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삼성 이재용 아들 부정입학 논란이 갖는 의미

새 날 2013. 5. 3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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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객관적이며 공정한 경쟁이 이뤄져야 할 교육 분야에서마저도 편법이 활개를 치고 있다.  그나마 교육계는 우리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청정지역이라 여겨질 만큼 깨끗한 분야 아니었던가.  우리 사회가 아무리 썩었다손쳐도 아이들의 꿈과 끼를 키워가며 성장을 책임지고 있는 학교와 교육자들이 설마 그런 짓을?

 

하지만 이는 너무도 순진한 생각이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 어느 영역에서건 공정한 게임이란 이미 존재하고 있지 않았다.  가장 깨끗해야 할 교육 분야에서마저도 특권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어버린 거다.  아직 앳된 얼굴을 채 벗어나지도 못한 중학교 신입생들의 입학 과정부터 사회 지도층과 부자들에게 특혜를 부여하여 소위 귀족 학교라 불리는 일부 특수학교를, 이들은 경쟁도 없이 학교 측의 비호 아래 떳떳하게 뒷문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일부 학교, 무늬는 분명 특수 목적의 학교인데, 본질은 사실상 귀족 학교화하여 부유층 자제들을 편법으로 입학시키며 뒷돈 챙기는, 전형적인 학교 장사꾼 노릇을 해온 모양이다.  꽤 짭짤한 사업일 것 같다.  자신들의 학교에 사회 지도층이나 부유층 자제가 다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미지 제고와 홍보 효과를 누리고 있을 법한데, 거기에 돈까지 두둑히 얹어주신단다.  이거야 말로 꿩 먹고 알 먹고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더욱 문제가 되고 있는 건 이들이 편법을 이용한 전형이 다름 아닌 사회적 배려를 받아야 마땅한 아이들을 위해 마련한 자리란다.  특권이란 특권은 모두 누리고 있는 이들이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마저도 꿰치고 들어 앉았다는 자체가 이미 넌센스인 거다.  이래서야 과연 우리 사회에 상식이 통하노라 말할 수 있을까.  같은 출발선상에서 동시에 뛰어야 하는 100미터 달리기, 누구는 30미터 앞에서 출발하고 누구는 50미터 앞에서 출발하게 되면 결과는 너무나도 뻔하지 않겠는가.  감히 공정한 사회라고 누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이번엔 영훈 국제중학교가 불거졌지만, 비단 이 학교뿐 아니라 기타 특수 중학교와 특목고들 또한 의심스러운 건 매 한 가지다.  이들 학교의 사회적 배려자 전형 뿐 아니라 일반 전형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수사의 필요성이 엿보인다.  과학고와 외국어고, 그리고 일부 자사고 등은 사회 지도층으로 향하는 통과의례 쯤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지 이미 오래다.  때문에 이들 학교에서의 사회 특권층 부정입학 개연성 또한 충분해 보인다.  그동안 사교육을 막겠다는 취지로 일반 전형의 시험을 없애고,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했던 것 또한 자칫 객관성이 결여된 전형일 수 있기에 의심해 볼 여지가 충분하다.

 

이들의 편법 입학은 정식으로 들어올 수 있는 다른 아이들의 기회를 빼앗는 일종의 도적질이자 범법행위이다.  특권을 누리는 이들 때문에 정당한 절차를 밟아 준비해 온 아이들이 애꿎은 희생자가 되는 것이며, 이들은 사회에 진출하기도 전에 원치 않는 좌절을 맛봐야만 한다.  이 좌절은 자칫 한 사람의 인생을 크게 바꿔놓을 수도 있는 결정타가 될 수도 있기에 편법을 저지른 이들의 죄질이 매우 엄중한 것이다.

 

대한민국을 삼성공화국이라 부를 정도로 이땅에서 삼성의 힘은 막강하다.  때문에 자금력과 정보력, 정치력 등 한국 사회에서 삼성만이 누리고 있는 가능한 모든 역량을 총 동원,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이번 의혹 사건 또한 교묘히 빠져 나갈 것이다.  다만, 이번 논란은 소위 말하는 사회 지도층이나 부자들이 보여온 일련의 행태를 통해 다시금 우리 사회에서의 공정한 게임 따위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 보인 것이며, 교육마저도 돈과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노라는 슬픈 현실을 우리에게 직시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이참에 특수 목적이란 설립 취지에 걸맞지 않는 학교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폐교 조치하고, 모든 입학 비리를 근절시켜 최소한 우리 아이들의 출발선만이라도 지켜주어야 한다.  어른들의 욕심 때문에 출발선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시작부터 불공정한 게임에 노출된 아이들, 이를 모른 채 상처 입고 실의에 빠져 있을 일을 생각하니 너무 안쓰럽다.  어른으로서 이를 지켜주지 못해 부끄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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