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고 편리한 온라인 메신저에 비해 펜으로 직접 꾹꾹 눌러쓰는 편지는 더 느리고 더 사려 깊은 작업이 되게 해준다. 왜일까? 편지를 쓰는 시점과 받는 시점 사이에는 제법 긴 시간의 간극이 놓여 있는 탓이다. 잠깐 동안 유보된 이 침묵의 시간이 편지의 내용을 더욱 깊이있고 소중하게 만들어주며, 이를 쓰고 받는 이들의 감정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마찬가지로 요즘엔 글을 작성할 때 펜으로 쓰기보다 디지털 도구를 활용하는 경향이 더 많지만, 영화 '변산'에서 작가 정선미(김고은)는 부러 노트에 펜으로 쓱쓱 적어내려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복붙(붙여넣기와 복사하기), 그리고 삭제가 자유로운 도구에 비해 펜으로 작성하는 방식은 불편하기 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론 멋을 부리려 함은 결코 아니다. 정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