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우아한 거짓말> 심리적 부검 통해 드러난 우아하지 못한 거짓말

새 날 2014. 3. 13.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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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 않던 아이의 갑작스런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부모의 심경은 과연 어떨까?  게다가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면?  영화 속 천지 엄마(김희애)의 대사 한 도막이 이를 잘 표현해준다.

 

 

"가슴에 묻어?  못 묻어. 콘크리트를 콸콸 쏟아붓고, 그 위에 철물을 부어 굳혀도 안 묻혀. 묻어도, 묻어도, 바락바락 기어 나오는게 자식이야. 미안해서 못 묻고, 불쌍해서 못 붓고, 원통해서 못 묻어"

 

우리가 살아가며 현재 떠안고 있거나 혹은 미래에 다가올 문제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하지만 부모가 된 이후로는 애지중지 키워온 자녀에게 닥친 불행과 고통이 자신들의 그것보다 더욱 괴롭고 힘들기만 할 테다.  때문에 흔히들 자식 가진 부모를 죄인이라 표현하지 않던가?  자식과 맺어진 천륜, 부모들은 이에 따르는 죗값을 치르고 또 치러도 왠지 끝이 없다는 느낌을 항상 갖기 마련이다.

 

최근엔 수면 아래로 잠시 수그러든 듯 보이는 상황이지만, 물론 절대 그럴 리 없다,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학교 폭력 문제가 아이들의 연이은 자살로 이어지며 심각한 사회 문제로까지 대두된 바 있다.  이후로 학교 내에 학교폭력신고센터를 설치하거나, 경찰까지 뛰어들며 이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심지어는 대통령이 학교 폭력을 4대악의 범주에 넣어 별도의 정책으로 관리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듯 대한민국 어른들이 총동원되어 이의 해결 방법을 찾고 있지만, 표면으로 드러난 부분이 전부가 아닌, 워낙 복잡다단하게 얽힌 탓에 완전한 해결책을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현재로선 그저 대증요법을 통해 증상을 완화시키는 정도가 유일한 해결책인듯 보인다.  특히 왕따나 은따,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인해 최근 부각되고 있는 사이버불링까지, 학교 폭력에 대한 감시와 단속이 심해질수록 오히려 폭력의 유형은 더욱 다양해지고 심지어 교묘해지기까지 하고 있다.

 

이 영화는 학교 폭력에 의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아이의 삶을 반추해가며,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밝혀낸다.  그 과정에서 아이가 당했을 무수한 고통이 그려지고 있고, 궁극적으로는 이 아이의 희생을 통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비슷한 류의 아픔들이 모두 치유됐으면 하는 따뜻한 바램이 담겨져있다.

 

 

자매인 중학생 천지(김향기)와 고등학생 만지(고아성)는 아빠를 일찍 여읜 탓에 엄마와 셋이서 함께 살고 있다.  엄마(김희애)가 마트에 나가 일하며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는 일종의 한계가정이다.  언니에 비해 살갑고 다정다감하여 엄마에겐 늘 사랑스럽기만 했던 천지, 어느날 엄마에게 MP3 플레이어를 사달라고 조른다.  하지만 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 탓에 다음 기회에 사주겠다고 약속한 엄마, 일터에 나가 아침에 있었던 일을 곱씹어 보니 평소 사달라고 조르던 아이가 아니었기에 무언가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엄마는 만지에게 전화를 걸어 천지에게 어떤 종류의 MP3가 필요한지를 확인하라고 이른다.  이에 만지는 전화를 걸어보지만, 한동안 벨이 울려도 천지는 전화를 받을 줄을 모른다.  좋지 않은 상황임을 직감한 만지와 엄마, 함께 집으로 부리나케 달려가 보지만.. 

 

이미 늦었다.  천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 것이다.  황망했다.  불길한 예감은 왜 그리 잘도 적중하는지...

 

 

이후 엄마와 만지는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고, 주변 환경을 바꿔 유서 한 장 없이 떠나버린 천지를 의식적으로 잊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던 어느날 털실 뭉치 속에서 천지가 남긴 메시지를 우연히 발견한 엄마, 다시금 북받쳐올라오는 설움에 만지와 함께 우는데, 이때부터 만지는 그동안 까맣게 몰랐던 천지만의 삶을 역추적하여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주변의 친구들부터 수소문하기 시작하는데...

 

 

만지는 일종의 심리적 부검을 통해 천지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가를 차근차근 밝혀내기 시작한다.  심리적 부검(Psychological Autopsy)이란, 자살자의 사망 전 일정기간 동안의 심리 행동 양상 및 변화 상태를 주변인들의 진술을 통해 사망자의 삶에 대한 심리를 재구성, 가능성 높은 자살 원인을 추정해 보는 시도를 일컫는데, 북유럽의 핀란드에서 최초로 시도되어 자살 예방에 큰 효과를 보았으며, 최근 우리나라의 각 지자체에서도 이를 적극 도입 중에 있다.

 

흔히들 대놓고 따돌리는 왕따를 주된 학교 폭력의 문제로 떠올리기 쉽지만, 최근엔 은밀하게 따돌리는 '은따' 내지 인터넷 상에서 따돌리는 '사이버불링' 문제도 점차 심각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영화 속에서도 잠깐 등장하고 있지만, 한 사람을 앉혀놓고 주변의 다른 친구들끼리 스마트폰 메신저를 통해 그 친구의 뒷담화를 하거나 비웃으며 흉을 보아 일순간 바보로 만드는 일 따위들 말이다.

 

학교 폭력 문제의 해결방법이랍시고 교내에 CCTV 몇 대 더 설치하는 것으로 생색내기 하는 교육 당국의 현실을 영화 속에서의 엄마는 보기 좋게 꼬집는다.  학교 폭력이란 결국 사람과 사람 간의 일이기에 딱딱한 기계 몇 대의 설치만으로 이를 해결한다는 건 지나친 편의주의적인 발상이며,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은 너무도 자명하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 당국과 정부는 이렇듯, 아니면 숫자놀음과 같은, 여전히 형식에 치우친 정책들만을 남발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왕따를 당하는 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란 말이 학교 폭력 희생자들에게 있어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는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상처난 부위에 소금을 마구 뿌리는 행태와 비슷할 만큼 잔인하기 그지없다.  설령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손쳐도 그 때문에 학교 폭력이 정당화되고 희생자들을 비하하는 건 절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될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약해 보이거나 못나 보이는 동료를 타깃으로 정한 뒤 끊임없는 위해를 가하는 인간의 심리란 참으로 비겁하기 짝이 없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기 위한 추악한 수단화 아닐까 싶기도 하다.

 

 

천지의 친구 화연(김유정)이 그러했다.  그녀는 자신의 한없는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천지에 대한 은따를 택했다.  주변의 친구들에겐 돈으로 환심을 사고, 겉으론 마치 천지에게 있어 둘도 없는 친구인 양 행세하면서 돈으로 매수한 친구들과 함께 천지를 은밀히, 아니 노골적으로 따돌리며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힌다. 

 

만지의 심리적 부검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 화연의 우아한(?) 거짓은 천지의 죽음과 직접적으로 관련지어져 있었지만, 천지와 만지는 끝내 화연을 용서한다.  감독은 아마도 이를 통해 사회 구성원 모두의 치유를 바랬으리라.

 

 

현재의 삶이 비록 죽을 만큼 힘들더라도 이 또한 시간이 지난 뒤 되돌아보면, 당시의 힘들었던 일들이 결국 아무 것도 아니었음을 깨닫게 될 테니, 누구보다 사려깊고 배려심 많은 천지를 통해 자신처럼 극단적인 생각을 하고 있을 사람들에게 마지막 생명의 끈이 되어줄 것을, 이 영화는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

 

그래서 그럴까?  제법 무겁고 슬픈 주제를 담고 있지만, 감독은 코믹 요소들(유아인과 성동일?)을 곳곳에 배치시켜놓아 마냥 어둡거나 칙칙하지만은 않다.

 

감독 : 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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