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전두환 추징금 자진 완납? 면죄부 줘선 안 된다

새 날 2013. 9. 11. 08:28
반응형

1995년 12월 2일 서울 연희동 자신의 자택 앞에서 핵심 측근들과 경호원에 둘러싸인 채 꼿꼿한 자세로 이른바 '골목길 성명'인 대 국민성명을 낭독하던 전두환, 당시 그의 너무도 당당하다 못해 시건방지기까지 하던 기개가 참으로 놀랍게 와닿았었다. 

 

 

그의 자세에선 골목길 성명이 단순한 성명서 낭독 수준이 아닌, 대 국민 선전포고 내지 대 국민 협박 쯤으로 느껴질 만큼 섬찟함과 오만함이 그대로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18년이 흐른 10일, 이번엔 전두환이 아닌 그의 장남 전재국 씨가 대 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게 된다.  서울중앙지검 현관 앞에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18년전 전두환의 골목길 성명서를 대리 작성해 준 이가 바로 장남인 전재국 씨였던 걸로 전해진다.

 

사과문의 형식이라 그랬던 걸까?  당당하다 못해 부러질 것만 같던 전두환과는 달리 장남 전재국 씨는 취재를 위해 그를 에워싼 기자들 앞에서 죄송하다며 연신 머리를 굽혀야 했다.  아버지의 성명서를 대신 작성하던 때의 그 당당함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  

 

ⓒ한국일보

 

전재국 씨는 사과문을 통해 "그간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미납 추징금을 완납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전두환에 대한 추징금은 지난 1997년 4월 대법원 확정 판결 이후 16년 만에 국고로 환수되는 셈이다.  

 

하지만 추징금은 아무리 늦게 납부하더라도 가산 이자가 없단다.  1997년 당시 미납 추징금이 1672억원이었으니, 이를 2012년 통계청 생활물가지수를 반영한 금액으로 단순 환산하더라도 2685억원이란 어마어마한 금액이 된다.  이것만으로도 1013억원의 화폐가치상 이익이 발생하게 되는 셈이다. 

 

전두환은 1980년 내란음모를 통해 대통령이 된 이후 기업 등으로부터 받은 뇌물을 통해 엄청난 재산을 불려왔고, 이를 갖은 방법으로 자녀들을 통해 은닉했을 것이라는 혐의를 받고 있다.  실제로 이번 미납 추징금 또한 네 명의 자녀들이 분담하여 납부하기로 했단다.  이는 단순히 추징금 완납으로 끝날 사안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차후 전씨 일가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철저히 규명하여 국민들 앞에 낱낱이 밝혀내고, 범죄행위에 의해 취득한 불법 수익을 전액 몰수해야 한다. 



전두환은 무려 16년동안이나 추징금 납부를 질질 끌어오며, 전 재산이 29만원밖에 없노라는 블랙 코메디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그간 납부하지 않고 버텨온 추징금이 1672만원도 아닌 무려 1672억원이란 어마어마한 액수다.  은닉재산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추징금이 수천억원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서민들에겐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그동안 수많은 비자금을 감춰온 채 이 돈을 불려온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전씨 일가의 자진 납부라는 형식에 대해 정상 참작이 이뤄질 것이라는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을 철저히 우롱하고 서민들에겐 어마어마한 상대적 박탈감을 안긴 그들에게 정상참작이란 말은 그야 말로 사치이자 어불성설이다. 

 

십수년간 국민들을 우롱해왔던 전두환의 거짓된 말과 행동들, 그 어떤 처벌로 단죄한다 하더라도 커다랗게 스크래치가 생긴 국민들의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는 수준을 이미 한참 벗어났기에, 이번 추징금 자진 완납이란 쇼(?)가 전씨 일가의 원죄에 대한 면죄부가 되어선 절대 안 된다.

 

추징금 명목으로 내놓겠다던 전두환의 연희동 주택, 하지만 전두환이 50년 이상을 살아온 곳이기에 이곳만은 제발 남겨달라는 전재국 씨의 읍소 또한 가당치 않다.  그동안의 행적에 대해 일벌백계하여 다시는 비슷한 사례가 발생치 않도록 해야 한다.  국민들의 상처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는 방법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