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자칭 보수세력에게 품격이 요구되는 이유

새 날 2014. 6. 9.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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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보수니 진보니 하며 편 가르기 하는 세력 및 사람이 너무 싫다.  수 십년째 분단 국가로 살아온 우리에게 있어 이념 갈등은 여전히 뿌리 깊은 전통이자 해묵은 사회적 병폐이기에 이를 통해 편 가르기함은 그게 어느쪽이 됐든 결국 답습되어 온 사회적 갈등을 더욱 부추기는 셈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근래 화두로 꺼내든 도려내야 할 적폐란, 다른 무엇보다 바로 이러한 악습이 아닐까 싶다. 

 

우린 누구나 진보적이거나 보수적인 성향 양쪽을 골고루 갖고 있다.  하물며 보수 정당이라 일컫는 새누리당, 그리고 그들에 의해 곧잘 종북이라고까지 불릴 만큼 급진좌파(?)로 분류되는 새정치민주연합조차 의원 개개인의 이념 성향을 나열해 본다면 그 스펙트럼의 범주가 매우 넓기만 하다.  물론 무게추가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느냐에 따라 진보 혹은 보수 어딘가쯤에 뚜렷한 좌표로 자리매김 되긴 할 테다.  그도 여의치 않을 시엔 중도로 분류될 테니 말이다.

 

이때 특정 진영으로의 온전한 치우침이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렇듯 진영을 나눠 편을 가르려 함은 특정 목적을 가진 세력이 이를 통해 정치적 이익을 편취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그나마 제대로된 편 가름이라면 받아들이는 데 있어 거부감이 덜할 테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한 듯해 안타깝기조차 하다.

 

ⓒ민중의 소리

 

지난 7일 서울 신촌 일대에서 벌어진 성 소수자를 위한 퀴어문화축제, 이를 개최하지 못 하도록 행사 자체를 사전에 막거나 당일 행사 진행을 방해한 특정 종교 단체와 어버이연합과 같은 단체에 꼬리표처럼 늘상 따라 다니는 수식어 하나가 있다.  다름아닌 '보수'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다고 하여 불법으로 행사 진행을 못 하도록 막는 막무가내식의 편협하기 이를 데 없는 행위가 과연 제대로된 보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동아일보

 

아울러 모 일간지가 얼마 전 자체 분류한 주요 인터넷 커뮤니티의 정치적 성향 지도를 한 번 살펴보자.  다른 부분은 차치하고 눈을 최대한 오른쪽으로 돌릴 경우 특정 진영 쪽으로 치우친 커뮤니티 하나가 시야에 들어온다.  바로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다.  일베를 보수로 분류하고 있었다.  물론 일베 스스로도 자신들을 진작부터 '애국 보수'라 지칭해 왔던 터다.  이를 분석하여 분류한 신문사 자체도 실은 보수로 분류되는 대표 언론사 중 하나다.



그렇다면 '보수'란 무얼까?  이의 사전적 의미는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반대하고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유지하려 하는 성향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 과연 올바른 보수 세력이 존재하긴 할까?  물론 전혀 없진 않을 테다.  하지만 성 소수자의 축제를 막는 행위는 전통을 지키려 하거나 변화를 반대하는 것과는 성격이 판이하다.  특정 종교 단체나 어버이연합 등의 행태는 상대방과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 발현된 편협함의 한 양태이자 이를 막는 행위는 불법 폭력 행위에 다름 아니다. 

 

아울러 일탈과 패륜 행위로 사회적 물의를 일삼아 온 일베가 보수로 분류된다는 건 지나가던 개가 웃을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베라는 커뮤니티는 그저 회원들에게 내재돼 있던 은밀한 욕망의 여과되지 않은 배설 장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이기 때문이다.  만일 퀴어문화축제를 방해한 세력과 일베 따위를 보수라 지칭한다면 모든 보수 세력 스스로를, 물론 그 정도야 모두 다르겠지만, 그들과 같은 급으로 봐야 함이 맞겠다.  이런 시각에서의 보수라면 우리의 보수 세력은 그야 말로 파렴치한 집단이 아니면 과연 무엇이겠는가?

 

ⓒ연합뉴스

 

이번 6.4 지방선거를 통해 진보로 분류되는 교육감이 대거 당선됐다.  이에 마치 조건반사라도 되는 양 보수로 분류되던 세력들이 교육감 선거의 직선제 폐지를 일제히 주장하고 나섰다.  보수 교육감이 득세할 땐 애써 모른 체 하더니 상황이 역전되자 어김없이 꺼내드는 예의 그 패다. 

 

이들의 움직임은 예측으로부터 한 치의 어긋남도 없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이들의 주장이 정녕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제기한 결과물이 아니라는 얘기다.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교육 분야에 있어 보수적인 가치관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며,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과 행동은 결코 그 때문은 아닌 듯싶다. 

 

자칭 보수 세력이라 일컫는 이들의 교육감 선거 직선제 폐지 주장은 마치 대한민국 보수 세력의 모호한 정체성마냥 그저 진보 교육감들에 의해 자칫 정치적 판도와 지형에 적잖은 변화가 생길 것이 두려운 나머지, 아울러 자신들의 정치적 잇속을 꾀하고자 하는 얄팍한 속내를 비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이다. 

 

일찍이 고 리영희 교수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고 설파한 바 있다.  지극히 옳은 말씀이다.  허나 지금처럼 삐뚤어지거나 왜곡된 이념 간의 갈등이라면 양쪽 날개를 통해 균형을 맞추는 일이란 무척 요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칭 보수 세력들은 진영간의 균형을 외치기 전 우선 품격부터 먼저 갖추고 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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