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대학로 연극 '시크릿', 웃음 뒤 밀려드는 미친 현실의 씁쓸한 여운

새 날 2014. 12. 7.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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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6일 토요일,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날은 여전히 차가웠다.  영하 1도라는 기온에 걸맞지 않은 이 추위는 아마도 코끝을 아리게 할 만큼 매섭게 불어오는 칼바람 탓이었으리라.  1주일 내내 지속된 한파로 인해 몸과 마음은 어디 하나 성한 곳 없이 모두 얼어붙은 채였다.  특히나 추위를 많이 타는 내겐 극악의 상황이다.  절친과 함께 걷는 이 대학로 길이 많은 인파에도 불구하고 한없이 썰렁하게만 느껴졌던 결정적인 이유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가 찾은 곳은 '탑 아트홀'이라 불리는 아주 아담한 소극장이었다.  <시크릿>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어린 꼬마아이에서부터 커플의 청춘과 중년의 어른까지, 매우 다양한 관객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극의 내용부터 살펴보자.

 

 

이광남이라는 청년은 자신의 신분을 대통령이라 생각하는, 일종의 정신 착란과 분열 증상을 앓고 있는 정신병 환자다.  이로 인해 모 정신병원에 장기 입원해 있는 상황이다.  그는 다른 환자 및 그들을 관리하는 간호사와 함께 병원 내에서 온갖 소란을 피우며 함께 생활해 오던 와중이었는데, 어느날 담당 의사가 바뀌어 서인영이라는 여의사가 새로 부임해 오게 된다.

 

 

그녀의 이광남을 대하는 태도로부터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애틋하면서도 묘한 느낌이 전해지고 있었다.  



이후 그와 그녀 사이엔 놀라운 과거가 있었으며, 이광남이 왜 정신병을 앓게 된 건지, 아울러 그녀의 그를 대하는 태도가 왜 남 다를 수밖에 없었는지 따위의 비밀이 점차 드러나게 되는데..

 

 

자기만의 세상에 빠진 정신병 환자들의 천진난만하거나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바라보며, 우린 마냥 웃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실은 그들의 넋나간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선 우리 사회의 현실적 고통과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나오던 터라 뒷맛이 영 씁쓸했다. 

 

 

극의 주 무대가 정신병원과 정신병 환자들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광남이 혼잣말로 읊은 대사에서처럼 정작 미친 건 이 세상이기에, 실은 우리 모두가 미친 것일 테고 반대로 정신병 환자들이 정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어떤 영역에서든 미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만큼 우리 사회가 삭막해져가고 있는 와중이기에 이러한 대사 한 꼭지가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알고 보면 남녀의 사랑을 중심으로 한 단순 얼개의 이야기 구조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극의 흐름과 배우들의 대사를 통해 우린 사회의 부조리에 의해 발현되는 청년실업에서부터 정치권의 무능함까지 모든 사회적 모순 현상을 엿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새의 깃털마냥 아주 가볍게 터치한다.  그러나 받아들여지는 느낌만큼은 제법 묵직하다.

 

 

배우와 관객 사이의 공간이 무척 좁은 데다 배우들이 관객과의 소통을 지속적으로 시도하며 애드립을 선보이고 있어 배우들만의 일방적인 극이라기보다 쌍방이 함께 만드는 극의 형태라 할 수 있겠다.  아마도 이런 류의 소극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장점 아닐까 싶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처음엔 모두 즐겁게 웃다 어느덧 우리 사회의 미친 현실을 깨닫고 결국 씁쓸한 뒷여운을 느끼며 극장문을 나설 수밖에 없는, 한 편의 매우 좋은 연극이라 생각된다.

 

 

공연 장소 : 서울 대학로 '탑 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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