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시리아 공습 부추긴 정부 발언이 섬뜩한 이유

새 날 2013. 9. 3.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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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에서 내전 발발 2년 6개월 만에 정부군이 화학무기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최악의 참사가 빚어지면서 미국 주도의 공습이 예견되는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치달았으나, 영국 등 서방국가들의 잇단 불참 선언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시리아 군사 개입 여부를 의회에 일임하겠노라는 깜짝 카드 덕분에 시리아 사태는 잠시 숨고르기에 접어든 양상이다. 

 

 

이의 여파로 지난주 세계 금융시장은 크게 출렁거렸으며 여전히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미국에 "시리아를 공습해달라" 요청

 

그런데 우리와는 크게 관련 없을 것만 같던 시리아 사태, 의외로 정부가 강한 어조로 직접 비판하고 나섰다.  지난 1일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미국 정부의 성명을 접하고 충격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시리아에서의 화학무기 사용에 관련된 자들은 반드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며 제법 격한 톤으로의 비난에 나선 것이다.

 

앞서 있었던 국방부 장관의 발언은 더욱 강경하여 내 귀를 의심케 했다.  김관진 장관은 지난 달 28일 브루나이에서 열린 제2차 아세안 국방장관 확대회의에 참석, 미 국방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시리아 사태에 대한 결정을 미룰 경우 북한으로 하여금 생화학무기로 한국을 공격해도 된다는 오판을 할 수 있으니 미국의 공습 결단을 촉구한다"며 시리아 사태에 대해 강경 대응해줄 것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은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을 통해서도 공식 확인됐다.  지난달 31일 "한국 정부가 시리아 사태에 대해 미국 정부의 강경 대응을 촉구했다"는 취지의 기사가 해당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것이다.

 

미국 더러 시리아를 공습해달라고?  물론 대량살상무기(WMD)를 둘러싼 시리아, 북한, 이란의 삼각 구도를 깨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발언이라는 명분이 설득력을 얻고 있지만, 아무리 그렇다손 쳐도 이게 웬 뚱딴지 같은 소리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정작 시리아 공습을 미국과 함께 주도했던 영국은 의회 부결로 공습 참여가 불발됐고, 나토 또한 불참 의사를 밝혀와 공습 계획에 맥이 빠진 상황에서 미국마저 의회에 일임하며 시리아 공습 여부가 사실상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그런데 왜 우리 정부만이 강경한 자세로 공습을 촉구하며 굳이 전면에 나선 걸까?



정부는 공습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곁에서 단순히 공습을 부추기기만 했을 뿐이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상대의 입장에 따라 적어도 그 이상의 효과로 느껴졌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단순히 공습하라는 말 한 마디만을 거든 셈이지만 받아들이는 상대에 따라 전쟁 이상의 효과로 받아들여졌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의 발언이 섬뜩한 이유

 

김 장관의 발언은 시리아 주변의 이슬람권 국가들과 북한을 자극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위험한 수준이다.  우선 시리아의 지정학적 위치와 내부 사정을 고려해 볼 때 시리아에 우호적인 주변의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들을 자극한 셈이 되니 대한민국은 자칫 이들의 표적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가뜩이나 미국의 우방이란 이유만으로 이슬람권으로부터의 각종 테러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상황, 이젠 직접적인 테러 위협에 직면하게 되는 건 아닌가 하여 우려스러운 것이다.  최악의 경우 외국에 진출한 기업이나 교민들 뿐 아니라 대한민국 내의 모든 국민들까지, 극단적인 테러 집단의 표적이 되어 일상생활 속에서까지 테러의 공포를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또한 우여곡절 끝에 힘들게 복원된 남북관계의 화해 무드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김 장관이 직접 언급했듯 이번 시리아 공습을 촉구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했을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에 대해 위협을 가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개성공단 정상화와 이산가족 상봉 그리고 금강산 관광이란 굵직굵직한 남북 상호간 교류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뜬금없이 왜 북한을 언급하며 군사적 공습 카드를 꺼내들어야 했는지는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결국 국방부 장관의 이번 발언은 설화(舌禍) 내지 악수(惡手)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 정부가 전투를 치르기 위해 해외에 전투병을 파병한 전례는 베트남 전쟁이 유일하다.  그동안 꽤 많은 부대들을 해외에 내보냈지만 이들 파병부대는 재건을 위하거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비 전투병력에 한해 이뤄졌다.  물론 미국 등 우방의 적대국 공습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가 직접 나서가며 특별히 공습을 촉구하거나 부추기는 발언을 한 전례 또한 없다.  그와 같은 상황에선 단순히 비난을 표시하거나 유감을 표명하여 공습에 명분을 실어주는 수준에서 그친 경우가 다반사다. 

 

김관진 장관의 발언, 사전 계획에 의해 치밀히 계산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개인적인 의중을 드러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만약 전자라면 겉으로는 대화와 평화를 얘기하며 웃고 있는 듯해도 날카로운 이빨을 감춘, 호전적인 성향의 본질을 그대로 드러낸 듯하여 섬뜩하다.  박근혜정부의 대북 정책 지향점이 바로 이러한 것이라면 더더욱 우려스럽다.  때문에 향후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있어서도 낙관적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이다.  어쨌든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방부 장관으로서의 발언 치고는 지극히 경솔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 상황에서 지난 봄 한반도의 긴장 상태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김 장관의 도가 지나친 북한 자극 발언이 새삼 떠오르며 오버랩되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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