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잘못된 보도 관행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새 날 2014. 9. 16.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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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0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세계자살예방의 날이다.  알다시피 우리의 자살률은 OECD 34개국 중 부동의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킨 채 10년째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우리를 더욱 암울하게 만드는 또 다른 통계 지표가 있다.  바로 자살증가율이다. 

 

4일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자살 문제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172개 회원국 중 한국이 자살률에 있어 두 번째로 급격히 증가한 나라로 나타났단다.  참고로 1위는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소국 키프로스로 밝혀졌다.  하지만 여기엔 통계적 함정이 도사린다. 

 

키프로스의 10만 명 당 자살자는 5명을 넘지 않는다.  30명에 육박하는 한국과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당연히 한국의 자살증가율이 키프로스에 비해 훨씬 심각한 상황이다.  단순 통계 수치만으로는 정확한 진상을 파악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데 다른 시기도 아닌 세계자살예방의 날 즈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자살과 관련한 보도 관행엔 과거와 비교해 그다지 변화가 없어 보인다.  언론들은 여전히 사회적 공기로써의 책무를 망각하고 있는 듯싶다.  12일 자살로 추정되는 의사들의 사망이 연거푸 발생하는 사건이 있었다.  아래로는 이와 관련한 잘못된 보도 행태가 우리 사회에 어떠한 악영향을 미쳐올 수 있을지를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같은 대학병원 소속인 여성이 먼저 사망한 뒤 남성 또한 12시간 후 사망한 채 발견됐단다.  물론 경찰의 조사가 마무리돼야 보다 정확한 사실이 드러날 테지만, 여러 정황상 자살이 유력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다지 특별할 것 같지 않았던 해당 기사가 포털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본 뉴스코너의 수위를 달리며 한동안 네티즌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었다.  다소 의외의 결과다.  어찌된 일일까? 

 

추측컨대 우리 사회에서 의사란 직업이 갖는 상징성과 상대적으로 높은 사회적 지위가 만들어낸 편견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시킨 모양이다.  2,30대의 젊은 남녀 의사가 각각 자살로 추정되는 죽음에 이르렀으니 그 사유로 치정 등을 연루시켜가며 관심이 증폭된 채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게 아닐까 싶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훌륭하다던 의사들마저 이렇듯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할 만큼 힘이 들며 어려운 직종이거늘, 이를 빌미로 대중들이 자기 위안 삼고 또 자신보다 우위에 놓인 이들의 몰락(?)을 바라보며 대리 만족감과 같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즐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거나 이 대목에서 기자가 기사 제목에 의사라는 직업을 굳이 넣을 필요는 없다.  더군다나 사회적 파급력이 큰 자살 사건에선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같은 내용의 관련 기사를 검색해 보니 마치 입이라도 맞춘 듯 대부분의 기사들이 비슷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왜일까?

 

막중한 사회적 책임과 사명감을 갖는 기자라는 직업인들에겐 반드시 지켜야 할 행동 기준이란 게 있다.  한국기자협회가 마련한 윤리강령이다.  총 10개 조항으로 이뤄져있다.  그 가운데 '우리는 취재의 과정 및 보도의 내용에서 지역-계층-종교-성-집단 간의 갈등을 유발하거나 차별을 조장하지 않는다'라는 9조가 눈에 띤다.  이른바 갈등-차별 조장 금지 조항이다. 



그런데 이번 의사 사망 사건 보도 과정에서 해당 조항이 잘 지켜진 것인지 의아스럽지 않을 수 없다.  가령 평범한 소시민이 사망하여 기사로 작성됐더라면 과연 그 사람의 직업이 기사 제목에 떡하니 표기되었을까?  그렇다면 왜 이번 사건에선 의사라는 직업을 굳이 표기해야만 했을까? 

 

혹시나 보다 많은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의식적으로 활용한 건 아닐까?  손쉽게 주목받을 수 있는 수단화 따위의 이유로 말이다.  일단 소기의 성과를 거두긴 한 듯싶다.  덕분에 포털사이트에서 주목을 받으며 네티즌들에게 가장 많이 읽힌 기사로 등극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의사라는 직업인이 갖는 사회적 특수성 때문에 이러한 형식의 보도는 은연중 특정 계층 간 차별 내지 특권의식을 더욱 조장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에 결코 바람직스러운 형태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기사의 단순 조회수보다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야 할 기자 정신과 신중함이 무척이나 아쉬운 대목이다. 

 

그런데 해당 기사는 비단 제목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용은 더욱 가관이다.  우선 의사와 같이 사회적 영향력이 큰 지위에 놓인 사람이나 유명인의 자살 사건일수록 보도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보도 가치가 높아 보이는 자살 사건의 보도가 더욱 많은 자살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디어 매체들의 잘못된 보도 행태로 인해 자살을 부추기는 현상을 막고자 제정된 자살보도권고기준 제1장 '자살 보도는 기본적으로 최소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조항으로부터도 본질을 한참이나 벗어나 있다.

 

 

자살 보도는 베르테르 현상을 일으키며 사회 구성원들로 하여금 자살 충동을 확산시키는 경향이 높다.  때문에 기사 제목엔 자살이란 표현을 사용해선 안 되며, 자살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자살로 추정하거나 단정 짓는 보도를 해서도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기사 제목엔 ‘자살’이란 용어가 엄연히 포함되어 있으며, 아직 수사 종결에 의한 자살이란 결론이 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살인 양 확정하여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살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절대 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매우 상세한 방법까지 언급되어 있다.  이는 자살을 부추기는 행위와 진배없다.  또한 자살 장소를 포함시켜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데도 특정 장소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여 해당 장소에 대한 관심을 유발시키고 있다.  이는 비슷한 장소에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사람들의 자살을 유도하는 행위와 다름없다.

 

마찬가지로 자살보도권고기준 제2장 '최소한의 자살 보도에서도 이것만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어긴 보도 관행이며, 이러한 이유와 앞선 사례들로 인해 해당 기사는 자살과 관련한 보도 중 최악의 행태라고 감히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더군다나 가장 많은 조회수를 올린 기사로의 등극을 통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셈이 됐으니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을까 싶다.

 

여전히 선정성과 조회수 경쟁에 치우친 보도 행태로 인해 언론인들이 사회적 공기로써의 책무를 내팽개치고 있다.  자칫 흐트러질 수 있는 기자 정신을 다잡기 위해 마련된 윤리 강령마저 스스로 지키지 않고 있으며, 언론의 그릇된 자살 보도 행태가 더 많은 자살자를 유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최소화하고, 점증하는 국가 자살률을 줄여보고자 만든 자살보도권고기준마저 지키지 않는 언론인들이 존재하는 한 ‘기레기’라는 오명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영원히 요원한 일이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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