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역사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걱정스런 이유

새 날 2013. 9. 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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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최근 지나친 우편향과 부실 논란을 빚어온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에 대해 11일 재검토에 착수하겠다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교학사 교과서 뿐 아니라 당시 함께 검정 심의를 통과한 8종 모두를 재검토할 방침이란다.  

 

이는 일각에서 줄곧 요구해온 교학사 교과서 검정 취소에 대해 교육부가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힌 셈이다.  그런데 과연 수정 보완 등의 재검토 작업만으로 논란이 돼왔던 부분들이 모두 해소될 수 있을까?

 


한편 이돈희 전 교육부 장관, 이주영 건국대 명예교수,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등 보수 성향의 학자 23명으로 구성된 '역사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1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교학사 교과서 문제가 정쟁의 도구화가 되고 있는 사태에 우려를 갖고 있다"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했다.   

 

참고로 이인호 교수는 한국현대사학회(회장 이명희, 논란이 되고 있는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 저자)의 고문을 맡고 있는 대표적인 뉴라이트 역사학자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이들 학자들이 성명에서 주장한 내용을 한 번 살펴보자.

 

합격한 8종 중 하나인 특정교과서에 대해 진보성향의 학자들이 일제히 비판의 포문을 연 것은 지난 10여 년간 우리 역사 교과서 집필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해온 사람들과 역사관이 다르다는 것을 문제삼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과연 그럴까?  단지 역사관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문제를 삼고 있는 것일까?  이들이 주장한 것처럼 단순히 다른 역사관이란 이유만으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면 크게 잘못된 부분이 맞다.  상호간 다름을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닐 듯하다.  이미 알려진 바대로 교학사 교과서에는 친일행적과 독재정권을 미화하는 등 역사적 실체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왜곡하고, 국민의 보편적 정서를 크게 벗어나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을 최종 통과한 교과서들은 모두 교과서 집필기준에 따라 집필되고 수정 보완되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역사교과서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었을 것이다.  교과서에서 발견된 몇가지 오류는 모든 교과서들이 검정을 통과했어도 발견될 수 있는 일이다.  다른 교과서들 또한 검정을 통과했어도 잘못된 내용이 많다.  검정위원들이 수정을 요구해서 여러 번 거듭한다.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이니 아무리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라 해도 몇가지 정도의 오류 발견은 있을 수 있다.  인정한다.  하지만 포털사이트와 대안교과서 등을 아예 대놓고 표절하거나 수많은 오류가 있는 날림 제작이 대한민국 교과서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요건이란 말인가?

 

 

다른 건 차치하고 교과서에 게재한 사진 자료만 보더라도 다른 출판사와 확연하게 비교된다.  아울러 역사적 사실 관계 오류나 편파적으로 해석한 대목울 추린 것만 해도 298건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작 이 정도의 수준으로 과연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울 교과서로서의 자격을 갖췄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역사적 진실은 누구에 의해 독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대한민국은 항일독립운동을 거쳐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도움을 받아 스탈린의 세계공산화 전략에 맞서 싸우면서 힘들게 세우고 지키고 발전시킨 나라다.  반독재 투쟁과 통일의 중요성만을 특별히 강조하는 그 간의 역사 교과서들은 이 점을 소홀히 했다.

 

일부 학자들이 이승만 박사의 이름이 많이 언급됐다는 점을 지적하는데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중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의 족적, 결과적으로 나라에 영향을 미치게 된 인물의 이름이 더 많이 언급되는 것이다.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이 국민적 영웅이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며, 4.19로 인해 불미스러운 퇴진을 했지만 아무것도 없는 비참한 상황에서 남한만이라도 민주주의 국가로 지키려고 했던 인물이다.

 

역사적 진실은 독점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말에 공감한다.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작금의 교학사 교과서를 통한 역사적 진실 왜곡 시도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항일독립운동을 강조하면서 일본의 한반도 식민 지배에 대해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킨 식민지 근대화론의 논조와 같은 이율배반적인 행태, 과연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까?  오죽하면 일본 언론들마저 "한국 교과서, 일본 식민 지배를 찬양하다"와 같은 기사를 뽑아냈을까. 



이승만과 관련한 기술이 많고 역할이 지나치게 강조됐다는 주장이 나오게 된 배경엔 역으로 안창호 선생과 같은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기술은 적고 이광수 등 친일 행각을 벌인 인물에 대해선 어쩔 수 없어 친일을 선택한 것처럼 미화했던 부분과 같은 사안들이 숨어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국민적 영웅이라 그를 미화했다면, 도대체 그의 부정선거 때문에 온 국민들에 의해 벌어진 4.19혁명은 또 뭐가 된단 말인가.

 

이제 남은 건 자유시장 기능에 맡겨야 한다. 이 교과서를 채택해라, 하지 마라라고 할 게 아니라 일선 역사 교사가 내용을 검토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자회견을 자청하며 이러한 성명서를 발표하는 행위 자체가 이미 자유시장의 기능을 스스로 심하게 훼손한 행태 아닐까?  원로 학자들의 훈수 뒤엔 과연 어떤 정치적 음모나 배경이 존재하고 어떤 속내가 숨어있는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새누리당 의원 역사모임에 강사로 나선 교학사 교과서 공동집필자 이명희 공주대 교수, "10년 안에 좌파에 의해서 한국사회가 전복할 것이다"란 발언으로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날 모임을 주선한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 또한 이명희 교수를 적극 옹호하고 나섰다.  교과서 문제를 놓고 정치권과 보수단체, 학계가 총 동원된 셈이다.

 

한편 정의당 정진후 의원은 11일 제주4.3사건 유가족, 5.18민주화운동 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과 함께 조속한 시일 내에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에 대해 출판 인쇄 배포금지 가처분신청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쯤되면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논란은 단순한 교과서 싸움으로 끝날 사안이 아닌 듯하다.  교과서를 매개로 한 이념 전쟁이자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보수 진보 양 진영 간의 치열한 전투인 셈이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서 교과서 논란이 확산되자 교과서 검정 승인 취소 시 기존 교과서 검정 승인 제도의 근간이 뿌리채 흔들릴 소지를 우려, 교육부가 나름의 절충안을 제시하며 중재에 나섰다.  교과서 재검토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검정 취소 결정이 이뤄지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으리란 건 삼척동자도 안다. 

 

아울러 역사학계의 원로들께서 진정한 시장 기능에 의한 교과서의 자유 선택을 바란다면, 지금처럼 전면에 나서서 훈수를 두는 일 없이 뒤에서 그저 묵묵히 지켜봐야 하는 게 도리 아닐까?  학계 원로들의 말처럼 그들의 훈수로 인해 오히려 교학사 교과서 문제가 본격적인 정쟁의 도구화로 전락하는 듯하여 걱정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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