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국민성금은 눈먼돈.. 불신 팽배한 우리사회

새 날 2014. 9. 4.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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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2013년 유니세프 지원금 순위가 세계 4위에 랭크된 사실이 알려지며 온라인 상에서 뜨거운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다.  유니세프 연차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한국위원회가 총 8,761만 5,000달러의 후원으로 전 세계 35개 유니세프 국가위원회 중 네번째에 랭크됐단다.  

 

ⓒ유니세프 2013년 연차보고서

 

1994년에 설립된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초창기 지원금 및 모금액 규모에 비해 20년만에 수십배가 증가하였고, 후원자수는 무려 300배 이상이나 늘었단다.  덕분에 한국은 도움을 받는 수혜국에서 도움을 주는 공여국으로 발전한 유일 국가라는 타이틀도 거머쥘 수 있게 됐다는 분석이다. 

 

그럼 이 대목에서 유니세프란 어떤 곳인가 한 번 살펴 보자.

 

UNICEF(United Nations International Children's Emergency Fund) 유엔아동기금

 

국적이나 이념, 종교 등의 차별 없이 어린이를 구호하기 위해 설립된 국제연합의 상설보조기관 가운데 하나이다.  1946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기아와 질병에 지친 아동을 구제하기 위한 긴급원조계획으로 '유엔 국제아동 긴급구호기금'이라는 명칭으로 발족하였다.  53년 국제연합 상설기관이 되어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고 본부는 뉴욕에 있다.

 

유니세프의 설립정신은 국적이나 이념, 종교 등의 차별 없이 어린이를 구호한다는 '차별 없는 구호'이며, 이에 따라 2차대전의 승전국과 패전국, 동유럽과 중국, 한국의 어린이들도 유니세프의 도움을 받았다.  유니세프는 점차 그 영역을 넓혀 모든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을 위하여 긴급구호, 영양, 예방접종, 식수 및 환경개선, 기초교육 등의 사업을 펼쳐왔으며 이에 대한 공로로 1965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한국은 50년 3월에 정식으로 가입 이후 1993년까지 각종 지원을 받았다. 1988년 집행이사국이 되었으며, 1994년 1월 한국 유니세프 대표사무소가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로 바뀌어 지원을 하는 국가가 되었다. 

 

유니세프는 정책 결정기구인 집행이사회와 실무를 담당하는 사무국으로 이루어져 있다. 집행이사회는 우리 나라를 포함하여 36개의 이사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무국은 전세계 개발도상국에서 이루어지는 유니세프의 실제적인 활동을 담당하는 곳이다.

 

또한 유니세프는 개발도상국형 기구인 '대표사무소'와 선진국형 기구인 '국가위원회'로 구분된다.  각 개발도상국에 설치되어 있는 대표사무소는 그 나라의 어린이를 돕기 위한 각종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선진국에 설치된 국가위원회는 이러한 사업을 펼치는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고, 자국 국민들에게 세계의 어린이문제를 널리 홍보하는 역할을 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유니세프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자살률이나 노인빈곤율 등 주로 좋지 않은 타이틀에서 상위권에 포진해 왔고, 그렇지 않은 영역에선 늘 하위권에 위치해 왔던 우리들이기에 이러한 결과를 두고 진짜 국격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긍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닐 테다.  비단 경제력이나 군사외교적 능력에서의 우위뿐 아니라 국민들의 기부 문화가 오히려 한 국가의 품격에 대한 진정한 잣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의 급속한 성장의 배경엔 차마 드러내놓기 부끄러운 대한민국 사회의 민낮이 감춰져 있다.  불신이 팽배한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이다.  해마다 100억 원에 가까운 국민 성금을 모아 운영하는 공익재단이 자금을 불투명하게 써오다 적발됐단다. 

 

ⓒSBS 방송화면 캡쳐

 

SBS의 보도에 따르면 1998년 IMF 외환 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 자금을 토대로, 일자리 창출 사업을 주로 해온 '함께 일하는 재단'이 법인카드를 유흥주점에서 사용하거나 사용 용처의 대부분을 기재하지 않은 채 업무와 무관한 곳에 사용하는 방식으로 기탁된 국민 성금을 운용해 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재단의 1년 예산은 200억원에 달하는데, 이의 절반이 국민 성금으로 충당되고 있단다.

 

뜻 깊은 곳에 사용하라며 국민들이 성금을 모아주었더니 이를 주먹구구로 운영하거나 엉뚱한 곳에 전용해 온 셈이다.  결국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 아닌가.  그렇다면 이러한 결과가 비단 이 재단뿐일까?  아닐 테다.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지 모른다. 

 

나 역시 학창시절부터 그동안 수많은 종류의 국민 성금을 내온 경험이 있지만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의 여부는 사실 불투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모금할 당시엔 각종 매스컴을 통해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을 앞세워 요란법석 떨어가며 이를 부추기더니, 정작 모금 이후엔 그에 대한 사용 용처 등의 결과 공개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유니세프의 연차보고서에서도 드러났듯 다행히 우리 사회엔 아직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많다.  후진적인 정치 문화와 경제 양극화 속에서도 이러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는 건 그래도 우리 사회가 아직은 살 만하다는 방증일 테다.

 

그렇지만 이렇듯 순수한 이들의 좋은 의도를 좀먹는 무리들이 있다.  어려움을 겪는 이웃을 돕기 위해 십시일반 모아 거둔 성금을 마치 눈먼 돈인 양 전용 내지 착복하는 파렴치한 이들이 우리 사회에 버젓이 존재하고 있고, 이를 책임져야 할 지자체와 정부 또한 관리 소홀 탓에 성금을 맡긴 국민들의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한 폐해는 제법 심각하다.  국민들의 성금 모금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가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 성금은 부족한 정부의 재정을 보충해 주는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지자체는 물론이거니와 이를 조정해야 할 정부마저 관리에 소극적이다.  일례로 세계일보가 취재한 결과에 따르면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 유족을 돕기 위해 걷힌 성금 672억원 중 110억원이 11년째 은행에서 잠자고 있단다.  유족들 의견이 갈라진 탓인데 이를 조정해야 할 주체들이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결과물들이 하나 둘 모이며 결국 국민 성금에 대한 불신을 잔뜩 부풀려 온 셈이다.  국민 다수가 거부감을 느끼며 진작부터 자발적인 성금 기탁을 꺼려해 오던 터다.  유니세프의 결과에서 보듯 우리 사회의 기부에 대한 열망은 그 어느 국가보다 크다.  하지만 나무랄 데 없는 이러한 국민적 성향을 국가가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모금에만 급급해 왔던 정부가 관리 감독에 조금 더 관심을 쏟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불신은 아마 애초부터 발생하지 않았을 테다.

 

 

하지만 이보다 나를 더욱 안타깝게 만드는 건 국내 기부 문화 불신의 반대급부가 아마도 국격이 높아졌다며 많은 이들이 내심 흐뭇해 하고 있을 유니세프 기부금 순위 상승으로 반영된 게 아닐까 싶은 점이다.  실제로 인터넷 커뮤니티나 포털에 떠도는 의견들의 다수는 국내 재단에 성금을 기탁할 바에야 차라리 유니세프에 기부하겠노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결국 대한민국의 유니세프 기부금 순위의 상승은 상대적으로 국내에서의 성금 모금을 불신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인 데다 그러한 성향을 보이고 있는 이들이 대거 유니세프로 기부 대상을 돌린, 일종의 풍선효과 덕분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세계 4위라는 순위를 마냥 반겨할 수만은 없는 일이 돼버렸으며, 아울러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유니세프 기부금 순위만으로 국격 상승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는 행위 역시 아직은 성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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