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3자회담 결과, 불통과 독선이 빚은 정치 실종

새 날 2013. 9. 17.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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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3자회담이 끝난 후 청와대는 이정현 홍보수석의 입을 빌려 "박 대통령이 여당과 야당 대표를 잇따라 역임하고 5선의 국회의원 활동을 했던 의회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라며 자평했다.  이는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의 언론 매체들이 3자회담 결과에 대해 내린 가혹한 평가와는 사뭇 달라,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현실 인식이 어떤 수준인가를 그대로 드러내는 발언이었다.

 

입장차만 확인하고 평행선 달린 3자회담

 

3자회담 결과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참혹했다.  정국은 이미 이석기 의원 사태로 인해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상황, 헤게모니를 빼앗긴 야당은 계속돼온 장외투쟁에서 벗어날 명분이 필요한 시점이었고, 해외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에겐 정국 정상화를 위해 야당이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상호간 이해관계가 끈끈하면서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고 있던 시점이었다.  

 

 

이를 위해 여당과 청와대는 한껏 분위기를 달궈가며 3자회담을 마련하였지만, 뜻하지 않게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의 표명 사태가 불거지며 동시에 해당 사건이 정국 경색의 뇌관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민주당은 이번 회담이 사실상 결렬이라 판단하고 크게 격앙된 분위기에서 총 궐기를 선언했다.  차라리 잘된 일이다.  이참에 그동안 무뎌졌던 제1야당으로서의 야성을 좀 더 예리하고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겠다 싶다.  김한길 대표의 가뜩이나 많은 흰 머리가 더욱 늘어날 것 같아 조금은 안쓰럽다.  만약 채 총장 사태가 터지지 않았더라면, 고심 끝에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원하던 바대로 굴욕적인 결과로 회담을 마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석기 의원 사태로 인해 정국이 민주당에게 급속도로 불리한 환경이 조성되어 사실상 장외투쟁을 계속하기도 그렇고 안 하기도 어려운, 이도 저도 결정하기가 난감한 상황이었기에 민주당은 출구전략을 위해서라도 아마 적당한 수준의 타협을 시도하려 했을지 모른다.

 

 

아울러 박 대통령은 채 총장 사태와 상관 없이 이번 3자회담 결과처럼 어차피 자신이 하고픈 말만 던지고 야당에겐 굴종을 강요했을 것이 틀림없다.  이번 회담 또한 작정하고 발언한 기색이 역력하다.  야권에 대한 배려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그런데 때마침 터져준 채 총장 사태는 민주당에게 다시금 투쟁의 기운을 북돋워주며 꺼져가던 야성의 불씨를 되살리게 해준 셈이 됐다.  이번 회담을 통해 청와대와 박 대통령의 의중을 확실히 파악했으니, 회담에 대한 성과가 전혀 없었노라고 할 수도 없다.  박 대통령의 전혀 변하지 않은 오만과 불통 정치를 재차 확인하고, 온 국민이 이를 주시하고 있었을 테니 그 자체가 이미 회담의 성과다.


 

정통성 시비에서 벗어나고픈 조급증이 빚은 무리수

 

한편 사퇴 의사를 밝힌 사람에 대해 사표를 반려하고 감찰을 하겠다는 저의는 또 무엇인가.  설사 혼외아들 의혹이 사실이라 치자.  사퇴 의사로써 이미 의혹이 사실이든 아니든 책임을 다한 것 아니겠는가.  공직에 남지 않겠다는 사람을 끝까지 남겨서 계속 물어뜯고 만신창이로 만들어 도대체  무엇을 얻어내겠다는 심산인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도저히 납득이 가질 않는다.  이는 죽은 사람의 사체를 끄집어내어 부관참시하는 일과 뭐가 다르겠는가.  그저 자신들의 공작 행위를 묻어버리기 위한 치졸한 억지 몸짓으로만 읽힐 뿐이다.

 

 

이렇듯 논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도저히 말이 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취임한 지 이미 6개월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권은 여전히 정통성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결국 스스로 정통성을 부여하려다 보니 자연스레 조급증이 뒤따르게 된 것이며 이로부터 비롯된 무리수가 자꾸 발생하게 되고, 따라서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임인 이명박정권조차, 비록 현재 아무리 욕을 먹고 있더라도, 최소한 정통성 시비에선 자유로웠다.  이번 정권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우리 사회, 정치란 녀석은 도대체 어디로 꼭꼭 숨어버린 걸까?  실은 초등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사회 교과서에도 정치의 개념은 기술되어 있다.  사람들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과 다툼을 조정하고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동의 문제를 해결해 가는 활동을 정치라고 말한다.  아울러 민주정치는 대화와 타협의 원칙에 따라 이뤄진다고도 기술되어있다.  

 

이번 3자회담만을 놓고 볼 때 박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 정치인들, 초등학교 교과서에 언급된 것처럼 과연 직업인으로서의 정치를 충실히 하고 있노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까? 

 

전격 불통 선언, 정치 실종의 시대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던 야당이 줄기차게 요구했던 양자회담에 대해선 번번이 무시로 일관해오다가 이석기 사태로 야권 전체를 그로키 상태로 몰아넣고 홀연히 해외순방을 떠났던 박 대통령, 귀국 뒤 마치 인심 쓰듯 야당에게 3자회담을 제안하며 이들을 입맛에 맞게 요리해왔다.  따라서 이번 3자회담의 키는 결국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온전히 쥐고 있던 셈이다.  그렇다면 야당의 입장에선 어렵사리 성사된 자리이니 만큼 현재의 첨예한 갈등과 다툼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회담 다운 회담이 이뤄졌어야 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태도에서 단 한 치의 움직임도 없이 앵무새처럼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는 박 대통령의 그 일관됨과 집요함의 자세는 그저 놀랍고 어찌 보면 섬뜩하기조차 하다.  불통도 이런 불통은 없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 자신만이 옳은 것이며,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은 모두 잘못됐고 틀리다고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이정현 홍보수석이 자랑삼아 늘어놓던 "5선의 의회주의자로서의 면모"가 지금처럼 일방통행식의 자기 주장만을 굽히지 않는, 그런 것인지 되묻고 싶다. 

 

아울러 눈망울 초롱초롱한 귀여운 초등학생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다가가, 교과서에서는 정치란 갈등과 다툼을 조정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이며 민주정치의 원칙은 대화와 타협이라고 배웠는데, 지금처럼 대화와 타협이 실종되어 민주정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건 다름 아닌 독재정치 아니겠냐며, 현실은 왜 전혀 다르냐고 반문해온다면 과연 어떤 답을 내놓을런지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의 독선과 오만 그리고 불통 신념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우리 사회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져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일하게 또렷이 다가오는 건, 우리 모두가 정치 실종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하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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