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시국미사, 민주주의 위기를 경고하다

새 날 2013. 11. 23.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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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면책특권을 부여한 적이 없다. 자신의 역량을 반성한 다음 정치적 거취를 고려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1974년 서슬퍼렇던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첫 시국선언이 있었다.  그로부터 무려 40년의 세월이 흐른 뒤인 2013년 그들로부터 또 다시 시국선언문이 낭독됐다.  공교롭게도 시국선언이 있게 만든 장본인은 부녀지간이다.  하지만 1974년의 첫 시국선언문과 2013년 시국선언문의 내용은 엄청난 시간적 간극을 무색케 할 만큼 대동소이하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우리 사회에 힘겹게 뿌리 내려진 민주주의의 근간을 자꾸만 흔드려는 세력이 있다.  지난 18대 대선은 애초 국가기관의 조직적인 선거 개입 하에 이뤄진 부정선거임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정작 부정선거의 최대 수혜자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감추려 하거나 애써 모른 척 외면하고, 심지어는 진행되고 있는 수사에 대해 검찰 수장과 수사팀장을 찍어내기 하는 등의 파렴치한 개입과 조작마저 자행하고 있다.  입장을 밝히고 사과하라는 국민들의 절규와 외침에도 절대 요지부동이다.  어렵게 일궈낸 우리의 민주주의가 최대 위기를 맞은 셈이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불법선거 규탄과 박근혜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 개최

 

일찍이 박정희 유신정권시절 시국선언과 함께 민주화운동을 벌여나간 바 있고, 1987년 6.10 민주항쟁 당시엔 군사독재를 향한 국민적 저항의 물꼬를 터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있게 한 이들이 바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다.  사회에 정의가 흔들릴 때마다 이를 바로 세울 수 있도록 참여를 통해 몸소 실천에 옮겼던 그들이기도 하다. 

 

 

그들이 다시 나섰다.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소속 사제들과 평신도 200여 명은 22일 오후 7시 전북 군산 수송동성당 본당에 모여 '불법선거 규탄과 박근혜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를 개최했다. 

 

이미 환하게 켜진 진실을 그릇이나 침상밑에 둘 수는 없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났다(루카 8,14-15)

 

사제들은 이와 같은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모든 책임이 있는 박 대통령이 사퇴할 것을 촉구했다.  앞서 천주교 전주교구 신부와 신자 800여 명은 지난 8월 전주 중앙성당에서 시국미사를 개최,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비판하며 진실 규명과 책임자 사과를 요구했으나 당시 박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때문에 이번 시국미사를 계획하게 됐다는 전언이다.

 

발끈하는 청와대와 새누리당

 

시국미사를 접한 청와대가 당장 강한 불쾌감을 표출해 왔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기도란 잘 되기를 바라면서 은총을 기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는 것은 잘되라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은 지난 10개월간 참으로 혼신의 노력을 다해 국민 행복을 위해 진력해왔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역시 발끈했다.  홍문종 사무총장은 이날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시국미사는 사법부의 권위를 훼손하는 일이며, 사회혼란을 야기하는 일이자 국민들을 우롱하는 일이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당선된 정통성있는 대통령을 부정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으며, 국민화합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국민의 역풍을 맞을 것이다"라며 경고의 메시지를 선사했다.



여권이 노여워할 만한 이유는 알 것도 같지만 왠지 저들의 발언엔 어폐가 있는 듯싶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긴 하나 그 절차가 민주적이지 못한 부정선거였다면 과연 이를 인정할 수 있는가?  게다가 모르쇠로 일관하는 뻔뻔함마저 갖췄다면?  지난 10개월간 혼신의 노력을 다해 국민 행복을 위해 진력해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정선거를 덮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경주해온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다.

 

아울러 시국미사가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라 했는데, 부정선거로 대통령이 되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 아닐까?  민주적 절차에 의해 당선된 정통성 있는 대통령?  과연 이게 무슨 궤변인가.  민주적 절차에 흠결이 있는 부정선거가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더군다나 국민을 향해 역풍에 대한 경고까지 잊지 않는 센스를 보아하니 역시나 저들 답다는 느낌이다.

 

흠칫 놀란 민주당

 

이번엔 민주당의 표정을 살펴보자.  '박근혜 대통령 사퇴 촉구'라는 발언에 흠칫 놀란 기색이 역력해 보인다.  자신들이 하지 못한 표현을 대신해준 셈이니 내심 속이 후련했어야 정상 아닐까?  하지만 역시나 대선불복 프레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그들이다.  치졸한 새누리당이 이를 역이용하려들 것이란 건 삼척동자도 알 만한 일이다.  역시나 그들답게 야권 연루설을 주장하며 역공을 퍼부었다.

 

때문에 민주당 민병두 전략홍보본부장은 "사제단은 정의를 제일로 생각하는 집단이어서 나름 의미는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 분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경청할 뿐 협력은 안 된다"며 명확히 선을 긋는 모양새다.  민주당의 이러한 답답한 태도에 대해선 일견 수긍이 가는 측면이 있긴 하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50%를 훌쩍 넘는 박 대통령의 지지율과 새누리당의 인기에 비해 자신들의 그것은 초라하기 그지 없다.  권력을 재차 창출하기 위해 두 팔 걷어부친 상황에서 현재의 정치적 지형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게다.

 

여권이 만들어 놓은 대선불복 프레임에 자칫 걸려들기라도 하는 날엔 역풍 한 방에 풍비박산이 될 수도 있음을 진작 간파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옳은 걸 옳다고 말하지 못하는 야당의 약해 빠진 전투력을 보노라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열불이 치솟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배재정 민주당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오죽하면 천주교 사제들까지 나서서 대통령 사퇴를 요구하는 시국미사를 하려고 하는지 박근혜 대통령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며 시국미사의 당위성과 그에 대한 책임을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게 돌리고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응답하라

 

높은 지지율에 의지한 채 높은 성곽 안에 숨어 국민들과의 소통 따위는 아예 외면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대통령선거가 있은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는 상황에서 과연 언제까지 똑 같은 패턴을 보여줄런지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젠 성 안에서 그만 나와 국민들의 바램이 무언지 제대로 귀 담아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작금의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서 외치는 사퇴가 진정 사퇴를 위한 주장으로 보이는가?  아니다.  그들이 외치는 사퇴란 대한민국에 닥친 민주주의의 위기를 알리고자 하는 일종의 경고음이다.  정의구현사제단이 나섰다는 건 우리 사회에서 정의가 사라지고 불의한 기운이 그 만큼 만연해 가고있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함이다.

 

첫째, 국민의 정당하고 건전한 비판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1조와 민주주의 원리에 입각한 것임에도 모르는 척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둘째, 국민은 대통령이라고 해서 비판을 면제받을 특권을 준 적이 없다. 주권자는 국민이고 대통령은 공복인데 이런 사실을 왜 외면하려 하느냐

 

셋째, 국민의 저항과 비판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의 지도역량과 국민의 뜻이 어디 있는지 확인하고 거취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가

 

박 대통령은 정의구현사제단이 던진 위 세 가지 질문에 대해 명확하게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며, 민주주의를 위기로 내몬 과오에 대해 사과하고 진정성 있게 책임지는 모습을 국민들 앞에 보여주어야 한다. 

 

'이미 환하게 켜진 진실을 그릇이나 침상밑에 둘 수는 없다' 는 정의구현사제단의 앞선 성경문구를 재차 인용하며 글을 맺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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