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에게 배웅 따윈 없어

대통령의 어휘 구사에 관한 생물학적 고찰

새 날 2014. 11. 27.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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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으로 볼 때 남자는 우뇌, 여자는 좌뇌가 더 발달해 있다고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보편적으로 그렇다는 의미일 테다.  우뇌는 신체의 왼쪽 움직임, 창조성, 시각, 직관, 공간 능력 등을 관장하며, 좌뇌는 신체의 오른쪽 움직임, 언어, 연역, 실용, 세밀한 관찰 등을 관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해당 특성을 발견해내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남성은 우뇌의 공간 능력 덕분에 주차 실력에 있어 여성보다 월등한 능력을 뽐내는 경우가 많고, 여성은 좌뇌의 공감과 언어 구사 능력 때문에 평소 언변에 있어 남성에 비해 뚜렷한 비교우위를 선보이고 있다.


아울러 뇌의 활용 패턴 역시 남녀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남성은 앞서 언급한 각각의 기능에 맞도록 좌뇌와 우뇌를 따로따로 사용하는 경향이 강하고, 여성은 좌뇌와 우뇌를 동시에 원활하게 사용할 줄 아는 뛰어난 뇌량을 갖추고 있단다.  이러한 생물학적 특성에 의해 나타나는 흔한 사례 중 하나가 바로 남성은 운전 중 전화기 사용과 같은 여타의 일을 일절 못하나, 여성은 전화 통화 중에도 능숙하게 운전이 가능할 만큼 멀티 능력이 탁월하다는 사실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어휘력 구사를 보고 있자면, 일반적인 여성의 뇌 활용 패턴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 않나 싶을 정도로 피로감을 느끼게 한다.  단두대, 적폐, 통일대박, 암덩어리..  일국의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사용하기엔 매우 부적절한 어휘들이다.  많고 많은 단어 중 왜 하필 이러한 것들을 사용해야 했을까 싶다. 

 

물론 다각도로 생각해볼 수는 있겠다.  양성 평등이 요원한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한계를 스스로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거니와, 군인 출신이었던 아버지의 영향 등 자라온 환경 탓일 수도 있겠고, 일반적인 여성들과는 달리 좌뇌가 상대적으로 덜 발달된 탓에 공감 및 언어 능력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겠지 싶다.  대학에서의 전공이 전자공학이었다는 건 박 대통령이 실제 여성의 뇌 구조보다 남성의 그것에 더욱 가까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증명해 보인다.
 

ⓒ미디어오늘

 

언론을 통해 가끔씩 접하게 되는 북한 방송을 보고 있자면, 그 과격한 어휘 구사 때문에 꽤나 거북했던 경험이 있다.  단어 하나 하나로부터는 전투력이 강하게 묻어나오는 데다 특유의 북한식 억양마저 어우러지니 그야말로 귓속을 후벼파다 못해 폐부까지 깊숙이 파고 들어오는 느낌이다.

 

이들의 방송은 남한을 상대로 한 선전 선동이 주 목적이기에 부러 과격한 언동을 선보이는 측면을 간과해선 안 될 테다.  박 대통령 역시 겉으로 볼 땐 목적이나 접근 방식이 그들과 전혀 다르다 해도 결과적으로는 엇비슷한 속내를 보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즉 자신의 의지를 확고하게 내비치기 위해 나름 고르고 고른 어휘가 다름아닌 앞서의 그러한 것들이었을 테다. 

 

그러나 스스로의 의지 피력은 혼자 마음 속에서 되뇌이는 것으로 만족했어야 함이 옳다.  이를 국민들 앞에 선보이려면 최대한 순화된 언어를 사용하여 피로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가 절실해 보인다.  가뜩이나 현실이 팍팍한 데다 미래마저 보이지 않을 만큼 암울한 삶을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굳이 거북한 어휘를 남발하여 피로감을 더욱 가중시키는 이유가 무얼까.  외려 국민들은 대통령이 조급증을 내고 있노라는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자신에 대한 모독 행위를 절대 참을 수 없다며 국민들의 입에 재갈을 물린 채 최고존엄을 자처하는 모양새에, 더불어 과격한 어휘를 사용하여 국민들을 윽박지르고 있는 행태는 결코 바람직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곁에 참모나 비서를 두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국가 지도자로서의 품위에 걸맞고 국민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언행이 가능토록 도움을 받기 위해서일 테다. 

 

박 대통령이 비록 여성 대통령이라고 하지만, 그동안 살아온 환경과 좌뇌 우뇌 발달 따위의 태생적인 한계로 인해 어휘 구사 능력이 일반적인 여성성을 크게 벗어나 있을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일부러 그러지 않는 이상 참모나 비서진을 통해 이를 충분히 가다듬은 뒤 발표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테다.  선천적인 건 어쩔 수 없다손 쳐도 후천적인 노력은 얼마든 가능할 테니 말이다. 

 

국민들은 윽박지르는 대통령을 바라며 표를 몰아주진 않았을 테다.  희망을 주기보다 피로감을 주는 대통령은 영 별로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다.  어휘 구사에 있어 보다 신중을 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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