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걸을 때조차 스마트폰을 사용해야 할까요?

새 날 2014. 2. 28.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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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꽤나 따뜻해졌죠?  봄 기운이 정말 완연합니다.  덕분에 겨우내 끼었던 장갑을 벗어 서랍 속에 고이 모셔놓아도 될 것 같습니다만.. 

 

그럼 한결 자유로워진 우리들 손에 들려진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네..  답은 쉽게 예측 가능합니다.  "휴대폰이요"라고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듯하네요.

 

ⓒ연합뉴스

 

그렇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진화한 휴대폰이 언제 어디서고 우리들 손을 떠날 줄을 모릅니다.  최근 영화관에 가보면 예전엔 흔치 않던 광경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영화 관람 중에도 수시로 휴대폰을 꺼내 확인하는 사람들이 부쩍 는 것입니다.  가뜩이나 액정 크기가 광대해지고 밝기마저 환해져서 이러한 행위는 깜깜해야 할 영화관의 환경을 크게 어지럽혀, 주변 사람들의 영화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길 걸을 때조차 손에서 놓지 못하는 스마트폰

 

비단 영화관 뿐이겠습니까?  특히 길을 걸을 때면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음악을 듣거나 영화관람, 동강과 TV시청, 그리고 심지어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로 넘쳐나 예전보다 보행에 더욱 많은 신경을 쏟아부어야 할 판입니다.  신경 쓰지 않고 걷다가는 휴대폰에 빠져 허우적거리느라 주의력을 잃은 휴대폰족들에 의해 정면 충돌이라는 불상사가 발생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길을 걸으며 휴대폰을 사용하는 행위는 마치 차량 운전 중 DMB를 시청할 경우 전방주시율이 58.1%로 급감하여 사고의 개연성을 높이는 상태와 흡사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평소 우리의 시야각은 120도에서 150도 사이를 유지하지만 휴대폰을 보며 걸을 때는 20도 이내로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습니다.  때문에 이 같은 행위는 보행자 자신의 안전에도 크게 위협적인 요소가 될 수 있지만, 자칫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사안입니다. 

 

ⓓ머니투데이

 

실제 한 통계조사에서도 이를 증명해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교통안전공단이 실시한 '스마트폰 사용이 보행안전에 미치는 위험성 연구' 결과,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시 사고위험이 76%나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최근 4년간 휴대폰으로 인한 보행 중 교통사고가 1.94배나 증가한 것입니다.

 

보행 중 휴대폰 사용족들, 당연히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일반적으로 그 상태를 유지하며 걷습니다.  저도 횡단보도를 건너며 단순히 문자 하나 보내던 와중에 발을 헛딛거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멀찌감치 간 경험이 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기에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을 크게 빗나간 결과였습니다.  이후로는 문자를 사용할 일이 있을 경우 차라리 잠깐 서서 작성하여 보낸 후 이동하곤 합니다.

 

ⓒJTBC

 

의외로 횡단보도 내에서 일어나는 교통사고 비율이 무시 못할 만큼 빈번했습니다.  지난해 차와 보행자 간 교통사고 중 39%가 횡단보도에서 발생한 것으로 조사된 것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보행자 4명 중 1명 꼴로 딴 짓을 하며 길을 건너고 있었는데, 최근 부쩍 늘어난 행태 중 하나가 바로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횡단보도를 이용하는 일이었습니다.

 

휴대폰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 절대 주변 사람들 의식 않고 그냥 걷기만 합니다.  당연하겠지요?  주변을 의식할 만한 여력이 없을 테니까요.  결국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들을 알아서 피해가야 할 상황인 것입니다.  마치 지뢰 피하기 게임과도 같은 형국이지요.  스마트폰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아울러 이의 활용 범주가 점차 넓어져, 언제 어디서고 이를 꺼내들어 활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진 상황이라 이제 인도는 그들로 넘쳐납니다. 

 

좁은 인도는 가뜩이나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점령해 들어와 늘 위협을 느껴왔던 터, 이젠 휴대폰족들로 인해 또 다른 위협에 맞닥뜨리게 된 것입니다.

 

휴대폰 사용마저 법으로 규제?

 

이를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사생활의 자유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서라도 지금처럼 마냥 무한 자유를 향유해야 하는 게 맞는 걸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해할 수 있는 행위는 지나친 이기심의 발로이기에 상대방을 배려해달라고 하소연하거나 각종 매체의 캠페인을 활용, 이를 널리 알리기만 하면 그만인 걸까요, 그도 아니라면 좀 더 강력한 제재를 위해 '운전중 DMB시청 금지'처럼 법으로 규정하여 제약을 가해야 할까요? 

 

 

이 대목에서 이미 2012년 당시 언론에 보도되며 많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외국의 한 사례가 떠오릅니다.  미국 뉴저지 주 포트리시에서는 걸으며 문자를 보내다 적발될 경우 85달러의 벌금을 물어야 한답니다.  아울러 유타 주 또한 50달러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는 점차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중이랍니다.

 

물론 미국의 이러한 사례, 별로 바람직스럽지 않게 와닿습니다.  지극히 사적 영역인 휴대폰의 사용을 법으로 규제하자는 의견엔 동조할 수가 없는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사생활마저 국가와 법이라는 이름으로 규제해 들어온다는 건 상상만 해도 끔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냥 주어진 개인의 자유로 인해 외려 주변의 다른 많은 사람들의 자유가 침해받게 된다면? 

 

비교 대상이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이쯤에서 흡연권과 혐연권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흡연권은 사생활의 자유를 인정하는 기본권을 바탕으로 한 권리입니다.  혐연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사생활의 자유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생명권까지 확장해서 생각해 볼 때 결국 혐연권이 흡연권보다 상위의 기본권이 됩니다.  이는 일찍이 흡연권은 혐연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 인정되어야 한다고 헌재가 명확하게 판시한 바 있습니다.

 

차량 운전 중 DMB시청 제한도 마찬가지의 개념입니다.  DMB를 시청할 수 있는 권리는 인간의 존엄과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이자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당하지 않을 기본적 권리에 해당합니다만, 거꾸로 이로 인해 다른 이들의 자유와 생명을 앗을 수 있는 개연성이 엄연히 공존하기에 국가가 개입하여 법으로 규제하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과 같은 스마트폰의 폭주는 새로운 기기의 탄생과 이의 보편화 과정을 거치며 따르게 된 과도기적 상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인해 애나 어른 할 것 없이 누구나 이에 빠져들고, 손에서 놓지 못한 채 심지어 길을 걸을 때조차도 이를 활용해야 하는 새로운 풍경말입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새롭게만 느껴졌던 스마트폰에 대한 호기심과 활용도가 시들해질 무렵, 어쩌면 다시 예전과 같은 평온한 거리 풍경을 되찾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자유는 스스로 가꾸고 지켜 나가야

 

최근 라디오를 켜면 낯 선 캠페인성 광고 하나가 귀에 들어옵니다.  스마트폰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각성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광고입니다.  이제 캠페인으로 이를 알려야 할 만큼 일상적인 모습이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거니와 그 만큼 스마트폰이 우리 사회에 새로운 골치거리로 등극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채널IT 방송화면 캡쳐

 

길을 걸으며 휴대폰 사용을 자제하는 행위는 보행자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데 있어서도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겠고, 더군다나 애꿎은 가해자를 양산해낼 수도 있는 사안입니다.  때문에 휴대폰 사용자들이 스스로 이를 자제하지 않을 경우 결국 언젠간 국가와 법의 개입이 불가피해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때문에 미디어 매체를 활용한 작금의 캠페인은 이를 알리는 경고음 쯤으로 받아들이면 정답일 듯싶습니다. 

 

누구나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받기 원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남에 대한 배려 없는, 과도할 만큼의 이기적 자유 행위는 자칫 만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을 초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결국 사회 구성원 모두의 자유를 지키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선 적정 선에서의 개인적 자유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국가나 사회의 간섭 없는, 스스로의 통제 하에서 말이지요. 

 

너무 과도한 자유 행위는 방종으로 귀결될 수 있으며, 때문에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때로는 제재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자유는 스스로가 가꾸고 지켜나갈 때에만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현재의 상황으로 볼 때 개인 각자가 조금씩 양보하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와 행위가 그 무엇보다 우선시돼야 할 덕목이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도 한 번 고려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국가와 법의 개입 말입니다.  모두가 자신만이 옳다며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이 무한정 자유를 갈구한다면 위에서도 언급했듯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한 가지 우려스러운 건, 박근혜 정부가 가뜩이나 전체주의적 통치 행태를 보이고 있는 찰나인지라 유신시대의 부활이니 독재적 발상이라는 둥 자칫 되로 주고 말로 받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을까 봐 솔직히 염려 아닌 염려가 되는 게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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