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3.1절 교학사 교과서 판매, 광복절에 일장기 흔드는 꼴

새 날 2014. 3. 1. 08:16
반응형

지난해 여름부터 전국을 뜨겁게 달궜던 교과서 전쟁은 국정 교과서 체제로의 회귀 움직임에 대한 반발이 거세게 일자 지난 1월 교육부가 최종 해결책을 6개월 뒤로 미루면서 잠시 휴지기에 들어간 상태다.  교과서를 둘러싼 역사 헤게모니 쟁탈전이 모두 끝난 게 아닌, 여전히 수면 아래에서 잠복 중이라는 의미이다.

 

ⓒ머니투데이

 

한편 올해 새 한국사 교과서를 채택한 전국 고등학교 1794곳 중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부산 부성고가 유일하다.  비율로 환산하면 약 0.055%에 해당한다.  자칫 단 한 곳도 선택받지 못할 위기의 상황에서 그나마 부성고가 교학사 교과서 진영의 체면을 살려준 셈이다.  영패를 면한 것으로 만족해야겠지만, 참패도 이런 참패는 드문 일일 테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교학사 교과서는 일선 학교에서의 선택을 받지 못하며 국민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을 받았고, 때문에 이미 교과서로서의 생명에 종언을 고한 셈이다. 

 

이렇듯 상식을 벗어난 역사 기술 탓에 국민들과 일선 학교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하며 폐사 위기에까지 내몰린 교학사 교과서에 산소호흡기를 달아주며 생명 연장을 시도하려는 세력들이 있다.  이를 일반인들에게 직접 판매하겠다고 나선 매우 의로운(?) 사람들이 등장한 것이다.  교학사의 재고 부담을 덜어주려는 그들의 노력과 시도는 신선함(?)마저 느껴지며 한편으론 제법 눈물겹기까지 하다.  



그것도 다른 날이 아닌, 무려 3.1절 기념일에 판매하겠단다.  자유통일포럼과 교과서살리기운동본부 등은 3.1절인 3월 1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시민대회를 열고,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현장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다.  이날 대회에는 변희재, 조전혁 등 자칭 보수 논객들이 대거 등장하여 '바른 역사 독립 선언문'을 낭독할 예정이란다.  유관순 열사가 지하에서 통곡할 만큼 기가 막힌 발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들의 엽기발랄한 패기 하나만은 정말 높이 사주고 싶다. 

 

물론 그들의 친일 교과서를 향한 충정과 열성이 단 하루만에 표출된 객기와도 같은 그러한 성질의 것은 분명 아니다.  주도면밀한 움직임 속에서 발현되고 있는 여러 현상 중 하나다.  극우 코스프레 커뮤니티 '일베'와 그의 추종세력들은 일찌감치 교학사 교과서 구매운동을 벌여온 바 있다.

 

또한 지난 2010년 전교조 명단을 전격 공개하여 물의를 일으켰다가 결국 전교조 교사들에 대한 배상 판결을 받은 바 있는 조전혁 전 의원이 지난달 24일 서울시교육감 출마를 저울질하며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교학사 교과서를 가보로 한 권씩 사두라고 일갈했다.  현재 그는 '교학사 교과서 살리기 운동본부' 본부장을 맡아 교과서 구매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중이며, 이번 3.1절 시민대회 계획에도 한 몫 단단히 거들고 있다.

 

교학사 교과서의 문제점에 대해선 그동안 수많은 매체와 사람들을 통해 숱하게 파헤쳐졌기에 더 이상의 언급은 의미가 없을 듯싶다.  다른 부분을 다 떠나 일선 학교에서의 채택률이 가장 객관적인 근거다.  친일논란을 빚고 있는 교과서를 그것도 3.1절 기념일에 판매하겠다는 것은 교학사 교과서가 담고 있는 친일사관과 역사왜곡에 대한 내용 이상의 충격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독립운동을 벌여왔던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독립투사들과 그 후손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분들의 희생 덕분에 이렇듯 한반도에서 숨쉬며 살아가는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에 대한 모욕 행위에 다름아니다.

 

ⓒ뉴시스

 

다른 날도 아닌, 95주년 3.1절 기념일에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이러한 퍼포먼스를 계획한 그들의 망동은 그저 갸륵하고(?) 놀라울 따름이다.  친일 논란을 야기하며 일선 학교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 교과서를, 일제에 항거하며 독립운동을 펼쳤던 유관순 열사를 기리는 국가 기념일에 판매하겠다는 계획은,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화두로 꺼내든 창조경제에 버금갈 만큼 뛰어난 발상의 전환이자 창의적 사고력의 전형을 보여주는 사례라 생각될 정도다. 

 

이는 마치 삼일절에 집집마다 태극기 대신 욱일승천기를 달거나 광복절에 광화문 한복판에서 일장기를 흔들어대고, 아베의 극우망동에 잘한다며 박수치는 것과 같은 꼴이 아니면 과연 무엇일까.  부끄럽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