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언론의 자극적인 콘텐츠 경쟁이 우려스럽다

새 날 2019. 6. 18. 20:03
반응형

잔혹한 살해 수법으로 온 국민을 공분케 한 고유정. 그녀는 지난달 25일 제주시 조천읍 한 펜션에서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됐다. 고씨에게 현재 적용된 혐의는 살인, 사체 손괴, 사체 유기, 사체 은닉이다. 경찰은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 일찌감치 고유정의 신상을 공개키로 결정했다.

각종 매체는 마치 경쟁을 벌이듯 고씨 사건과 관련한 콘텐츠들을 생산해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고씨의 잔혹한 범행 수법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거나 아직 수사 중인 사안임에도 피해자 측의 일방적인 주장이 여과 없이, 그리고 반복적으로 보도되고 있다. 덕분에 온오프라인 공간은 국민의 알 권리 차원을 넘어 온통 자극적인 콘텐츠들로 넘쳐나는 형국이다.

고씨 사건은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사안이다. 하지만 이렇듯 자극적인 콘텐츠를 언론사마다 경쟁적으로 내보내는 탓에 이에 쉽게 노출된 국민들은 피로감을 호소해야 하는 판국이다. 가장 비근한 사례로는 며칠 전 숨진 전 남편의 것으로 추정되는 뼛조각을 찾았다며 언론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일을 꼽을 수 있다.



당시 뼛조각을 수거하는 영상까지 언론에 공개될 정도로 이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컸다. 하지만 해당 뼛조각의 분석 결과 사람 뼈가 아닌 동물 뼈로 밝혀지면서 이번 건은 결국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경찰의 부실 수사 논란과 관련하여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조바심에 의한 결과물이었든 아니면 언론의 보도 경쟁에서 비롯된 것이었든 관계없이 신중치 못한 태도였던 것만은 틀림없다. 이는 사람의 뼛조각 일부가 분리된 채 실제로 발견될 만큼 고씨의 범죄 행각이 잔혹하기 이를 데 없다는 사실을 여과 없이, 그리고 실시간으로 전 국민에게 알린 꼴과 진배없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뼛조각이라는 단어만으로도 경악을 금치 못할 테니 말이다.


고유정 사건 관련 콘텐츠들이 쏟아지고 있다


19일 경찰은 경기도 김포시 쓰레기소각장에서 사람 뼈로 추정되는 40여 점을 발견하여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했다고 밝혔다.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앞서도 경험했듯 국과수의 감정 결과가 나온 뒤 발표해도 늦지 않을 것을 경찰은 자신들의 성과라며 이를 또 다시 언론에 흘리는 무리수를 둔 것이다. 부실 수사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작금의 현실이 앞서 얻은 소중한 경험마저도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닐는지.

오프라인 온라인 가릴 것 없이 모든 매체의 뉴스 프로그램들은 지금 이 시각에도 고유정의 잔혹한 행각을 그녀의 얼굴과 함께 상세히 묘사하고 있는 와중이다. 살해 수법뿐 아니라 피해자 측의 주장에 기대어 인면수심에 가까운 그녀의 과거 행적까지 낱낱이 파헤쳐지고 있다. 그 내용이 사실이든 아니든 이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듯 보인다. 그러다 보니 국민들은 자극적인 콘텐츠에 자꾸만 노출될 수밖에 없다.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철저히 감시하고, 국민들에게는 객관적인 사실만을 오롯이 전달하려는 노력이 언론의 올바른 책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고씨의 잔혹한 측면을 부각시킬 수만 있다면 객관적인 사실 여부를 떠나 어떻게든 자극 일색의 콘텐츠를 앞세우기에 여념이 없다.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아랑곳하지 않고 경쟁적으로 이에 매달리는 형국이다. 사회적 공기로서의 책무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언론의 자극적인 콘텐츠 경쟁이 우려스럽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