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폭력시위 현장 연행, 경찰이 권력의 시녀가 될 참인가

새 날 2014. 3. 4.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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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한 경찰청장이 도심에서 벌어지는 불법 집회에 대해 강경 대응 입장을 내비쳤다.  3일 개최된 기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다.  그는 명백한 불법 폭력 시위 발생 시 가담자를 현장에서 검거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정치인 등 주요인사라고 해도 시위현장에서 법 질서를 위반할 경우 현장 연행을 고려하겠다고도 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 공권력의 오남용으로 인해 가뜩이나 유신시대의 회귀니 공안통치라는 살벌함으로 곧잘 비유되는 마당에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지 모르겠다.  물론 짚이는 대목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아마도 지난달 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서울 도심에서 개최된 국민파업 결의대회를 겨냥한 듯싶다. 

 

때마침 서울지방경찰청이 국민파업 결의대회 당시 행진을 주도했던 43명에 대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무더기 소환 조사하겠노라고 밝혔다.  당시 집회를 불법 폭력 시위로 단정지은 것이다.  이를 빌미로 여지껏 시위가 끝난 뒤 체증 작업을 통해 사법처리해오던 경찰의 관행마저 확 뜯어고쳐 결국 현장에서 직접 검거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이와 같은 발언은 비록 불법 폭력 시위란 단서조항을 달긴 했지만, 자칫 헌법에서 보장된 합법적인 시위의 자유마저 뭉개버리려는 발상 아닌가 싶어 짐짓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다.  가뜩이나 공권력의 남용이 심각한 상황인지라 이를 더욱 휘두르겠다는 발상은 국민의 기본권마저 심하게 훼손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하기에 충분하다.  헌법 제21조 1항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겐 집회의 자유가 보장되며, 어느 특정한 의제에 찬성하는 집단이 정부의 제한 없이 특정 장소에 모이는 자유가 허락된다.  하지만 경찰청장의 현장 연행 엄포는 이러한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으로서의 자유권의 일종인 '집회의 자유'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 

 

ⓒ매일경제

 

불법 폭력시위 자체는 이땅에서 사라져야 할 악습 중 하나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볼 땐 공권력이 애초 합법이었던 시위를 방해하거나 일부러 불법을 조장하여 폭력 시위를 유발하는 경우도 왕왕 존재하며, 때로는 공권력의 과도한 진압이 화를 자초하기도 한다.  25일 있었던 국민파업 결의대회에서도 시위대가 합법적인 행진을 보장받고 이를 시작하였으나 오히려 경찰이 불법적으로 가로막으면서 충돌이 빚어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반대로 보수단체가 사전 집회신고 없이 맞불 집회를 벌이거나 폭력을 일삼는 행위에 대해서는 관대하기가 그지 없다.  국민파업 결의대회가 있던 날 쌍용차노조가 대한문 앞에서의 집회를 위해 사전신고를 마쳤으나 보수단체가 그 자리를 꿰차고 앉아 불법 시위를 벌였으며, 그 과정에서 쌍용차 조합원을 폭행하는 사건까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제재는 없었단다.  군복을 입은 채 가스통과 사제 권총을 들고 위협을 가해오는 보수단체의 시위모습은 이제 일상과도 같다.  그렇지만 언제나 경찰은 나몰라라 뒷짐만 지고 있다.  이중잣대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례다.

 

공권력이 무엇보다 필요한 곳은 정작 따로 있다.  바로 치안과 범죄예방을 위해서다.  경찰 병력이 시위를 막는다며 모두 차출되다 보니 반드시 필요한 영역엔 구멍이 뻥뻥 뚫리기 일쑤다.  삼일절날 서울 압구정동의 한 빵집에서 벌어졌던 묻지마 인질극을 비롯 3일엔 입학식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가던 여학생이 일면식도 없는 괴한이 휘두른 칼에 찔리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불특정 다수를 노린 묻지마 범죄다.  이런 상황에서 불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외려 정상이 아닐 테다.  치안이 위태로울 지경이다. 

 

ⓒ서울신문

 

그뿐 아니다.  지난달 28일엔 한 병원 로비에서 성폭행 피해를 주장하던 10대 여성이 그에 따른 합의를 위해 병원을 찾은 가해자에 의해 흉기에 찔려 숨지고, 가해자는 경찰에 쫓기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찰이 피해자 신변 보호에 보다 적극적이었다면 두 사람의 안타까운 목숨 모두를 건질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경찰청장이 직접 나서가며 발언해야 하는 건 '시위 현장 연행'과 같은 사안이 아니다.  바로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직접적으로 위협해오는 치안 부재 상황으로부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밝히는 게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함이 옳겠다.

 

공권력의 남용이 국민들에게 어떤 폐해를 끼쳐왔는지 우린 과거 정부에서 여실히 경험해 왔다.  국민들과의 쌍방향 소통을 틀어막은 불통정권에서, 주요 권력기관 중 하나인 경찰이 국민들의 자유를 더욱 옥죄겠다며 윽박지르는 것은 스스로 권력의 시녀가 되겠노라 선언함과 진배 없다.  때문에 자칫 의식 않고 마음껏 누려왔던 것들마저 통제받는 사회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여 우려스럽기 그지없다.

 

박근혜정부, 부정선거를 규탄해오던 국민들의 목소리가 잠잠해지던 찰나 대통령 취임 1주년을 기점으로 다시금 불씨가 되살아나는 건 아닐까 싶어 전전긍긍했는가 보다.  사전 허가를 받은 합법적 시위마저 경찰 버스로 차벽을 둘러 막는등 박근혜 정부는 지나칠 정도로 공권력의 사용을 편애하고 있다.  마치 7,80년대 정권의 안위를 공권력으로 유지했던 군사정권시절을 연상케 할 만큼 위압적인 분위기를 연출해오고 있는 것이다.  평소 법과 원칙을 유난히 강조해온 박근혜 대통령이지만, 정작 스스로에겐 무척 관대하여 공약 파기 등 기존 원칙들을 모두 깨나가고 있는 와중이다. 

 

그러면서도 국민들에겐 법을 지킬 것을 강요하는,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엔 SNS 유언비어에 대한 강력 대응을 언급하며 표현의 자유마저 옭아맬 듯한 기세를 보이더니 급기야 헌법에서 보장된 국민들의 자유마저도 제재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는 것이다.  그 와중에 치안엔 구멍이 뻥뻥 뚫리며 국민들의 안전과 생명이 위협을 받고 있다.  우리 사회의 시계는 지금 어디쯤 가리키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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