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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진이 꾸린 록 밴드, 그들이 음악을 하는 방법.. 영화 '음악'

새 날 2022. 11. 27.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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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일진으로 분류되어 주먹깨나 쓰는 것으로 알려진 고등학생 켄지(신타로 사카모토). 그와 관련한 명성은 켄지가 재학 중인 학교뿐 아니라 주변에까지 두루 알려져 있었다. 덕분에 그의 이름만으로도 또래들은 벌벌 떨었으며, 그와 직접 맞닥뜨리기라도 하는 날엔 모두들 줄행랑을 놓기 일쑤였다. 정작 켄지 자신은 이러한 현상에 무덤덤했지만 말이다. 켄지는 방과 후 학교에 남아 절친인 아사쿠라(타케나카 나오토), 오타(마에노 토모야)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던 어느 날, 켄지의 손에 베이스기타 한 대가 쥐어지게 된다. 일면식도 없던 한 청년이 거리에서 소매치기를 뒤쫓다가 기타를 켄지에게 맡기면서 벌어진 일이다. 무심코 베이스기타를 손에 쥔 켄지의 머릿속으로 빠르게 헤집고 들어온 생각 하나. 밴드를 결성하고팠다. 그것도 록 밴드를. 일단 결심을 굳히면 곧바로 행동으로 옮겨야 직성이 풀리고 마는 켄지. 단짝 친구인 아사쿠라, 오타와 함께 밴드를 결성하기로 한다. 밴드 '고무술'은 이렇게 탄생했다.

 

 

영화 <음악>은 음악과는 담 쌓은 고교 3인방의 좌충우돌 밴드 결성기를 그린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일본의 인디 만화가 오오하시 히로유키의 작품 <음악과 만화>, <음악 완전판>이 원작이다. 우연히 베이스기타를 손에 쥔 주인공의 즉석 제안으로 절친 3인이 결성한 밴드의 연주는 비록 단순하기 짝이 없는 불협화음이었지만 열정만큼은 대단했다. 여기에 마카로니 권법의 일인자로 알려진 주인공의 숨겨진 필살기가 더해지고, 어쿠스틱 기타 밴드 리더의 협업까지 펼쳐지면서 원시적인 불협화음은 마침내 조화를 이루며 진정한 음악으로 거듭난다.

 

 

밴드 고무술의 결성은 애초 무리수였다. 밴드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했다. 켄지를 포함한 두 사람이 동시에 베이스기타 연주를 맡고, 나머지 한 사람이 드럼 연주를 선택한 것부터 상식을 벗어났다. 때문에 이들의 연주가 조화를 이루기 어려울 것이란 건 누구든 짐작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록 밴드의 연주라기보다는 타악기를 단순한 패턴으로 두드리는 행위에 가까웠다. 하지만 고무술 3인방은 남들이 뭐라 하든 개의치 않았다. 적어도 자신들의 음악 앞에선 진심이었다. 불협화음마저도 괜찮다며 서로를 다독이고 응원했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밴드 '고미술'을 만나게 된 건 3인방에겐 행운이었다. 고미술의 리더 모리타(히라이와 카미)는 원시 형태의 고무술 음악에 매료되어 이들에게 록 페스티벌의 참가를 권유하기에 이른다. 고심 끝에 대회 참가를 결정한 고무술. 대회를 앞두고 맹연습에 돌입한다. 그러나 밴드를 결성하자마자 록 페스티벌 참가라는 굵직한 성과를 이뤄낸 기쁨도 잠시, 밴드의 창시자이자 리더격인 켄지가 밴드 운영이 시큰둥하다며 돌연 밴드에서 이탈하고 만다. 이를 어쩌나. 고무술은 과연 대회에 무난히 참가할 수 있을까.

 

 

영화 <음악>은 일일이 수작업으로 작화됐으며, 그의 대부분을 감독이 도맡은 덕분에 무려 7년이라는 긴 제작 기간이 소요된 것으로 전해진다. 작화에 천부적 재능이 없었던 감독은 이를 극복하고자 애니메이션 이미지와 실사 동화상 이미지를 합성시키는 이른바 '로토스코핑' 기법을 적극 활용했다. 영화가 본격 절정으로 치닫던 록 페스티벌 신이 그의 대표적인 장면이다.

 

고미술 밴드의 감미로운 어쿠스틱 연주를 감상한 켄지 일행은 자신들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월등한 실력에 주눅이 들 법도 하건만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의연했다. 연주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그들만의 합주를 뚝심있게 계속해서 밀고 나갔다. 

 

음악이란 '박자, 가락, 음성 따위를 갖가지 형식으로 조화하고 결합하여, 목소리나 악기를 통하여 사상 또는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로 정의된다. 켄지의 밴드 이탈이라는 큰 위기 속에서도 고무술을 끝까지 지켰던 두 사람은 언젠간 그가 돌아올 것이라 철석 같이 믿으며 록 페스티벌을 차근차근 준비한다. 하지만 베이스기타와 드럼의 단순 조합만으로는 원시적인 소리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고무술 리더 켄지와 고미술 리더 모리타의 연주가 합쳐지고 조화를 이루면서 비로소 감상하는 이들의 감정을 깊숙이 파고드는 진정한 음악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신과 신 사이 유난히 자주 삽입된 정적은, 그래서 다소 지루하게 다가오던 영상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으로 읽힌다. 이는 부조화와 불협화음이라는 초기 음악에서 점차 조화를 이루며 보다 완성도 높은 단계의 음악으로 진화해 나가는 과정을 도드라지게 하는 요소다. 흡사 우리가 단 몇 분 동안 펼쳐지는 화려한 불꽃놀이 감상을 위해 사전의 길고 지루하며 수고로운 기다림의 과정을 기꺼이 수긍하는 것처럼 말이다. 

 

음악, 그것도 록 밴드를 과감히 애니메이션 장르로 끌어들인 감독은 1969년 발매된 비틀즈 앨범 <Abbey Road>의 커버 사진을 오마주하면서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록 밴드이자 신화적 존재에게 존경심을 드러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영화 <음악>은 비록 짧지만 관객의 감정을 헤집어놓을 만큼 화려하면서도 강렬한 불꽃놀이 쇼를 통해 음악의 본령에 한층 가까이 다가서는 작품이다. 

 

 

감독  켄지 이사이사와

 

* 이미지 출처 : (주)미디어캐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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