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툭하면 '해체'.. 해체가 능사인가?

새 날 2014. 8. 2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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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9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대통령 담화의 핵심 컨셉은 다름아닌 대국민 충격요법이었다.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보여준 해경의 무능한 대처에 대한 국정최고책임자의 화답은 '조직 해체'라는 극약처방이었다.  당시 이로부터 비롯된 논란은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비록 책임 회피에 다소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 깜짝 발표였지만, 대통령의 바램과는 달리 국민들은 이에 결코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기발한 패러디물을 선보이며 대한민국 사회에서 자꾸만 벌어지는 어이없는 일들에 대해 웃음과 풍자 코드로 맞서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SBS 방송화면 캡쳐

 

그런데 이렇듯 웃자고 벌인 패러디나 빈말들이 실제가 되어 돌아왔다?  어처구니없다.  김요환 육군참모총장이 20일 "반인권적이고 엽기적인 행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부대와 과거 사례라도 이를 은폐하고 개선 노력을 보이지 않는 부대는 발견 즉시 해체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해체'라는 단어를 또 다시 듣게 될 줄은 전혀 예측 못 했다.  난 박 대통령의 '해경해체'가 정말 마지막일 줄 알았다.

 

최근 잇따라 벌어지고 있는 병영 내 구타와 가혹행위 - 특히 남경필 지사의 장남 사건이 결정타인 듯싶다 - 에 대한 근절대책의 일환으로부터 비롯된 발언이다.  부대에 자식을 보내놓은 부모들의 불안한 마음을 불식시키기 위한 나름의 묘수를 꺼내 든 셈이긴 한데, 과연 이런 극약처방식 표현이 이미 상처입은 그들의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을까?  용어 자체가 주는 과격성과 폭력성 때문에 오히려 거부감만 생기지 않을까?

 

박근혜 정부가 '해체'라는 용어 사용에 재미들린 듯 무슨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전가의 보도인 양 이를 꺼내들고 있다.  이쯤되면 대통령의 '해경해체'에 이은 '해체'시리즈물의 완성버전이자 또 하나의 폭탄선언인 셈이다. 



이는 국군통수권자에 대한 육군참모총장의 충성 표현이기라도 한 걸까?  그렇다면 충성심을 굳이 이런 방식으로 표출했어야 할까?  심한 거부감을 느껴야 할 국민들의 정서는 전혀 고려 안 하나?

 

모두가 알다시피 조직을 해체한다고 하여 기존 조직이 안고 있던 문제점들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살짝 생긴 손가락 상처 때문에 손가락 자체를 잘라버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손가락을 자르는 게 아니라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소독약을 바르고 정성을 기울여 돌봐야 함이 온당한 방식 아닐까? 

 

작금의 사태는 과거 관행으로부터 지속돼온 그릇된 병영문화가 핵심이다.  본질을 변화시키지 않은 채 해당 부대를 없앤다고 하여 썩어 곪을 대로 곪은 군 문화가 절로 바뀔 리는 만무하다.  이런 방식의 무모한 대책이라면 병영문화가 개선되기 전에 이미 대한민국 군 부대는 단 하나도 남아있을 수가 없다.

 

ⓒYTN 방송화면 캡쳐

 

아울러 나름 충격요법이랍시고 과격한 표현력을 발휘한 듯싶지만 실제로 시간이 조금 지난 뒤 결과를 살펴보면 허언이기 일쑤다.  공언을 했으면 제대로 지키던가 이마저도 대선 공약 마냥 헌신짝처럼 내차버리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이 고심 끝에 해경을 없앤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지금쯤 이의 진척 상황은 어떨까?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해경 해체의 당초 방침을 바꿔 해양수산부 소속으로 이관해 사실상 존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모양새다.  구체적으로는 해경의 기구를 축소하고 기능을 불법어로 단속과 해양 구조 구난 경비에 한정시키며 명칭 또한 해안경비대로 변경하는 방안이 유력하단다.  물론 집권여당과 정부는 해당 보도 이후 이 같은 사실을 극구 부인하고 나섰지만, 아니 땐 굴뚝에서 과연 연기가 피어오를 수 있을까?

 

결국 말장난이란 셈이다.  자신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하는 부담스러운 여론으로부터 당장의 위기를 모면해 보고자 시간을 벌어 본질을 희석시키기 위한 용도로 꺼내든 카드의 일종이다.  국정최고책임자인 대통령부터 그 아랫사람까지 정제되지 않은 단어의 마구잡이 사용에 의해 애꿎은 국민들의 마음에 깊은 스크래치만 늘고 있다.  국민들의 정서 따위 전혀 아랑곳않는 눈치다.

 

이렇듯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문제점을 차근차근 고쳐나가려 하기보다 조직 자체를 해체하겠노라 선언하는 건 너무도 무책임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조만간 대한민국 하늘 아래에 놓인 군 부대나 공조직은 죄다 해체되어 공중분해되는 게 아닐까? 

 

더 나아가 이러한 논리라면 온갖 모순 덩어리이자 부조리의 결정체인 대한민국 전체를 해체하여 갈아엎은 뒤 리셋하는 게 수순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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