 자녀를 위해 세워졌던 해당 유치원이 오늘날 우리나라에서의 '유치원'이라는 명칭의 기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입니다.

 

현행 유아교육법에 따르면 유아를 대상으로 한 교육기관은 학교로 규정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여전히 일제가 명명한 '유치원'이란 이름을 사용해 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이를 탐탁지 않아 하던 교육계 일각에서는 100년이 넘도록 일제 잔재의 흔적이 있는 이름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이를 성토하고, 정부와 정치권에 이의 개명을 지속적으로 촉구해 온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통감하면서도 우리의 유아교육 관련 정책은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등 두 기관에 의해 이원화된 채 별도로 법 적용을 받고 있는 탓에 혼선을 빚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아울러 유치원이 법적 지위를 갖는 학교로 명칭이 변경될 시 보육의 큰 축을 이루고 있는 어린이집이 상대적으로 소외된 채 지위가 열악해지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관련 보육계의 현실적인 반대에 부딪힌 탓도 큽니다. 

 

다행히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역시 이에 대한 인식을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11월 '유아교육발전을 위한 서울시교육청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5개의 단기과제와 2개의 중기과제를 제시한 바 있는데, 이 가운데 유치원 명칭의 유아학교로의 개명 방안이 중기과제로 채택된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최근 결실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새누리당 이군현 의원이 성탄절인 25일 유아를 대상으로 한 교육기관의 명칭을 유치원에서 유아학교로 개정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 유아교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고 나선 것입니다.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꾸는 데도 우린 무려 50년 이상의 세월을 허비해야만 했습니다.  광복 70년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정치권엔 아직도 친일파가 득세하고 있듯 생활 속 일제 잔재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이곳저곳에 여전히 남은 채 알게 모르게 사용돼 오고 있습니다. 

 

일례로 관공서와 학교 등에 집중적으로 심어지고 주변 아파트 단지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향나무 역시 대표적인 생활 속 일제 잔재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향나무가 부끄럽게도 국립현충원의 조경수로, 심지어 국회에도 관행처럼 버젓이 심어지고 있어 최근 이를 제거하는 등 생활 속 일제 잔재 지우기 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는 와중이기도 합니다.

 

유치원이란 명칭 역시 그 중 하나일 것입니다.  유치원의 명칭 변경은 단순히 해당 이름을 사용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 세기가 다 가도록 아직도 깨끗하게 청산하지 못한 일제의 잔재를 깨끗하게 지워 우리의 민족적 자긍심을 다시금 올바로 세운다는 데 그 의의가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초등학교의 명칭 변경이 이뤄질 당시 함께 바꿀 수 있었으면 더없이 바람직스러웠겠으나 여러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이 얼기설기 엮인 탓에 여건이 무르익지 않았던 듯싶습니다.  비록 많이 늦은 감이 있습니다만 이제라도 명칭을 바꿔 부끄러웠던 일제강점기 당시의 아픈 흔적 하나를 과감히 지울 수만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습니다.  때문에 이번 유치원의 명칭 변경 추진이 개인적으로는 무척 반갑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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