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그리운 날엔

마왕 신해철, 비로소 인연을 쌓던 중인데

새 날 2014. 10. 28.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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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그가 별로 탐탁지 않았다.  최근엔 살이 쪄서 외모가 많이 망가졌지만, 데뷔시절만 해도 날카롭고 핸섬한 이미지에 폭발적인 무대 매너까지 갖춘 천상 엄친아였던 터라 솔직히 난 그가 별로였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모든 면에서 나보다 못난 구석이 하나 없었기에 아마도 묘한 질투심 따위가 작용했던 탓 아니었을까 싶다.

 

ⓒ미디어오늘

 

난 그의 노래마저 별로였다.  왜 미운 사람은 발 뒤꿈치만 봐도 밉다 하지 않았던가.  그가 부른 랩 한 구절 '아침엔 우유 한 잔 저녁엔 패스트 푸드.." 이 대목은 당시 왜 그리도 우스꽝스럽던지..  아무튼 그랬다.  보다 결정적으로 그를 싫어했던 건 모종의 사건 때문이기도 하다.  언젠가 그가 마약 사범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듣게 된다.  난 대뜸 '그럼 그렇지' 라는 반응을 토해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른다.  아니 의식적으로 그렇게 여겼던 듯싶다.  돌이켜보면 참 유치하기 그지없다.

 

이렇듯 내 관심 밖 흔한 가수 중 하나인 그였는데, 어느날엔가다.  지금 기억을 되살려보니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께서 서거하셨을 당시 추모 콘서트 현장이었던 것 같다.  그가 등장했다.  추모사 한 마디와 함께 노래를 열창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 소식에 비통해하던 찰나 그는 뭉클한 전율을 일으키며 나의 가슴 한켠을 적셔왔다. 



몇 년 전 일이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상황에서 마왕은 호기롭게도 이를 축하한다며 트윗글을 날렸다가 자칭 보수단체에 의해 고발 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얼마후 검찰이 그를 소환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그는 기꺼이 응하겠노라며 외려 당당해했다.  소신 뚜렷한 그였다.  닫혀있던 내 마음의 문도 스르르 열리는 순간이다.  난 지극히 이성적인 그가 마냥 좋았다.  그에 대한 감정이 누그러지자 노래마저 좋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데뷔곡 '그대에게'는 들을수록 흥에 겨웠다.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4주기 서울추모문화제에서의 마왕 신해철

 

하지만 그를 직접 볼 수 있었던 건 딱 한 차례다.  지난해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4주기 서울추모문화제에서였다.  그는 당시 이승환, 조관우 등과 함께 초대가수로 출연하여 '굿바이 미스터 트러블' 등의 노래를 열창했다.  당시 몸에 살이 제법 붙어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오늘날과 같은 비극의 단초 아니었을까 싶다.  이렇게 그와의 인연을 조금씩 키워가려던 찰나 뜬금없는 그의 심정지와 중환자실 입원 그리고 수술 소식을 듣게 된다.  난 훌훌 털고 곧 일어나리라 생각했다.  그는 마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너무도 허망했다.

 

실은 그제 모 커뮤니티에서 그의 상태가 좋지 않아 결국 먼 길을 떠날 것이라는 루머가 돌고 있었다.  그보다 며칠전엔 증권가 찌라시 발이라며 온갖 추측성 소문들이 난무했던 터라 혹시나 하면서도 별로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러한 것들이 모두 사실이었던 셈이다.

 

그를 떠나보내기엔 너무 이르다.  그동안 해온 일보다 앞으로 할 일이 태산 같지 않은가.  나와의 인연은 이제 시작인데..  그와 쌓은 인연이라곤 일천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망이 결코 남 일 같지 않으며 내게 더욱 안타깝게 다가오는 건, 살아오는 방식은 달랐어도 동시대를 비슷한 고뇌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 한 명의 마음속 우상을 떠나보내야 하다니, 그의 죽음이 너무도 비통할 따름이다. 

 

 

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후 친구가 보내온 문자 한 통이 곧 내 속내다.

아무쪼록 영면하시라.  굿바이 미스터 트러블~

 

마왕 신해철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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