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자사고엔 애틋', '혁신학교엔 냉혹'한 이중잣대

새 날 2014. 4. 4.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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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형 혁신학교가 사실상 폐지 수순에 돌입하며 2011년 출범 이후 최대의 위기에 내몰렸다.  3일 서울시교육청이 서울형 혁신학교 27곳에 대한 종합평가에 들어간다고 밝혔지만, 문용린 교육감은 애초 "혁신학교 재지정은 없다"라고 못박아온 터이기에 이는 요식 행위 내지 명분 쌓기에 불과해 보인다.

 

지난달 25일 서울교육청 기자실에서의 기자 간담회 당시 자사고와 혁신학교에 대한 문 교육감의 언급이 있었다.  자사고는 평가 기준에 못미치더라도 학교 구성원의 의지만 있다면 2년 동안 보완할 수 있는 유예 기간을 줄 것이라며, 앞서 교육부가 자사고에 대한 운영성과를 평가하여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학교의 지정을 취소해 일반고로 전환키로 한 방침에 대해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혁신학교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자사고에 대해서는 왠지 모를 애틋함을, 혁신학교에 대해서는 냉혹함을 견지하고 있는 듯 보인다.

 

자사고와 혁신학교는 현재 재지정과 지정 취소 여부를 위한 평가작업에 각각 돌입했거나 들어갈 예정이다.  매우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직 평가 결과가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교육감은 이미 패를 쥔 채 요식적이며 형식적인 절차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즉 이들 학교의 운명은 이번 평가 결과와는 아무런 상관관계 없이 이미 방향성이 결정된 것이라 관측된다.  

 

ⓒ연합뉴스

 

서울형 혁신학교는 입시 위주의 획일적 학교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자기주도적인 학습능력을 높여 공교육을 정상화시키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져 지난 2011년 첫 문을 열었다.  곽노현 전 교육감의 대표작품이다.  반면, 자사고는 이명박 대통령이 주도했던 이른바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의 부산물로서 특성화 및 다양화된 교육 서비스 제공을 목표로 만들어졌으나 고교 서열화에 따른 일반고 슬럼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며 폐지 여론이 들끓고 있는 상황이다.

 

문 교육감의 정책 방향은 뚜렷해 보인다.  자신의 정치색을 교육 정책에 그대로 덧씌우고 있는 모양새다.  교육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곽노현 전 교육감의 대표정책은 3년만에 완전히 흔적을 지우려 하고 있고, 반면 무수한 문제점이 노정된 이명박정부의 정책은 끝까지 고수하겠노라는 입장이 그를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공교육의 정상화를 꾀하기보다 학교 서열화를 부추기며 사교육을 더욱 장려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게 아니라면 과연 무얼까?  이쯤되면 서울시 교육수장으로서의 자질이 매우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혁신학교 지우기 행태는 사실상 문 교육감 취임시점부터 집요하게 이뤄져왔다.  지난해엔 혁신학교 조례안 제정을 놓고 서울시의회와의 감정싸움을 벌여왔고, 이들에 대한 예산 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서울시교육청 예산안 자체를 부동의하는 등 올해 혁신학교 예산마저 60% 이상 대폭 삭감시킨 상태다.  급기야 지난달 5일에는 혁신학교 사이트가 문 교육감 지시에 의해 사전 공지 없이 일방적으로 폐쇄된 바 있다.  혁신학교의 본격 폐지를 알리는 신호탄이자 수순밟기 절차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건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다.

 

이미 폐지나 재지정을 전제로 한 상태에서 이뤄지는 평가라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때문에 여기서의 평가란 폐지와 존속의 명분을 위한 요식 행위에 불과해 보일 뿐이다.  아울러 같은 평가를 놓고서도 자신의 정치색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의 결정을 보이고 있는 교육감의 두드러진 이중잣대는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정치적 성향에 따라 학교 운영 평가 제도를 입맛에 맞게 요리하여 기준을 그때 그때 달리 적용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폐지하거나 재지정의 명분으로 활용하고 있는 셈 아니면 과연 무얼까? 

 

백년지대계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마저 정치적 논리에 휘둘리며 고스란히 피해를 입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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