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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 경험의 즐거움 539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다 <나는 보리>

강원도 강릉의 한 작은 마을. 초등학생인 보리(김아송)는 푸른 바다가 손에 잡힐 듯한 이곳에서 아빠(곽진석), 엄마(허지나), 그리고 동생 정우(이린하)와 함께 살아간다. 보리를 제외한 나머지 식구들은 모두가 청각장애인이다. 때문에 음식을 주문하는 일처럼 듣고 말하기가 요구되는 사안은 죄다 보리의 몫이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가족과의 소통에 큰 어려움이 없었던 보리는 이렇듯 일상 속에서 수어를 터득하고 있었다. 보리네 가족은 아이가 딸린 여느 가정처럼 복닥거리는 일상이지만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남 부러울 게 없다. 그런데 보리는 언젠가부터 가족 사이에서 묘한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왠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신만 함께하지 못 하고 주변부를 맴도는 느낌이다. 장애인 가족 사이에서 유일하게 비장애인인..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묻는 영화 <어느 가족>

근래 들어서는 예전에 비해 그 의미가 다소 포괄적인 개념에 가까워졌지만, 가족은 통상 '혼인이나 혈연으로 맺어진 집단, 또는 그 구성원과의 관계'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조금은 특이한 형태의 가족도 존재한다. 겉으로 볼 땐 조부모와 부모 그리고 손주까지 3대가 함께 복닥거리면서 사는 영락없는 대가족이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는 피가 전혀 섞여 있지 않다. 그 흔한 혼인관계조차 없다. 쉽게 떠올릴 법한 전통적인 관계의 가족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도 않다. 가족 구성원들은 일용직이나 유흥업소에 몸 담으며, 아이에게는 도둑질을 종용하는 등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집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영화 은 전통 의미의 가족과는 달리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조..

작은 위안으로 이끄는 영화 <카모메 식당>

카모메 식당은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 자리 잡은 조그마한 카페 겸 음식점이다. 일본에서 건너온 사치에(고바야시 사토미)가 나홀로 운영 중이다. 가게를 인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손님이 많지 않다. 그녀는 손님이 곧 하나둘 늘어날 것이라 믿고 매일 아침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며, 분주한 손길로 식기들을 닦는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첫 손님을 맞게 되는 카모메 식당. 토미(자코 니에미)라 불리는 핀란드 국적의 청년이다. 그는 일본 문화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 사치에와 금방 가까워진다. 그렇게 카모메 식당과 인연을 맺은 그에겐 사치에가 정성껏 내린 커피를 마시는 일이 매일 치러야 하는 일과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 무작정 핀란드 여행에 뛰어든 일본인 여성 미도리(카타기리 하이리)를 사치에가 우연히..

액션 종합선물세트 <유체이탈자>

어느 날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교통사고 현장에서 깨어난 강이안(윤계상).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왜 여기에 와 있는지 전혀 기억할 수 없다. 거울에 비친 얼굴도 영 낯설기만 하다. 경찰서에서 사고 조사를 마치고 나온 그는 현 상황이 몹시 혼란스러우나 이를 느낄 겨를조차 없다. 이윽고 또 다른 사람의 몸에서 깨어나기 때문이다. 강이안은 12시간마다 전혀 다른 사람의 몸에서 새롭게 눈을 뜬다. 이 기이한 현상은 강이안의 평범했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다. 자신의 정체성이 몹시 궁금해진 강이안. 그를 둘러싼 사건과 사람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몸을 빌려 깨어날 때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뒤를 쫓는 한 남자, 그리고 그때마다 마주하게 되는 한 여자. 이들 사이에 해결의 실마리가 있을 것으로 ..

영웅으로 거듭나기 위한 성장통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피터 파커(톰 홀랜드)는 빌런 미스테리오(제이크 질렌할)의 계략에 의해 자신의 정체가 세상 모든 이들에게 탄로남과 동시에 또 다른 빌런으로 오해를 받게 된다. 이로 인해 평범했던 일상이 와르르 무너져버린 피터 파커. 문제 해결을 위해 그는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를 찾는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도움을 통해 세상을 스파이더맨의 정체가 탄로나기 이전으로 되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닥터 스트레인지의 도움은 실행 과정에서 어긋난다. 그의 주문이 멀티버스(다중우주)를 잘못 건드리는 통에 과거 스파이더맨과 대적했던 빌런들을 일제히 현실 세계로 소환하게 된 것이다. 빌런들을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닥터 스트레인지. 이는 곧 빌런의 죽음을 의미하기에 그럴 수는 없다며 완강히 버티는 피터 파커. ..

전쟁이 초래한 비극 속에서 건져 올린 한 줄기 희망 <아뉴스 데이>

폴란드의 한 수녀원. 이 곳을 몰래 빠져나온 아레나 수녀(요안나 쿨릭)는 의사를 수소문하기 위해 마을 주변을 배회한다. 출산이 임박한 동료 수녀를 도울 요량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마을 아이들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프랑스 국적의 적십자사, 어렵사리 의사를 찾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여건상 도움을 받기는 어려운 처지였다. 결국 도움 요청을 거절 당한 아레나 수녀가 할 수 있었던 건 적십자사 건물 밖에서 두 손을 모아 기도를 드리는 일뿐. 그때였다. 프랑스 국적의 의사 마틸드(루드 라쥬)가 아레나 수녀의 기도 모습을 우연히 목격, 마음이 바뀌었는지 아레나 수녀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함께 수녀원으로 향하는데... 1945년,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파고에 휩쓸린 폴란드의 상황은 그야말로 엄혹했다. 영화 는 ..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이 소름끼치게 다가왔던 이유

연상호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이 '오징어게임'에 이어 또 다시 인기몰이에 성공을 거뒀다. 이는 K-콘텐츠의 세계적 현상이 결코 일시적이거나 우연이 아님을 입증하는 결과물이라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내심 반갑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왜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걸까. 도대체 어떠한 요소들이 세계인들로부터 지지를 이끌어내고 공감을 불러 일으켰던 걸까. 죽음.. 비단 인간이 아니더라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라면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절대 숙명에 가까운 명제다. 언젠간 맞닥뜨려야 할 운명이자 현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외면하고 싶은 게 인류의 보편 정서다. 그렇기에 죽음이라는 명제는 두려움 및 공포와 떼려와 뗄 수 없는 관계다. 드라마 '지옥'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속물 사회를 통렬히 비틀다 <속물들>

미술작가 선우정(유다인)은 동료의 작품을 표절한 뒤 이른바 ‘차용미술’이라는 그럴 듯한 이름으로 포장하여 작품을 발표하고 이를 판매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덕분에 그녀는 평소 자신의 행위를 못마땅하게 여겨온 동료들과 심각한 갈등을 빚거나 송사에 휘말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선우정은 한 유명 미술관의 큐레이터 서진호(송재림)로부터 특별전 참여 제안을 받게 된다. 애인 김형중(심희섭)과 동거 중이던 선우정은 이 특별전 참여를 빌미로 서진호와 깊은 관계로 발전하는데.. 영화 은 창작보다 동료들의 작품을 베끼는 작업에 더 익숙했던 한 여성 미술작가와 그녀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미술계의 낡은 관행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블랙코미디로, 속내를 감춘 인물들 저마다 미술관을 매개로 치열한 속물 ..

잔잔한 웃음과 감동, 그리고 추억 <이웃사촌>

평소 반공사상이 남달랐던 대권(정우). 그는 이러한 성향 덕분에 집권세력의 눈에 띄어 해외에서 귀국한 야당 총재 이의식(오달수)의 도청 임무를 맡게 된다. 대권이 지휘하는 도청 팀은 자택에 격리되어 옴짝달싹 못하게 된 이 총재의 이웃 주택에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인 양 위장한 채 머물며 비밀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이들은 첨단 도청 장비를 이용하여 이 총재를 비롯한 가족과 지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하나하나 수집하고 기록해나가는 일을 도맡는다. 영화 은 실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쿠데타로 들어선 권력이 그 정점에서 맹위를 떨치던 1980년대. 어느 누구보다 애국정신(?)이 충만하던 한 가장이 이웃으로 위장,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인 야당 총재를 비밀리에 도청하면서 빚어지는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렸다. 집권..

현대인들에게 작은 위로를.. 영화 '버티고'

모 기업체 디자이너로 근무 중인 서영(천우희). 그녀는 같은 회사 직원 진수(유태오)와 사내 연애 중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비밀리에 이뤄졌다. 업무적으로 유능한 데다 외모까지 출중하여 여직원들에게 훈남으로 통하는 인물 진수. 그런 그와 연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서영은 내심 뿌듯했다. 유일한 흠이라면 주변인들에게 그와의 관계를 떳떳이 드러낼 수 없다는 점 정도. 그래서일까. 진수를 바라보는 서영의 눈에선 언제나 꿀이 뚝뚝 떨어진다. 진수와 함께하는 공간에서 같이 호흡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서영에겐 늘 가슴 떨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와의 관계가 근래 부쩍 불안해졌다. 미묘한 틈새가 감지된다. 어쩐지 둘의 관계가 지속될 수 없을 것 같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분명 진수가 서영과의 만남을 의도적으로 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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