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코페르니쿠스도 울고 갈 획기적인 발상?

새 날 2014. 6. 23.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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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고성에서 벌어진 군부대 총기난사 사건으로 인해 휴일내내 온 국민은 불안감과 우울감을 호소해야만 했다.  더군다나 지구 반대편에서 펼쳐지고 있는 축구마저 도움을 주지 않는 모양새다.  꼭두새벽부터 길거리에서 혹은 가정에서 열심히 월드컵 응원전에 나섰을 이들을 일시에 침묵 모드로 빠져들게 한 우리 축구국가대표팀, 어쩔 수 없었을 테지만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포털사이트 검색결과 캡쳐

 

어쨌거나 코페르니쿠스의 학설이 받아들여지기 이전부터 지구는 열심히 돌고 있었으며, 우리 사회 역시 그에 맞춰 여전히 정신 없이 돌아가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계절의 변화만큼은 틀림없는 것 같다.  어느덧 6월 하순에 접어들며 장마를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전국의 지자체에선 본격적인 휴가 시즌에 앞서 매년 여름철이면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행락객의 물놀이 안전사고를 막기 위한 예방대책과 교육이 한창이다. 

 

그런데 한 지자체에서는 계곡에서 물놀이사고가 잇따르자 이를 막겠다며 해당 계곡을 아예 돌로 매워버리는 웃지 못할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22일 KBS의 보도에 따르면 충북 괴산에 위치한 계곡에선 해마다 물놀이사고가 잇따르자 지자체가 일주일동안 중장비를 동원, 이곳을 돌로 모두 메워버렸단다.  아름다웠던 자연 풍광은 덕분에 엉망이 되었을 테다.

 

ⓒKBS뉴스 방송화면 캡쳐

 

수난사고의 원인을 아예 근원적으로 없애 귀하디 귀한 인명을 구하게 되는 셈이니, 우린 이를 진정한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이라며 칭찬해 주어야 하는 게 맞을까?  이러한 논리라면 전국의 해수욕장과 계곡 등도 모두 위험 요소일 테니 아예 폐쇄 조치해야 하는 게 이치에 맞지 않을까?  이게 무슨 황당한 발상인가.   

 

마치 시민들이 길거리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려 도시 미관을 해친다며 쓰레기통을 모두 없애버렸던 단순한 발상이나 행태와 매우 유사하지 않은가?  벼룩 잡겠다며 초가삼간 태우는 꼴과 도대체 뭐가 다를까.  우리 사회, 그중에서도 특히 공직사회는 어떠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그 사안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여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경주하기보다 원인 제공을 한 대상 자체를 아예 없애버리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나친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결과물들이다.  안전에 취약하다면 그 주변에 안전 조치를 더욱 강화하여 같은 일이 재발 않도록 각별히 신경써야 하는 게 우선순위가 돼야 하지 않을까?

 

가깝게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도 우린 비슷한 사례를 엿볼 수가 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길에 올랐던 고등학생들이 한꺼번에 희생되자 정부는 각급 학교의 수학여행을 비롯한 각종 체험학습과 수련회 등을 전면 중단시키는 극약처방을 내놓은 바 있다.  세월호 참사의 본질은 수학여행이 아닐 텐데?  덕분에 관련 업계의 경영난이 가중돼 앓는 소리로 들끓자 이를 살리겠다며 이번엔 또 '여름휴가 하루 더 가기 캠페인'을 전면에 내걸은 정부다.  쓴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어디 그 뿐이랴.  세월호 침몰 직후 해경의 미흡했던 초동 대처가 또 다른 참사의 원인과 문제로 지목되자 대통령은 아예 해경 조직 자체를 통째로 해체하겠노란 초강수 대책을 빼들었다.  이 역시 본질은 따로 있는데 엄한 해경만 희생양으로 삼은 셈이다.  하물며 국정 최고책임자조차 당장 눈앞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만을 노린 엉터리 정책을 남발할진대 어쩌면 그 예하 일개 지자체에서의 비슷한 발상과 행태는 너무도 뻔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당장 물놀이로 인한 사고를 막는답시고 가까운 장래에 후손들에게 미치게 될 생태계의 중대한 변화에 대한 우려는 안중에도 없다.  계곡에 돌을 메웠으니 물놀이사고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테고, 관련 보고서엔 사고 절감 효과가 숫자로 정확하게 반영되리란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따라서 지자체는 해마다 반복되어온 수난사고의 비난으로부터 당장 벗어날 수가 있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우며 획기적인 발상인가. 

 

ⓒ경향신문

 

이렇듯 위로는 대통령으로부터 시작해 중앙정부, 그리고 지자체의 헛발질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일반 시민들의 이들에 대한 시각이 곱게 다가설 리가 없다.  지난 11일 검찰이 유병언과 그의 장남을 검거하기 위해 구원파 총 본산인 금수원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검찰 수사관 10여명이 경찰 초병을 세워놓은 채 낮잠을 자던 모습이 포착된 사례가 있다.  이를 지켜본 시민들, 대뜸 자신의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검찰도 함께 해체해야 한다며 해경 해체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22사단 소속 임병장의 총기 난사 도주 사건 역시 추후 비슷한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해당 군부대를 아예 해체해야 하는 게 정답 아니냐는 쓴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오고 있다.  물론 농담일 테다.  하지만 그저 웃어 넘겨버리기엔 그 뒷맛이 너무도 씁쓸할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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