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휴가기간은 지난 8월초였다. 물론 태풍이 지나던 와중이라 어디에도 못 가고 그저 방콕해야만 했다. 내심 다행이란 생각이 들던 참이다. 이래나 저래나 어차피 방콕할 계획이었는데, 태풍 핑계가 없었더라면 휴가라고 하여 변변찮게 보내게 됐다며 내게 쏟아질 그 원망들을 무슨 수로 모두 방어하겠는가?
이럴 땐 하늘이 정말 고맙다. 밖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상황이고 그렇게 방콕을 자처하며 잉여짓을 하고 있자니, 마눌님이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가 보다. 아니 실은 안쓰러웠던 게 아니라 날 부려먹고 싶어 안달이 났던 게다. 며칠 전까지 말리느라 마당 한켠을 차지하고 있던 마늘을 모두 거둬들였다.
과일칼 두 자루와 함께 이를 가져오더니 내 앞에 떡하니 펼쳐 놓는 게 아닌가? 이게 뭐하는 시츄에이션? 그런데 안타까운 건 휴가기간인데 날씨 핑계대며 딱히 어딜 가지도 않은 데다 잉여짓을 해야 할 상황에서 도저히 난 이를 물리칠 방도가 없었다. 마늘을 같이 까잔다. 잘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로 난 핑계거리를 찾고 있었다.
"주부습진 때문에 손가락 끝이 자꾸 벗겨지고 있는데, 이 작업하면 더 악화될 걸?"
사실이 그랬다. 엄지손가락 끝의 피부가 지문이 사라질 정도로 벗겨지고 있었다. 이런 여리디 여린 피부에 마늘의 독한 성분이 닿기라도 하는 날엔? 생각만으로도 너무 끔찍했다.
"괜찮아, 내가 지켜줄게."
마눌님은 내 손가락 끝마다 붕대로 칭칭 감고, 또 비닐장갑을 위에 덧씌우는 등 나름의 철벽 방어 시스템을 구축했다. 어쩔 수 없었다. 이 상황을 모면할 방법이 내겐 딱히 없었다. 그러고선 꼬박 네 시간 가까이 그 자리에 앉아 마늘 까는 작업에 몰두해야 했다. 허리가 아파오고, 다리가 저리며 손가락 끝마저 아려오기 시작했다. 어쨌든 난 부부일심동체라 우기며 함께 작업을 강요하던(?) 마눌님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 고스란히 따라야만 했다. 그래야만 지구가 평온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내 손가락 피부 벗겨짐 현상이 엄지를 벗어나 검지 중지 약지에서도 나타났다. 난 단순히 엄지 손가락에서 나타나던 주부습진이 좀 더 심해진 것이라 간주하며 열심히 약을 발랐건만, 외려 점점 악화되더니 벗겨지는 영역이 점차 확대되는 게 아닌가?
별 것 아니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이 증상이 얼마나 사소한(?) 고통을 선사해 주는지는 직접 겪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을 테다. 일상 생활에서 손가락을 이용해야 하는 활동이 이렇게나 많았던 건지 난 새삼 깨닫는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님으로부터 나처럼 손가락 피부가 벗겨지신다는 하소연을 듣게 됐다. 마늘 까느라 그리 됐단다.
아뿔싸~ 결국 나의 손가락 피부 벗겨짐 현상은 지난 휴가기간동안 마눌님을 도왔던 마늘까기의 후유증인 셈이었다. 마늘의 독한 기운이 철벽 방어를 뚫고 나의 연약한(?) 피부에 영향을 미쳐 오늘날과 같은 결과를 빚은 것이다. 그렇다면 내 손가락의 원흉은 누가 돼야 하는 게 맞는 걸까?
마눌? 마늘? 아니면 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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