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정홍원 총리가 시장에 간 까닭은?

새 날 2014. 8. 31.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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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재정관리협의회를 통해 "현재 경제가 안고 있는 여러 상황을 감안할 때 자칫 실기하면 헤어나올 수 없는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28일 한경 밀레니엄 포럼에서는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 초기에 진입했노라 언급하여 논란을 빚었으며, 그보다 앞서 26일엔 민생경제법안 입법 촉구에 나선 바 있다. 

 

한편 유민 아빠가 28일 단식농성 중단을 선언하자 마치 이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물밑에서 활동 중이던 정홍원 국무총리마저 전면에 나섰다.  그는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시급한 민생경제법안을 조속히 처리해 달라고 정치권에 요구한 것이다.  사전 예고 없이 전날밤 언론에 문자메시지로 긴급 고지한 뒤 급작스레 이뤄진 모양새다.

 

ⓒ뉴시스

 

30일엔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신원시장을 찾아 시장표 튀김 먹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던 정 총리다.  정 총리가 평소 시장표 음식을 자주 먹긴 했을까 모르겠다.  그렇다면 평소 시장에 자주 오지 않았을 정 총리가 뜬금없이 왜 나타난 걸까? 

 

세월호 때문에 경제가 어렵다는 최경환 부총리의 논리를 뒷받침해 주고, 때마침 걸림돌이라 여겨졌던 유민 아빠의 단식농성이 끝나자 마침내 자신들의 발목을 잡고 있던 세월호특별법 정국에서 탈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여기기라도 한 걸까?  25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치권을 질타하며 민생법안 처리를 당부했던 대통령에 이어 26일 최경환 부총리의 언급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 총리의 대국민담화 형태의 릴레이를 통해 정치권을 재차 압박하고 나선 셈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이토록 절박하게 이의 통과를 주장하고 있는 민생법안이란 게 도대체 무언지, 아울러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한 번 살펴 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총 30개의 법안이 제출됐는데, 그중 3분의1 가량은 민생과 크게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신문

 

새정치민주연합이 분석한 법안 일부의 면면을 살펴보자.  의료법은 민간보험사를 보유한 재벌기업에 유리한 구조이고,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원격의료가 가능한 일부 대형병원에만 혜택이 돌아가게끔 되어 있다.  주택법의 경우 대부분 부동산 규제완화와 관련되어 있어 거꾸로 서민들의 어려움만 가중시킬 개연성이 크다.

 

사행산업을 부추길 수 있는 여지도 있다.  선상 카지노 설치를 허가하는 크루즈산업 육성 및 지원법, 외국자본의 카지노 등 복합리조트 설립 자격 요건을 완화하는 경제자유구역특별법 등이 그에 해당한다.  마리나항에 주거시설 건립을 허용하는 마리나항만법이나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내 관광숙박시설을 허용하는 관광진흥법 등은 서민과는 전혀 관련없는 오로지 부자들만을 위한 지원법의 사례라 볼 수 있다.



결국 현재 정부가 경제 활성화라며 내세우고 있는 법안의 대부분은 민생과는 거리가 먼 대기업 특혜, 부동산 투기, 사행성 조장, 교육 환경 침해 따위의 규제완화가 주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이들이 과연 어디를 보아 민생법안이라 말할 수 있는가?  민생의 뜻이나 제대로 알고 떠드는 건가?  민생(民生)이란 일반 국민의 생활 및 생계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이들 법안 중 과연 어떤 부분이 민생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할 수 있을까?

 

아울러 민생법안을 내세우고 있는 근거가 바로 현재의 경제 침체 상황인데, 그에 대한 원죄를 정부와 여당은 진작부터 세월호에 모두 뒤집어 씌운 상황이기도 하다.  이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너무도 뻔하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세월호특별법으로 국론이 소모되고 있고, 야권이 발목을 계속 잡게 될 경우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일종의 협박성 읍소다. 

 

세월호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는 유족들의 외침을 경제 침체라는 이름으로 가로막고 이를 덮으려는 속내다.  이를 위해 작금의 경제 상황이 어렵다고 자꾸만 엄살을 떠는 것인데, 그렇다면 현재의 경제 상황이 과연 정부와 여당의 주장만큼 한없이 나쁘기만 한 것일까?

 

ⓒ한국일보

 

이를 위해 경기지표 몇 가지를 살펴 보자.  통계청이 29일 발표한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전체 산업생산은 2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소비 또한 전달보다 0.3% 증가했으며, 설비투자 증가율은 3.5%에 달한다.  향후 경기 국면을 보여주는 선행종합지수 순환변동치는 3개월 연속 높아졌다.  비록 빠르지는 않지만 완만한 경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의미이다. 

 

ⓒ뉴스와이 방송화면 캡쳐

 

소비자심리지수 역시 상승 추세다.  소비자들의 경기 기대감을 나타내는 이 지수는 보통 100을 넘을 경우 향후 경기를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이 더 많음을 의미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해당 지표가 8월 107로, 전달보다 2포인트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세월호 참사로 위축됐다던 경기가 정부의 읍소와는 달리 조금씩 살아나는 기미가 각종 경기지표를 통해 확인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디플레이션 초기에 와 있노라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의 경고와는 사뭇 거리가 있는 모습이며, 여당과 정부가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민생법안이 처리되지 않아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주장 또한 크게 설득력을 잃고 있는 셈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선두에 서고 부총리에 이어 총리까지 나서가며, 아울러 시장에 들러 평소엔 하지 않던 서민 코스프레까지 벌이는 진짜 의도는 과연 무얼까?  이들의 공통된 생각엔 세월호를 하루라도 빨리 덮고 싶다는 의중이 담겨있을 테다. 

 

때문에 유민 아빠의 단식 중단은 이들의 움직임에 커다란 동인이 된다.  세월호로부터 멀찌감치 벗어나기 위해 경제 위기를 조성하고, 민생을 살려야 한다며 압박을 가하고 있는 모양새가 딱 그러하다.  하지만 앞에서도 봤듯 민생법안이라 포장하고 있는 법안들 대부분은 실제 서민들의 삶과는 관련 없는, 재벌과 자본을 위한 법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결국 자본과 재벌을 살찌우기 위해 그의 반대급부로 국민의 안전과 생명 따위 내팽개치겠다는 의도와 뭐가 다르겠는가?  이를 위해 세월호로부터 비롯된 국민의 슬픔과 좌절은 아랑곳없이 대통령으로부터 총리 그리고 부총리까지 릴레이로 나서 정치권을 압박하고 또 시장을 찾아 서민 코스프레를 연출하고 있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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