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세월호의 본질을 흐리지 말라

새 날 2014. 9. 18.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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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때의 일이다.  애국 보수를 자처하는 세력들이 세월호 유가족 등이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광화문 광장으로 몰려와 조롱 섞인 폭식 퍼포먼스를 벌였다.  그동안 온라인의 음습한 곳에서 호시탐탐 기회만을 엿보던 그들이 추석 연휴라는 황금 같은 휴지기를 맞아 세월호에 실낱 같이 남은 마지막 숨통을 끊어버리기 위해 단숨에 온라인을 박차고 광장으로 뛰쳐나와 하이에나처럼 유족들을 향해 달려든 것이다.

 

예상대로다.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 연휴는 그 이전과 이후의 흐름을 확연하게 가르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그 마지막 길목을 지키며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던 이들은 다름아닌 '일베'라 불리는 단체였다.  폭식 퍼포먼스는 그렇게 이뤄졌다.  그들의 행위는 세월호의 약해진 고리를 끊어낸 뒤 마지막 숨통을 조이기 위한 전방위적인 압박의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정부가 담뱃값과 주민세 자동차세 인상을 발표하며 증세 논란을 통해 국민들을 혼돈속으로 몰아넣더니,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정확히 5개월이 되던 날 이번엔 대통령이 직접 진두지휘에 나섰다.  때마침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에 대한 방패막이 임무를 포기한 채 깊은 내홍에 빠져든 상황이다. 

 

대통령은 세월호특별법 여야 2차 합의안에 대해 마지막 결단이라며 추가협상 불가 방침을 고수한 채 스스로 선을 그어버렸다.  세월호특별법은 입법부 소관이라며 그동안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던 패턴과는 사뭇 달랐다.  추석연휴라는 충분한 휴지기를 거쳤고, 제1야당의 내홍이 거세진 시기를 틈타 세월호 흔들기에 총대를 맨 셈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교육부도 거들었다.  학교 내에서의 노란 리본 다는 행위가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다며 이를 달지 말 것을 종용하는 공문을 일제히 내려보낸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농성 중인 광화문 광장에선 연일 자칭 보수단체들이 나와 세월호에 대한 진실 덮기 행동에 동조하고 있는 와중이기도 하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고군분투하던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최대 악재가 터지고 말았다.  업친 데 덮친 격이다.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일부 임원들이 대리운전기사와 시비가 붙어 폭행 혐의로 경찰에 신고된 것이다.  가뜩이나 힘들어하던 그들의 여정은 더욱 고달픈 상황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사회 일각에서의 유가족 조롱 퍼포먼스에 대한 보도엔 인색했던 언론사들이 이번 사건에 대해선 일제히 보도에 나서면서 객관성과 공정성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때마침 일베 회원들의 폭식 퍼포먼스 당시 그들의 조롱에 참을 수 없어 소금을 뿌렸던 유가족마저 폭행 혐의로 입건됐다는 소식이 더해지며 이들을 졸지에 폭행을 일삼는 파렴치한으로 둔갑시켜 가고 있었다.

 

ⓒMBC

 

물론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 행위는 절대 용납될 수 없으며 합리화되어서도 아니 된다.  아무리 자식을 잃은 슬픔에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유가족 면전에 대놓고 모욕적인 언사와 조롱 섞인 저주를 퍼붓는 패륜 행위를 저지른다 해도 말이다.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가 위원장을 포함한 위원회 간부 9명 전원이 이의 책임을 지고 일괄 사퇴한 이유 역시 같은 의미였을 테다. 

 

우리 사회는 유가족들에게 돌부처가 되길 원하고 있다.  심지어 남의 장례식장에 와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히죽거리는 행동 따위의 망동에도 참을 인자 세 개를 가슴에 새기라고만 한다.  하지만 유가족들 역시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는가 보다. 

 

각종 왜곡과 폄하에 밀린 세월호 여론이 마치 4월 16일의 세월호처럼 점차 한 방향으로 기울어가고 있고, 제1야당은 자신들의 역할을 포기한 채 내홍에 휩싸여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인데다, 오랜 단식농성과 노숙으로 인해 심신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유가족들의 그나마 남은 힘을 모두 빼앗기 위해 자칭 애국보수단체들이 요상한 퍼포먼스를 벌이며 조롱 행위를 일삼아왔다.



어쩌면 이들의 노림수는 바로 오늘날과 같은 유가족들의 폭력 행사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온라인에서도 자신들의 얼굴이 담긴 사진에 조그만 욕설이나 비아냥이 발견될 경우 지체없이 명예훼손으로 경찰에 신고해왔던 그들이다.  더군다나 오프라인에서의 폭행 유도는 그들에게 있어 더없이 좋은 먹잇감이다.  조롱에 참을 수 없었던 유가족들의 소금 뿌리는 행위 등에 대해 경찰에 신고하여 그들이 지속적으로 벌여왔던 세월호 진실 덮기 여론전에 힘을 보태고 있는 상황이다.

 

폭력행위는 분명 잘못됐다.  이는 수사 과정을 통해 죗값을 치러야 할 상황이라면 그에 따르면 된다.  하지만 폭력행위를 유도하여 유가족들을 폭력범으로 몰아가며 세월호의 본질을 흐리려는 시도는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세월호의 진상규명이 자칫 폭력행위라는 곁가지에 가려져선 안 된다.  세월호 유가족이나 국민들이 바라는 건 오직 하나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담긴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여 성역없는 진상규명이 이뤄지고, 비슷한 참사의 재발 방지를 통해 대한민국을 세월호 참사 이전과 전혀 다른 국가로 거듭나도록 만드는 일일 테다. 

 

세월호의 본질을 흐리려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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