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앞에선 4.3 추념일 지정, 뒤로는 5.18 흔적 지우기

새 날 2013. 5. 8.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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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한겨레 신문>

 

매년 돌아오는 5월이면 우리 주변엔 여전히 가슴 먹먹해지는 분들이 계실 텐데,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대구공고 홈페이지 한 켠엔 전두환에 대한 찬양 글이 버젓이 실려 만인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이러한 도를 넘어선 전두환 찬양글은 가뜩이나 5.18 공식 기념곡 제정과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 여부를 둘러싸고 관련 단체와 정부 간 이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불거진 일이라 더욱 아연실색케 하고 있는 것이다. 

 

  전두환, 한국 정치 민주화 불멸의 초석?

 

평소 관심 있는 일이 아니라 모르고 지냈지만, 전두환씨가 대구공고 출신이라 한다.  때문에 동문인 그를 대구공고 측에서 일정 부분 미화하여 표현하는 것에 대해 사실 딱히 태클 걸고 나설 생각이 별로 없다.  상식 선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위 정도는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리라. 

 

다만, 그가 5.18 광주민중항쟁을 총칼로 무자비하게 진압하며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을 비명에 스러지게 한 뒤 강압적으로 정권을 찬탈한 국가 내란 음모자였다는 점에서 그를 "한국 정치 민주화에 불멸의 초석"이라 띄운 부분, 이 대목에서는 분노의 수준을 넘어 워낙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 그저 헛웃음만 나오려 한다.



아래는 대구공고 홈페이지에 게재된 내용 중 일부이다.  학교 측에서는 해당 글에 논란이 일자 일부 내용을 삭제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동문회의 컨텐츠는 학교 의견과 관련이 없다"는 문구를 삽입하여 한 발 빼기를 시도하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칭송 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역대 대통령 중 그 누구도 실현하지 못한 단임제의 실천이라는 특별히 두드러진 업적을 남겼으며, 이것이야말로 한국 정치 민주화에 불멸의 초석으로 기록될 일인 것이다. 또한 재임기간 중 권력형 부정부패를 깨끗이 척결하는 업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강당에 모인 우리 전교생들은 대통령을 지낸 선배의 인간적인 참모습에 가슴 뭉클해하며, 결심한 것은 반드시 성취하는 불굴의 정신에 넋을 잃을 정도로 매료되고 말았다. 언제나 모교 총동문회의 구심점에 서 있는 전 동문은 우리나라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기원하는 우국충정을 한시도 잊지 않고 노심초사하고 있다. 개교 80년 역사에 대통령이 탄생된 것은 우리 동문 모두의 자랑이요 자부심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전두환 미화? 어이 없다

 

해당 학교 측에선 그에 대해 자랑스러움이 뚝뚝 묻어날 정도로 찬양 일색이지만, 실상은 그의 전 재산, 고작 29만원에 불과한 매우 빈궁한 할아버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찬양글에서 언급된 것처럼 대통령 재임 중 엄청난(?) 업적을 남긴 것은 고사하고 그는 천문학적인 불법 비자금을 조성, 1600억원이 넘는 거액의 추징금을 선고 받게 된다.  하지만 가진 돈 29만원밖에 없다며 그는 추징금 납부를 끝끝내 거부해 오고 있다.  이런 분이시다.

 

전두환의 자랑스런 업적이라며 "한국 정치에 있어 불멸의 초석"이란 낯 뜨거운 극찬까지 마다하지 않던 대통령 단임제, 실은 1987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그가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며 장기집권을 획책하였으나 때마침 서울대생 박종철씨의 고문치사 사건이 수면 밖으로 드러나게 되며 오히려 역풍을 맞아 그의 독재정치 생명 연장의 꿈은 그만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해 6월 시민들의 거센 민주화 열망에 의해 전국 거리는 또 다시 시민혁명이란 도도한 물결로 일렁이게 되고, 전두환은 결국 이 6.10 민주화항쟁에 굴복, 어쩔 수 없이 대통령 직선제와 단임제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시민들의 피와 땀으로 이뤄낸 값진 성과물이었던 셈이다.  결국 대구공고에 실린 글의 내용은 새빨간 거짓말이자 엄연한 역사 왜곡인 것이다.

 

  제주 4.3 항쟁 국가 추념일 지정 움직임에 부쳐

 

학교에, 그것도 공립학교에서 이렇듯 편향된 글이 버젓이 실릴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미 5.18 정신 흔적 지우기와 같은 민주화 운동 폄훼 작업은 이전 정권으로부터 전방위로 시도되어 왔다.  최근엔 국가보훈처와 서울지방보훈청이 직접 나서 5.18 흔적 지우기 행태를 벌여 나가고 있다.  일련의 사건들이 궤를 같이하며 결코 우연이 아님을 증명해 주는 것 같아 우려스러운 것이다. 

 

한편 제주 4.3 항쟁 국가 추념일 지정을 내용으로 담고 있는 특별법 개정안이 안행위를 통과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에 앞서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이 지난 1일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국민 대통합을 위한 화해와 상생차원에서 제주 4.3 항쟁 국가 추념일 지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4.3 항쟁 희생자나 유가족들에게는 매우 진일보한,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 없지만, 뒤로는 5.18 등 기존에 제정된 민주화 관련법 따위 철저히 무시한 채 오히려 민주화 정신 흔적 지우기와 역사 왜곡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겉으로는 대통합을 외치고 상생할 것처럼 행동하는 이중적인 정부의 태도, 전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정부가 진정 진정성 있는 상생과 대통합을 바라고 있다면 민주화 정신 폄훼와 역사 왜곡과 같은 일 따위 당장 집어치우고 5월 영령께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  아무리 지우고픈 흔적이라 하더라도 지울 수 없는 게 바로 역사이자 진실이다.  박근혜정부, 일본의 역사 왜곡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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