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이 나라는 누굴 위해 존재하는가?

새 날 2014. 8. 22.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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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아빠의 단식이 40일째로 접어들었다.  주치의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기아와 영양 부족으로 인해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상태라 한다.  평범했던 한 가정의 가장이 어쩌다 이런 극한 상황에까지 내몰리게 된 걸까?

 

ⓒ뉴시스

 

실종된 정치와 소통 부재가 낳은 비극이다.  재보궐선거의 승리를 등에 업은 여당은 대화와 타협이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고사하고 자신의 의지대로만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선거에 패배한 야당은 제 구실을 못 한 채 끌려다니고 있다.  정부 최고 수반인 대통령은 두 팔을 낀 채 강 건너 불 구경하듯 이를 방관하고 있다.  이들에게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인가?  정치권과 대통령이 약속한 진실 규명 약속은 모두 어디에?

 

지난 14일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유족과 수차례 만나 그들과 고통을 함께하며 그들의 아픔을 위로해 준 반면, 박 대통령은 4월 16일 그날 이후 단 한 차례 유족들을 만났을 뿐 당시 굳게 했던 약속은 모르쇠로 일관한 채 나몰라라다.  교황 앞에선 세월호 유족들에 대한 관심에 감사한다 해놓고선 단식 때문에 기력이 쇠한 유민아빠의 만남 요청엔 공권력으로 화답했던 대통령이다.  그야 말로 불통대장이다.



오로지 권력의 눈치만을 살피며 정부와 여당의 앵무새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대다수의 언론들은 여론을 왜곡하는 일에만 앞장서고 있다.  자칭 보수라고 하는 이들은 오프라인에서건 온라인에서건 어떻게 하면 세월호 유족의 주장을 헐뜯을까만을 골몰하는 눈치다. 

 

이들에겐 진실규명 따위 애초부터 관심 밖의 일이다.  유족들을 조롱하고 폄훼하는 일이라면 그 어떤 수단과 방법마저 가리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세월호 참사를 자신의 일이라 여기지 않는 만용마저 부린다.  세월호의 진실이 이대로 묻히게 된다면,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가 자신과 자신들의 가족들 목을 언제든 같은 방식으로 겨눌 수 있을 텐데도 이러한 사실은 애써 감춘다.

 

ⓒ일요신문

 

이런 와중에 집권 여당과 대통령이 왜 이토록 안하무인 격으로 행동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새누리당 김을동 의원이 2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향해 “나라를 위해서 양보하라”고 했단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대한민국을 위해 우리의 안전과 생명을 내려 놓으라? 

 

세월호에 있던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더니, 또 다시 국민들더러 가만히 있으라 한다.  이 나라는 도대체 누굴 위해 존재하는가?  굳이 대한민국 헌법 조항을 들이대지 않더라도, 국민이 국가라는 사실은 이미 스크린을 통해서도 대중들에게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를 부인하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재난으로부터 재발 방지 장치 마련을 통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장해 달라는 요구 앞에 나라를 위해 이를 양보하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단언컨대 해서는 안 될 말이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대해, 비단 재외국민이라 할지라도,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이는 바로 국가의 존립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국민들더러 이를 양보하라는 발언은 국가가 져야 할 국민에 대한 의무를 내팽개치겠노라는 의미이자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자신의 책무를 방기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면 과연 무엇이겠는가?  

 

이는 현재 그들이 지닌 의식 수준의 단면을 증명하는 바로미터다.  그들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며 국민의 종이 되어 국민을 섬기려는 게 아니라 반대로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민아빠의 탄생은 어쩌면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유민아빠는 또 다른 우리 자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의 극심한 고통은 곧 우리의 고통이다.  그의 고통이 끝나야 우리의 고통도 함께 끝이 난다.

 

도대체 그들이 말하는 이 나라의 주인은 누구인 걸까?  나 같은 무지렁이야 도무지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허구헌날 국민들더러 국가에 양보하라 하지만 말고 이번엔 국가가 국민을 위해 통 크게 한 번 양보해 보시라.  일단 유민아빠부터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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