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이산가족, 이들에겐 시간이 얼마 없다

새 날 2014. 9. 8.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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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최대 명절 추석이다.  모처럼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 다수겠지만, 반대로 이맘때면 북에 두고 온 가족 생각에 먼 하늘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한숨을 내쉬거나 눈물을 글썽이는 이들도 있다.  남북 분단이 만들어낸 우리만의 씁쓸한 풍경이다.  안타깝게도 혹시나 하며 오매불망 기다려 왔을 추석 이산가족 상봉마저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2000년 6.15 정상회담 이후 연례적으로 이어지던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2010년 연평도 포격 사태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기에 접어들면서 중단된 바 있다.  그러던 중 올해 초 남북 관계에 짧은 해빙기가 찾아왔다.  덕분에 지난 2월 드디어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마련됐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최근 우리 정부가 제기한 추석 상봉은 북한의 묵묵부답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딱히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도 쉽지 않다.  남북 양측 모두의 힘겨루기가 팽팽하기 때문이다.  그에 따른 결과는 고스란히 이산가족에게 전가되고 있었다.

 

ⓒYTN 방송화면 캡쳐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 1988년 이후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가 12만 9000여 명에 이르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들 중 절반 가까운 6만 명 이상이 끝내 상봉을 이루지 못한 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상봉 신청 생존자 6만여 명 중 70대가 30%, 80대 40%, 90세 이상이 10%로 70세 이상이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 중 해마다 3천명 내지 4천명 가까운 인원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내년 상반기 쯤이면 상봉신청을 한 전체 이산가족 중 생존자보다 사망자 수가 더 많아질 전망이란다.  남북관계는 여러 루트를 통해 관계 개선의 시도가 수 차례 이뤄졌지만 여전히 교착 상태다.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초반부터 줄곧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주창해 왔으며, 통일 대박이란 화두를 꺼내들며 분위기 환기와 반전을 노렸다.  지난 3월엔 독일 '드레스덴 선언'을 통해 북한에 유화 제스처를 보낸 바 있고, 8월엔 '통일위원회'을 구성하여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했지만, 여전히 성과는 전무하다.



그나마 인천 아시안게임 개최가 남북 화해 무드를 몰고 올 절호의 기회였는데, 이마저도 살리지 못했다.  북한은 애초 이번 아시안게임에 선수단과 응원단을 파견하겠노라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돌연 북측 손광호 올림픽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이 조선중앙텔레비전 대담 프로에 나오더니 응원단을 보내지 않기로 했단다.  선수단 파견은 예정대로 이뤄질 것으로 보여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일방적인 조치라며 유감을 표명했지만, 북한을 향한 이중 잣대는 과연 남북관계 개선에 의지가 있는가를 의심스럽게 하고 있다.  국방부가 지난 1일 '국방일보'에 게재한 '북한 응원단 파견 논란의 진실'이란 제목의 군 장병 정신교육 자료엔 북한 응원단을 향해 남북 화해 협력 사절이 아닌 미인계를 앞세운 대남선전의 선봉대에 불과하다는 비난 일색의 내용이 담겨 있다. 

 

ⓒ노컷뉴스

 

북한 응원단의 실체는 철저한 출신성분 심사와 사상검증을 통해 선발되는 소수정예의 혁명전사이며 남한 국민들이 선호하는 기준에 맞춰진 외모는 겉으로 드러나는 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라고까지 표현했다.  환영 일색이던 통일부와 제대로 된 엇박자를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아니 그보다 어쩌면 우리 정부의 남북관계에 대한 솔직한 속내를 드러낸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북측 응원단 파견 무산은 우리에게도 막대한 손해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당시엔 북한 응원단의 덕을 톡톡히 본 바 있다.  개막을 코앞에 두고 있는 인천 아시안게임의 예매율이 20%를 밑돌 만큼 저조하단다.  응원단을 통한 흥행 기회는 물 건너간 셈이다.  아울러 스포츠를 이용한 남북관계의 개선 효과 역시 크게 기대하기가 어려워졌다.

 

누가 뭐라 해도 북한 응원단은 남북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풀어 나갈 수 있는 좋은 계기일 수 있었다.  현재 경색된, 꽉 막힌 교착 상태의 남북관계를 스포츠나 민간의 교류를 통해 자연스레 물꼬를 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의 꼿꼿한 태도를 봐선 그럴 의지가 전혀 없는 눈치다.  작은 불씨라도 살리려 하기보다 이중 잣대로 북한을 자극하기 바쁘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다.  진정성 있는 대화를 원한다면 과거에 늘 해왔던 것과 같이 예측 불가능한, 가변적이며 돌출적인 행보를 보여선 안 된다.  인도주의적 교류 따위 전부 말장난에 불과할 뿐이다.  남과 북의 자존심을 건 힘 겨루기 양상에 중간에 끼어있는 이산가족들의 고통만 배가되고 있다.  북쪽과 남쪽하늘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가족을 그리워 하고 있을 이산가족들에게 어쩌면 다시 돌아온 추석은 고통 그 자체일 수 있다. 

 

이들에게 남겨진 시간이 턱 없이 부족하다.  남한과 북한 정부가 현재보다 훨씬 전향적인 자세로 관계 개선에 나서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어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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