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 중단, 다시 돌아온 야만의 시대

새 날 2013. 9. 8.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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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정식 개봉한 이래 이틀 연속 박스오피스 다양성 영화 부문 1위, 전체 박스오피스 11위의 기염을 토해내던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가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났다.  

 

멀티플렉스 상영관 중 유일하게 이 영화를 상영해오던 메가박스 측에서 지난 6일, 돌연 상영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영화관 측의 갑작스러운 상영 중단은 우리 영화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전무후무한 일이란다.  때문에 상영 전부터 이미 무수한 논란을 빚어왔던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이 시작된 후에도 역시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일부 단체의 강한 항의 및 시위에 대한 예고로 인해 관람객 간 현장 충돌이 예상돼 일반 관객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배급사와 협의 하에 부득이 상영을 취소하게 됐다

 

메가박스 측의 급작스런 상영 중단 배경 설명이다.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이지만, 만일 메가박스 측의 입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매우 다양한 주체들이 모인 우리 사회에서, 그것도 21세기를 내달리고 있는 시공간 속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이나 의견을 피력한다고 하여 이렇듯 물리적인 행사를 통해 차단하는 광경, 너무 간만에 보는 모습이라 영 낯설다.  게다가 이 영화는 개봉 하루 전날 법원의 상영금지 가처분 기각 결정을 통해 사법부에서도 상영 허가를 받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할 문화상품 아니던가? 



덕분에 잊혀질 듯 기억창고에 흔적만이 어렴풋이 남은 과거의 한 사건이 떠오른다.  언제였던가?  아마도 90년대 초반이었던 듯싶다.  노동자들의 삶을 담은 '파업전야'라는 영화가 당시 상영 금지 처분되었고, 때문에 각 대학가를 전전하며 순회 상영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되는데, 이 영화가 상영 중이던 대학 교내로 최루탄이 발사되고 전경들의 무자비한 군홧발이 들이닥쳐 관람 중이던 학생들을 모두 잡아가던, 그 야만의 시대가 오버랩 되는 것이다.

 

결국 메가박스의 상영 중단 결정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치 않겠노라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만행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파업전야'와 다른 점이라곤 무지막지했던 최루탄과 경찰력과 같은 공권력 대신 보다 정교하고 교묘한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 뿐이다.  하지만 이렇듯 다양성을 인정치 않으려는 억지스러운 태도는 그럴수록 정부의 천안함 침몰에 대한 공식 발표를 믿고 있던 사람들조차 오히려 조그맣게 남아있던 의혹마저 쉽게 거두지 못하게 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데서 기인하는 듯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인정치 않으려는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일방통행식의 편향된 단방향성 독주 현상은 지성의 전당이라 일컫는 대학가에서도 횡행해오고 있는 것이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강연자로 나설 예정이었던 고려대에서의 강연회 '국정원 사건을 통해 진실과 정의를 말하다', 하지만 강연장으로 사용 예정이었던 이 학교 4.18 기념관의 대관을 며칠전 학교 측이 취소하여 논란이 되고 있었다.

 

 

강연회를 주관한 학생회 관계자에 따르면 강연자가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는 이유로 고려대 측에서 대관을 취소한 것이라 전해진다.  강연회에는 표창원 전 교수와 민변의 박주민 변호사가 강연자로 나설 예정이었다.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을 돌연 중단한 메가박스나 표창원 전 교수의 강연 취소를 결정한 고려대 모두, 모종의 외부 세력에 의한 압력에 굴복하여 내린 결정인지, 아니면 권력 눈치보기에서 비롯된 자발적 결정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타의에 의한 결정이었든 자발적인 것이었든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물론 아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다양성이란 존재는 더 이상 존중받지 못하고, 오로지 단방향의 일방통행식 사고와 행동만이 구성원들에게 강요되고 있는 모양새다.  민주주의는 상호간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를 존중하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다양성의 손상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심하게 훼손시키는 일과 진배없는 것이다. 

 

근래 이석기 의원 사태로 인해 우리 사회에는 이념 갈등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고, 종북몰이로 인해 가뜩이나 '종북'과 '빨갱이'란 단어가 다시금 고개를 들며 활개치고 있는 상황에서 메가박스와 고려대에서 벌어진, 상식을 벗어난 일련의 사건들이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뒷받침하고 있는 듯하여 우려스런 마음이 앞선다.  

 

때문에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기이한(?) 현상들에 대해, 적어도 우리보다는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을 해외 언론의 반응을 한 번쯤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싶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욕타임즈가 지난 8월 28일(현지시간) 서울발 기사를 통해 공안정국의 조성 우려와 박정희 독재정권의 국가정보기관을 이용한 정적들의 숙청 탄압 사례와 함께 박근혜 정권 연루설을 언급했다.  종북 척결이란 마녀사냥을 통해 국민 전체를 이념의 틀 안에 가두어 옴짝달싹 못하게 한 뒤 일제히 사상 검열을 벌이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 상황을 제대로 꼬집고 있는 셈이다. 

 

자신들이 의도한 방향과 조금이라도 다른 방향으로의 생각이나 사상은 절대 용납 않는다.  정치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을 제기했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적 편향 인물로 낙인을 찍고, 자신들이 밝힌 천안함 침몰에 대한 사실에 대해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제작하였다면, 혹여 그것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 받아야 할 문화상품이라 하더라도, 과감히 메스를 들이대거나 도중 판매중단을 종용하는, 우린 또 다시 야만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청산되어 박제의 형태로 박물관에나 고이 모셔져야 할 과거의 망령이, 우리가 잠시 소홀히하며 느슨해진 틈을 노려, 다시금 세상 밖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있다.  사상과 사고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없고, 다양성이라곤 손톱 만큼도 존중해주지 않는, 과거로부터 다시 돌아온 야만의 시대, 우린 이를 어떤 방식으로 맞이해야 할까?  고민이 깊어지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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