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여성들의 일상이 불안하다

새 날 2019. 2. 1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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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대학교 강지현 교수의 ‘1인 가구의 범죄 피해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33세 이하 청년여성 1인 가구의 경우 신체나 재산상의 피해를 당할 확률은 남성 가구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았다. 또한 가택 침입 등 주거 피해를 입을 확률은 11배나 높게 나타났다. 우리 주변에서 여성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든 범죄의 표적에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려워 집에서조차 불안과 공포에 떠는 여성들, 지난 12일 방송된 MBC PD수첩 ‘문고리를 흔드는 손’ 편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이 얼마나 불안하고 힘든 일인가를 집중 조명하고 이에 대한 대책은 없는지 이에 대해 살펴봤다.

성범죄 사건을 바라보는 삐딱한 시선

지난해 12월 16일 새벽, 부산대학교 여학생 기숙사에 같은 학교 남학생이 침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 공간 내에서 벌어진 일인 데다, 우발적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당시 큰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었다. 여학생들이 느끼는 공포와 불안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대하는 학교나 학생들의 반응은 조금 의외였다.



부산대 관계자의 말을 한 번 들어보자. “제가 다른 데 가서 이런 얘기하면 솔직히 말이 안 돼서 그렇지 이 정도의 일이 이렇게 전국적인 방송을 탈 만한 내용인지 모르겠다. 하여튼 부산대 학생들은 예민하다.”

일부 학생들의 인식 또한 심각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문제를 찾아 개선하자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쉽게 묵살되기 일쑤였다. 가령 관련 대자보를 붙일 경우 툭하면 사라졌다. 부산대 재학생 이미리(가명)씨는 이렇게 말한다. “사실 저희는 불안과 심지어 공포, 그리고 위협감을 느끼고 있어서 이런 대자보를 쓰는 건데 자신들이 불쾌하다고 여기는 게 어이가 없다.”



학내 인터넷 게시판에는 여학생들을 비난하는 원색적인 글들이 넘쳐난다. 여학생들이 시끄럽게 사건을 키운다거나 예민하게 반응한다며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명백한 범죄 행위인데 이를 가볍게 여기거나 단순한 남녀갈등 문제로 돌리는 경우도 있었다. 언론조차 이 사건을 다루며 ‘입맞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심각한 범죄 행위를 가볍게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오직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피해자가 되는 세상

그렇다면 학교 안 기숙사조차 이렇듯 안전하지 않은데 여성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학교 밖 자치공간은 안전할까? 1인 가구 여성 박지수(가명)씨는 “집이 안전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어요. 사소한 것들로 인해 굉장히 무서워요.”라며 고통을 호소한다. 최유리(가명)씨 역시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위협을 느끼는 순간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돼요. 만약 저 사람이 내 비밀번호를 알아서 문을 부수고 들어온다면 나는 뭘 하지? 화장실에 숨어 문을 잠그고 전화를 하면 경찰이 올까?”

이러한 고민은 예민한 여성들의 걱정거리만으로 치부할 사안이 결코 아니다. 또 다른 1인 가구 여성 강수정(가명)씨가 호소하는 불안은 매우 현실적이었다. “집에서조차, 내방에서조차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게, 그러면 집에서 쉬면서조차 창문을 계속 바라보면서 누가 들어오지 않을까, 누가 저걸 열지 않을까 그런 것을 걱정해야 하는 거잖아요.”



여성 대상 범죄는 우리 주변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사안이다. 게다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매일 다니던 길에서 목숨을 잃는 끔찍한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이라면 안전한 곳이라며 선택한 집조차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얼마 전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산책길에서 살해된 여성, 마찬가지로 출근길 자신의 아파트에서 살해된 또 다른 여성과 관련한 사건은 여성들이 살아가기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곳인가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왜 하필이면 이런 비극이 이 여성들에게 일어난 것일까? 대낮에 아파트 산책길에서 그리고 아침 출근길에 목숨을 잃을 것이라고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들 피해자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다음의 한 가지다. 여성들만 살고 있거나 여성 혼자 사는 가구라는 점 말이다. 오직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밖에 없다.



성범죄를 저질러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사회

한편, 방송은 성범죄자들이 처벌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노하우를 서로 알려주면서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비법을 공공연하게 공유한다는 사실을 파헤쳤다. 이를 적극적으로 돕는 조력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성범죄 전문지식 공유 카페(이하 ’성전카페‘)’의 회원 수는 7천 명가량이며, 자신의 성범죄 경험담을 올려야만 게시글을 읽고 쓸 자격을 얻을 수 있다. 회원들의 최대 관심사는 형량을 줄이고 무죄를 받는 방법이었다. 물론 법률가도 추천해주고 있었다.



카페가 추천한 법무법인A는 변호사가 검찰 출신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저희 대표 변호사가 검찰 지청장 출신이다. 이분 아드님이 현재 ㅇㅇ지검 형사부 검사다. 성범죄 전문 특화 로펌이다. 성공사례도 무척 많다.” 해당 법무법인 홈페이지에는 성폭력 범죄 전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혐의 없음을 받은 성공사례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또 다른 법무법인B는 변호사별로 자신이 담당하는 성폭력 사건 성공 사례를 광고하고 있었다. 관계자는 “한 달에 100건, 몰카 사건을 1000번도 넘게 해봤다. 변호사가 구속만은 면하게 해달라고 판사를 설득한다. 양형 자료는 굉장히 많은 것들이 있다. 가족들의 탄원서, 기부와 봉사활동 기록 같은 것들이다.”고 말한다.

감형을 받고 무죄를 선고받는 방법은 법률가마다 각기 달랐으며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성전카페 운영자와 친분이 있는 법무사들은 조금은 특이한 방법을 권고하고 있는데, 다음의 세 가지 전략이다. 그 첫 번째는 피해자와 무조건적인 합의를 보게 하는 방식이었다.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과 접촉을 시도하는 것으로써 이는 법원에서 엄격히 금지된 사안이다.

두 번째로는 여성단체에 대한 기부 전략이다. 성전카페 내에서는 어떤 단체에 어떤 식으로 기부금을 내야 하는지 정보가 오고간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수 년 전부터 이 사실에 주목해왔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부소장의 말을 들어보자. “한 달에 5건 이상은 있는 것 같다. 1년 가까이 지나서 본인이 냈던 후원금을 돌려달라는 연락이 온다. 이유를 물을 경우 후원금을 내면 형량을 감경 받는다고 들었는데, 감경을 못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2015년 재판에서 성폭력상담소에 기부한 것이 참작되어 감형을 받은 사례가 존재했다. 2017년 7월까지 전수 조사한 결과 성범죄자들이 기부한 경우가 모두 101건에 달했다. 김 부소장은 “성폭력 범죄의 처벌을 안 받도록 빠져나가는 구멍이 이미 존재한다. ‘나만 당하지 않겠다’ ‘모두가 빠져나올 수 있다’ ‘성폭력? 누가 지금 처벌 받는가’ ‘다 무죄가 될 수 있다’ 라는 잘못된 인식과 그릇된 사례가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이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로는 정신감정서를 쉽게 얻는 방법이다. 법무법인A 관계자에 따르면 “병원 원장들은 그런 거 잘 안 써준다. 나중에 문제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심리상담소는 잘 써주기에 우리가 추천해드린다.”고 말한다. 소견서를 잘 써준다는 소문난 이 심리상담소는 가해자와 만나지도 않고 메신저로 상담을 진행하며, 심리검사를 이메일로 주고받는 방식이었다. 이에 대해 덕성여대 심리학과 최승원 교수는 다음과 같이 우려하고 있었다. “이건 심리상담이라고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재판을 앞두고 해주는 일종의 컨설팅이다.” 그러면서 “법원에서 이러한 소견서를 받는다는 건 심각한 문제가 있다. 법원에서는 만약에 소견서가 필요하다면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에게 감정을 요청해야 하는 게 맞다. 이걸 피의자 본인이 구할 수 있는 곳에서 가져온다는 건 애초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를 만들어 오겠다는 뜻이다.”고 말한다.



여성들의 일상 속 불안 공포 잠재워야

이렇듯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려는 시도가 이뤄지는 등 성범죄를 저질러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사회가 바로 우리가 사는 곳이다. 사실은 이들을 처벌할 법조차 미흡하기 짝이 없다. 여성이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스토킹은 그 죄로 재판에 기소된 경우가 2016년과 2017년 2년 사이 단 한 건도 없었다. 관련법은 국회에서 여전히 잠자고 있다.


정춘숙 국회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굉장히 심각한 폭력, 사람이 아주 심하게 다쳤거나 죽었거나 성폭력을 당했거나 이것만 폭력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도 폭력의 범주로 넣는 것이 세계적인 수준이다.” 그리고 “범칙금처럼 형벌로 느낄 수 없는 정도의 수준 가지고는 이 행위를 제재할 수 없다. 가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올바른 지원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관련법들이 적극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와 불안에는 이유가 있었다. 아울러 여성들의 공포는 결코 과장된 게 아니었다.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언제까지 문 뒤에서 숨죽이며 떨어야 하는 것일까? 자기 집에서 창문조차 제대로 열지 못하는 고통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누군가 미행을 하고 문고리를 흔들어대는 데도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의 고통과 불안은 흔히 무시당해왔다. 처벌할 조항이 없다는 건 더욱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그 결과 이제는 평범한 일상 가운데 하나인 산책길이나 출근길에서조차 여성들이 목숨을 잃게 됐다. 여성들이 자신의 집을 안전한 곳으로 여길 수 있는 세상, 마음 놓고 창문을 열 수 있는 세상, 범죄의 표적에 쉽게 노출되지 않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 이미지 출처 : POOQ(푹)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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