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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8

<에브리데이> 일상의 조각이 모여 삶이 완성된다

독특한 느낌의 영화다. 감독으로선 흥행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을 법한데, 철저히 이를 무시한 느낌이다. 적어도 내 느낌은 그랬다. 솔직히 재미없다. 아니 지루할 정도다. 감독은 매우 불친절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마치 흑백의 무성 영화처럼 반복되는 일상을 감정의 기복 없이 꿋꿋하게 연출하더니, 결국 영화가 내포하는 의미마저 퍼즐 맞추듯 관객 스스로가 찾게끔 만든다. 물론 그러한 되새김질 없이 보통의 영화처럼 영상만으로 놓고 본다면, 아마도 기겁을 해야 할 정도로 무미건조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영화 속 일상들을 조각 조각 흩뿌려 놓아 관객들이 조각 맞춤을 스스로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아마도 감독의 노림수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네 자녀와 아내 카펜(셜리 헨더슨 분)만이 남은 한..

일상의 소중함 : 小貪大失, 瓜熟帶落

소설 '빅픽처' 속에서의 주인공 벤, 그는 변호사라는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어릴적 동경해 마지 않던 사진가에 대한 환상을 늘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사진가라는 제2의 삶을 살게 되어 어마어마한 성공과 명성을 부여잡았지만, 그의 가슴 한켠엔 무언가 씁쓸한 회한 같은 것이 스멀스멀 기어 오르고 있었다. 맞다. 그에게 정작 필요했던 건 지금의 성공과 명성, 부 따위의 것들이 아닌,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그토록 지루하여 그저 벗어나고만 싶어했던 변호사 시절의 평범한 일상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의 일상은 이렇듯 늘 지리멸렬하고 재미없다. 하도 많이 인용되어 식상하기까지 한, 마치 물과 공기의 존재를 잊고 사는 맥락과 비슷하다. 지난주 후반부터 한반도를 엄습해 온 강추위로 세상 모든 것들..

결혼기념일은 또 다른 일상

어제, 그러니까 11월 24일은 저희 부부 결혼기념일이었어요. 이날의 이벤트는 원래 대부분의 부부들처럼 결혼 초기만 하더라도 제법 신경써 가며 챙기던 연례 행사 중 하나였지만, 한 해 두 해 점점 빠른 속도로 내달리는 세월 앞에 함께 무뎌져 가며, 이젠 그리 특별한 날로 와 닿지도 않게 되더군요. 아 물론 이게 모두 핑계이긴 합니다만... -_-;; 저희 결혼하던 날도 지금처럼 무척이나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그런 분위기였고, 하늘에선 고맙게도(?) 비마저 선사해 주셨답니다. 원래 11월 요맘때가 되면 태양의 고도는 점점 더 낮아지며, 때문에 왜 조금은 더 음산하고 칙칙한 느낌이 강해지잖아요? 그날이 분명 엇그제 같기만 한데 어느덧 아이들은 훌쩍 커 제 키보다 한 뼘은 더 자랐고, 젊은 청년이었던 전 mi..

그냥 저냥 2012.11.25

우리집 越冬 준비하던 날 (부제: 김장 담그기)

월동 준비, 뭐 이름은 거창합니다만 요샌 옛날 같지 않아 집에서 월동 준비라 해 봐야 김장밖에 더 있겠어요? 더군다나 남자인 제가 김장에 주도적으로 나서..... ㄹ 린 없겠고, 역시나 그냥 조력자 쯤의 역할만... 수년 전, 배추 파동으로 인해 배추 가격이 금값이 되어버린 적이 있었어요. 이에 대한 타개책의 일환으로 각 지방자치단체가 나서 생산자로부터 배추를 직접 수매, 소비자에게 직거래로 판매하기도 하였지요. 당시의 인연으로 저흰 해마다 괴산에서 절임배추를 주문해 오고 있네요. 올해도 역시 이곳에서 주문했답니다. 아마도 어제(11월 17일)였을 겁니다. 마침 인터넷에 김장용 절임배추의 인기가 치솟아 농촌마을들이 함박 웃음이라는 기사가 떴더군요. 생산자뿐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이득이 되는, 누이 좋고 매..

그냥 저냥 2012.11.18

감 따러 가자

얼마전 집 정원 감나무에서 딴 감들 중 일부를 가져가 먹어 본 동생이 맛있다며, 혹시 나머지 감도 마저 땄느냐고 연락이 왔네요. 게다가 내일부턴 날이 점점 추워져 초겨울 날씨가 된다 해서 겸사겸사 부리나케 오늘 나머지 달려있던 감들을 모두 수확하였습니다. 물론 까치밥 몇 개 정도는 남겨 놓았지요. 집에 과일 따는 기계라 하여 길다란 장대에 주머니가 달린 녀석이 있던데, 여러단으로 이뤄진 장대는 길게 뽑을 수도 있어 제법 높은 곳까지 닿긴 하더군요. 하지만 다른 과일은 몰라도 감 따기엔 분명 적절치 않은 듯했어요. 이 기계를 이용하여 힘겹게 몇 개 따고서는 그만 힘에 부쳐 걍 감이 달린 가지들을 죄다 꺾어 버렸지요. 이제 본격 감 따기에 돌입합니다. 지난번에도 꽤 많은 양을 땄다지만, 오늘 딴 감의 양에 ..

그냥 저냥 2012.10.28

얼치기 도시인의 얼렁뚱땅 고구마 캐기 체험

동네의 한 주민 단체가 지역 봉사를 명목으로 경기도 모처에 위치한 텃밭 한 뙈기를 얻어 고구마를 심어 놓았었지요. 더 추워져 서리라도 내리게 된다면 1년간의 노력이 모두 허당이 될 터... 단체원들이 심사숙고 끝에 결국 이번 주말에 수확하기로 결정하였답니다. 참가 가능한 인원을 조사하여 팀을 둘로 나누어야 했어요. 결정된 두 팀은 금요일과 토요일로 나누어 가동하기로 하였구요. 이제껏 살아오며 농사와 관련된 일이라곤 농활에 참가하여 벼베기해 본 것이 전부인 저, 제가 생각해도 참 한심하긴 하지만, 도회지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의 공통된 핸디캡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렇듯 논일이나 밭일 경험이라곤 일천한 서울 촌놈이 고구마 캐기에 참가하기로 하였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주변분들에게 민폐만 끼칠 ..

그냥 저냥 2012.10.20

죽음, 그 이후를 생각해 본다

꿀맛 같은 단잠이었다. 나이 탓인 건지 아님 나도 모르는 좋지 않은 그 무엇인가 심신에 쌓여 있어 그런 것인진 몰라도 요즘 통 잠이 깊게 들지 못하는 경향이 있던 터라 더더욱 달게만 느껴졌다. 덕분에 욕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요즘 너무 편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반성 아닌 반성을 하게 된다. 아닌 게 아니라 어젠 육체적으로 무척 고달픈 하루였다. 사촌 매형의 부음 소식을 듣고 저녁 영안실이 있는 병원으로 향했는데, 같은 서울 하늘 아래라지만 무려 두 시간이나 걸려야 도착하는 먼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게다가 전철과 버스를 수 차례 환승해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문상을 드리고 집으로 복귀한 건 이미 밤12시를 훌쩍 넘은 시각, 그러니 몸이 고단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게다. 당연한..

그냥 저냥 2012.10.12

빗소리와 빈대떡과의 상관관계

지금이 가을일까 늦여름일까... 글쎄... 기후 변화가 극심해진 뒤로는 딱히 계절에 대해 명확한 선 긋기가 쉽지 않군. 그냥 자기가 생각하는 그 계절이 정답인 걸거야. 분명한 건 지금 내리고 있는 이 정체모를 비가 가을을 재촉할 것이란 사실 하나만은 확실하지. 아침부터 시작된 비는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 지금 이 시각에도 그칠 줄 모르고 있어. 우산을 받쳐들고 걷던 길, 제법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유난히 시끌벅적한 곳이 눈에 띄었어. 흠~ 빈대떡집이군. 점포의 전면 유리를 개방해 놓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마치 블랙홀처럼 이곳으로 빨아들이고 있더군. 전면 개방이야 뭐 요즘 웬만한 점포들의 트렌드라 사실 특별하다 할 것까지야 없지. 하지만 빈대떡 부치는 장면을 전면에서 고스란히 볼 수 있게 ..

그냥 저냥 2012.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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