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에게 배웅 따윈 없어

잇단 참사와 위기, 우린 어떤 판단을 해야 하나

새 날 2014. 10. 22.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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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어느날의 일이다.  지하철 5호선 천호역에서 전철을 타려던 한 노인의 몸이 전동차와 선로 틈새 사이에 끼인다.  주변에 있던 한 사람이 "우리 한 번 밀어봅시다" 라고 외친다.  하지만 주변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선뜻 나서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때였다.  "제가 도울게요" 라며 한 사람이 나선다.  이윽고 "저도 같이 도울게요" 라며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난다.  이렇게 세 사람이 함께 전동차를 밀고 있으니 어느덧 침묵하던 주변의 사람들마저 이에 동조하며 함께 전동차를 밀기 시작했고, 마침내 무려 30톤이 넘는 육중한 지하철을 움직여 노인을 구조할 수 있었다.  

 

 

이른바 '3의 법칙'이 이뤄낸 기적이다.  EBS가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의 원리를 실험으로 증명해 보인 바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한 실험맨이 하늘을 가리킨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또 다른 실험맨이 먼저번 실험맨과 함께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번에도 반응은 별로다. 

 

 

세번째 실험맨이 나선다.  앞서 하늘을 가리키던 실험맨들과 같은 방향의 하늘을 가리키니, 이제까지와는 달리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주변 사람들 다수가 도대체 무슨 일이냐며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모은 것이다.

 

 

'3의 법칙'은 인간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행동양식 중 하나다.  여기서 1이란 숫자는 개인을 인지하게 만들고, 2는 가장 작은 복수로써 작은 집단으로 파악하게 만들며, 3이란 숫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일정 수준이 갖춰진 수로 판단, 집단 내지 사회로 인식하게 된다는 심리적 법칙이다.  때문에 한명 두명이 행동할 때는 이를 따르지 않다가도 세명 이상의 행동을 접하게 될 경우 그제서야 집단의 움직임이라 판단하고 대중이 이를 따르게 된다.

 

이 법칙은 천호역 전동차 사고의 예에서 봤듯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 앞에서 대중의 올바른 행동을 유발하며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허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사회적 안전 시스템이 어떻게 갖춰졌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판이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 전동차에 불이 붙어 이미 객실 안으로 연기가 뿌옇게 밀려들어오고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움직이지 않은 채 태연히 앉아있는 객실 안 승객들의 모습을 우린 이미지를 통해 엿볼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잠시 기다리라'는 객실 안내 방송 탓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3의 법칙'은 여지없이 작동하고 있던 셈이다.  세 명 이상이 앉은 채 가만히 있으니 모두가 이에 동조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당시 한 두명의 움직임으로부터 시작돼 적어도 세명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창문을 깨고 빠져나갔더라면 그 반대 개념의 '3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았을까? 

 

세월호 참사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만을 믿던 우리 아이들이 조용히 구조되기를 기다렸을 텐데, 당시 서너명의 아이들이 방송을 무시하고 과감히 갑판으로 뛰쳐나갔더라면, 예의 그 '3의 법칙'이 작동하며 더 많은 아이들이 구조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한편, 판교 환풍구 참사에서도 역시 '3의 법칙'은 작용했으리라 본다.  하지만 상황은 앞선 경우와 사뭇 다르다.  인기 연예인을 보겠다며 뭇사람들이, 한 두명도 아닌 무려 수십명이, 자신의 키보다 조금 낮게 만들어진 환풍구 위로 우루루 올라서자 특별한 의심 없이 더욱 많은 이들이 이를 따라 올랐을 테다.  즉 수십명이 동시에 밟고 올라설 경우 환풍구가 아래로 꺼질 수도 있다는 이성적인 판단보다 3명 이상의 집단에 의한 움직임이 주는 안정감과 신뢰감이 이들의 판단력에 더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 가능하다.

 

앞선 예를 통해 볼 때 아직까지 우리 사회 전반의 안전 시스템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때문에 위기 앞에서 인간의 심리적 판단으로부터 비롯된 행동양식에 본능적으로 몸을 내맡겼다가는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온전하게 담보하기가 무척이나 곤란해지리란 결론에 이른다.  즉 대구 지하철 및 세월호 참사를 통해 목도했듯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를 그저 묵묵히 따르기엔 취약한 안전 시스템이 불안하기 그지없고, 그렇다고 하여 판교 환풍구 참사에서처럼 그저 본능에 온몸을 내맡겼다가는 이를 받쳐줄 수 있는 사회적 토대가 부실해 최악의 결과를 빚을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다.  정말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비슷한 위기 상황 앞에서 우리의 판단과 그에 따른 행동은 어찌해야 하나?  그렇다고 하여 우리 스스로가 안전을 도모하고 지켜내기엔 시민의식 수준이 너무 낮은 게 현실 아닌가.  때문에 인간은 원래 실수 투성이 미완성의 존재이기에 시스템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는 반면, 시민의식의 부재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지적이 서로 팽팽히 맞서고 있기도 하다. 

 

둘 다 맞는 말이다.  우리의 시민의식이 부족하기도 하거니와 취약한 안전 시스템 역시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다.  때문에 이번 사고를 얕은 시민의식에 대한 성찰과 제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은 충분한 설득력을 갖췄다.  다만, 열악한 우리 사회의 안전 시스템으로 인해 유사한 참사가 빚어지거나 위기 상황 앞에서 우리 개인이 과연 어떠한 판단과 행동을 해야 옳은 것인지는 여전히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에 대한 해답만큼은 국가가 명확하게 제시해주어야 한다.  가만히 있으란다고 하여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게 옳은지, 아니면 본능에 온몸을 맡겨도 정말 괜찮은지의 여부 따위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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