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담뱃값을 대폭 인상해야 하는 까닭

새 날 2014. 9. 13.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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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비흡연자다.  때문에 개인적인 입장에서 볼 때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별로 달갑지 않다.  과거엔 특별히 신경 쓰는 편이 아니었지만,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담배 냄새가 역겨워지기 시작했다.  특히 길을 걷는 와중에 담배 피우는 사람을 만날 때면 이를 피해 가느라 솔직히 짜증스러운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변화가 나이 듦의 또 다른 양태일 수도 있겠거니와 나더러 민감하다고 한다면 뭐 충분히 그리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이지 싶다.

 

어찌 생각해 보면 비흡연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이번 담뱃값 인상 논란은 나와 전혀 무관한 일일지 모른다.  지극히 이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오히려 이번 조치로 인해 흡연율은 제법 줄어들게 될 테고 주변 환경이 보다 쾌적해질 수 있기에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경우 당연히 쾌재를 부를 듯싶다.

 

ⓒ세계일보

 

어쨌거나 이번 금연종합대책은 꽤나 신선하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국민의 건강을 염려해 주다니 이 얼마나 눈물겹도록 고마운 일인가?  물론 세월호 참사로 인해 관심이 부쩍 커진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담보는 여전히 뒷전인 채 건강부터 챙겨주갰다는 감언이설이 영 미덥지가 않지만 말이다.  여튼 담뱃값을 잔뜩 인상하여 다수의 흡연자들을 금연으로 이끌겠노라는 정부의 정책 자체는 높이 사줄 만하다.  환영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혹시 담뱃값 인상 때문에 좌절감을 호소하는 분들이 제법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많을 것 같다.  그나마 스트레스 해소에 이만한 녀석이 없었을 텐데, 가격이 너무 오르는 탓에 구입이 망설여져 괜시리 멀쩡하던 혈압마저 치솟게 할지 모르는 일일 테니 말이다.  허나 이 또한 언제나처럼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우리의 좌절엔 이미 강한 내성이란 녀석이 또아리를 튼 채 무기력감을 잔뜩 불어넣고 있는 와중이니 말이다.

 

세월호 참사 국면으로 잠시 되돌아가 보자.  4월 16일 그날의 울분을 잊지 않고 있다면 이후 우리 사회에 어떠한 형태의 작은 변화라도 분명 그 흔적이 남아있어야 할 텐데 과연 그러하던가?  그날로부터 벌써 5개월이 지났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장하고, 또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 사고의 재발 방지 장치를 마련하자던 외침은 정치권 및 대통령의 외면과 일부 세력들의 유가족 폄훼를 통한 왜곡 등에 막혀 허공으로 흘어지고 말았다.  다수의 사람들은 이내 커다란 좌절감에 부딪혀야 했다.  어이없는 상황으로 인해 우리의 좌절은 어느덧 일상이 되어간다.

 

ⓒ뉴시스

 

지난 18대 대선 직전 불거졌던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이 1년여 만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국정원법 유죄, 공직선거법 무죄'로 일단락됐다.  하필이면 선고가 있던 당일 담뱃값 인상이 발표되면서 이른바 시선 회피용 아이템이 아니냐는 음모론마저 떠돌아다녀야 했다.  난 음모론 따위 별로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이를 믿지도 않는다.  하지만 두 사안의 파급력을 고려해 볼 때 시기가 참으로 절묘하다라는 데엔 이견이 없다.

 

물론 이러한 음모론과는 별개로 이번 선고는 충분히 예측됐던 결과다.  지난번 국군사이버사령부의 댓글 공작 사건의 선고 결과에서도 지켜봤듯 만에 하나 대선 개입을 인정하게 된다면, 결국 18대 대선이 부정선거에 의한 결과물이었노란 것을 자인하게 되는 꼴이니 자신의 목을 자신이 겨눈다는 건 현 집권세력에게 있어 결코 있을 수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어쨌든 이날의 선고는 한 편의 희극임에 틀림없다.  '정치에는 분명 관여하였으나 대선 개입은 아니다'라는 말도 되지 않는 논리 덕분에 '사람은 죽였으되 살인은 아니다'라는 우스갯소리마저 공공연히 회자될 정도다.  선고 결과를 지켜본 많은 이들은 아무리 예측했던 결과라 해도, 몰상식하며 비정상적인 현실의 참담한 벽 앞에서 다시 한 번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YTN

 

세월호 참사에서의 슬픔과 분노는 시간이 지나 희석되고 여론전에 밀려 그냥 남의 일인 양 놓아 버렸듯이, 아울러 대선 정국에서의 부정선거에 대한 들끓던 분노마저도 권력집단의 방해 공작과 폭압에 의해 뭉개지며 그냥 놓아 버렸듯이, 자신의 주머니를 호시탐탐 노리며 담뱃값 인상을 얘기하고 있는 찰나에도 으레 그러려니 하며 우린 남의 일인 양 뒤돌아선 채 바보처럼 그저 히죽거리고만 있다.  이른바 좌절의 일상이다.

 

국민의 좌절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현 집권세력에게 막힘이란 없다.  사회 곳곳에 교묘히 좌절감을 심어놓은 뒤 이를 자양분 삼아 권력을 유지해 오고 있는 패턴이 제법 자리를 굳건히 잡았기 때문일 테다.  우린 흔히 국민의 수준이 바로 정치인의 수준이라고 말한다. 

 

현재의 권력이 국민들로 하여금 시시때때로 빚어내는 좌절은 우리에게 무기력감을 한층 더해준다.  내성 탓이다.  내성은 일종의 바이러스가 되어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으로 흩어진 뒤 선거철마다 또 다시 자신의 수준에 걸맞는 인물을 뽑도록 조종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뽑힌 정치인들은 그동안 우리에게 좌절을 안겨 주었던 것처럼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 아주 조금씩 비슷한 방식으로 이를 활용해 나간다.  결국 정치인은 국민들의 좌절을 먹고 사는 셈이다.

 

우리에겐 지금 내성이 생겨 무기력감만을 양산해내는 현재의 좌절들을 훌쩍 뛰어넘을 그 무언가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를 좀먹고 있는 '좌절'이라는 정체 불명의 바이러스 확산을 차단해야 한다.  일상이 되어버린 채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좌절로부터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무엇이 필요할까? 

 

내성을 키워 무기력을 확산시키는 좌절이 아닌, 뼛속 깊은 내면의 진짜 좌절로부터 절로 만들어질 자각과 자성이 절실하다.  하지만 이 단계에까지 이르려면 담뱃값 2천원의 인상만으로는 어림없다.  때문에 난 담뱃값의 대폭 인상을 적극 찬성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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