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가부장제에 대항하는 여전사 'B급 며느리'

새 날 2019. 2. 5.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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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배우자의 부모님 댁을 시댁이라고 부르지만 결혼한 남성은 배우자의 부모님 댁을 처가라고 부른다. 남편의 동생은 도련님이나 아가씨로 불리지만 아내의 동생은 처남 혹은 처제로 불린다.  

 

이러한 비대칭적인 가족 호칭 문제가 최근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도 공론화를 시도하면서 구체적인 개선에 나섰다. 여성가족부는 지난달 28일부터 이번 달 22일까지 ‘가족호칭에 대한 국민생각 조사’를 진행 중에 있다. 이를 토대로 공청회 등 의견수렴을 거쳐 올해 상반기 안에 가족 호칭 개선 권고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그런데 이러한 여론이 형성되기 이전부터 남편의 동생을 도련님이라고 호칭하지 않고 그냥 이름으로 부르는 용감한 며느리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리얼 다큐멘터리를 표방한 영화 <B급 며느리>의 주인공 김진영 씨다. 그녀는 시동생을 도련님이 아닌 ‘호준’이라는 이름으로 호칭하면서 “가부장제에 과감히 대항하는 여전사가 되어 기필코 자신의 위인전을 만들고 말 것”이라고 호기롭게 주장한다.

 

 

가부장제에 대항하는 당돌한 며느리

 

반면 시어머니(조경숙)는 며느리의 당돌한 행동을 바라보면서 “얘는 B급도 아닌 F급”이라며 평가절하하고 그저 길게 한숨만 내쉴 뿐이다.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의 넘사벽 간극은 절대로 좁혀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진영 씨는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아 너무 기분이 좋다”며 빙그레 웃는다. 이 영화가 어떤 내용으로 흘러가게 될지 짐작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영화 <B급 며느리>는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의 갈등, 즉 고부갈등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작품은 어쩌면 대부분의 가정이 안고 있을지도 모를 고부간의 갈등을 남편이자 아들인 남성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고부갈등은 예민하면서 불편한 주제임과 동시에 통상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되는 까닭에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기란 사실 쉽지 않은 노릇이다. 드라마나 영화 등의 장르에서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연유 탓이다. 영화 <B급 며느리>는 이러한 공식을 모두 뒤집고 있다.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일상에서 고부갈등을 겪고 있으며 인정하고 있지만 웬만해서는 밖으로 드러내놓기를 꺼려하는 상황에서 이를 현실 그대로 낱낱이 까발렸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 영화는 평단과 관객의 찬사를 이끌어낼 법하다. 어찌 보면 치부일지도 모르는 감독 가족의 고부갈등을 날 것 그대로 카메라에 담은 것이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올해의 성평등문화상’ 중 ‘성평등문화콘텐츠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고부갈등을 전면에 내세움과 동시에 진영 씨가 쉽게 시댁에 순응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며 싸워나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비추면서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진영 씨는 보통의 며느리와는 달리 시어머니 앞에서 결코 주눅 들지 않았고 똑 부러지게 할 말을 다 하는 당돌한 며느리로 그려져 있다. 지나치게 올바른 말만 하니까 되레 얄밉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B급 며느리가 A급으로 인정받게 될 그날을 위해

 

결혼은 계약관계다. 겉으로 볼 땐 당사자 사이의 계약 같지만, 그 속내를 들춰보면 훨씬 더 복잡해진다. 개인과 개인의 결합이 아닌 한 집안과 또 다른 한 집안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줄줄이 딸려오는 의무 및 책임이라는 부담감은 한 보따리에 달한다. 양가 어른들을 챙겨야 하는 건 기본이고, 대소사에 일일이 관여를 해야 한다.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평소 꿈꿔온 행복한 결혼 생활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의무감에 짓눌린 고달픈 현실만 남게 된다. 게다가 전통적인 가부장제 하에서의 관습이란 여성들의 삶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기에 차고도 넘친다. 고부갈등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근래 비혼주의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48.1%로 지난해 처음으로 50% 아래로 떨어졌다. 국민 절반 이상은 결혼이 더 이상 필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경제적인 어려움 등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지만, 앞서의 현실 인식이 기본으로 깔려 있다. 때문에 비대칭적인 가족 호칭 문제 등 가부장제의 전통을 허물기 위한 사회적 합의와 그에 따르는 노력은 저출산 문제 등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게 될 긴요한 문제들을 해소하는 데 있어 일정 부분의 역할을 기대케 한다.

 

 

진영 씨는 자신이 결혼하기 전에는 “굉장히 행복했던 사람이었다” 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결혼한 뒤로는 “나날이 불행해지고 있다”며 남편 호빈 씨를 붙든 채 호소한다. 비단 진영 씨만의 문제일까. 진영 씨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사법고시 1차에 합격한 재원이며, 시어머니는 구연동화 자원봉사를 다닐 정도로 인자한, 우리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할머니상이다. 각자 살아갈 땐 아무런 문제가 없을 법한 사람들이건만, 가족이라는 굴레 안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관계로 얽힘과 동시에 그들의 삶은 180도 달라진 것이다.

 

시댁에 아기를 보낼 때마다 옷을 바꿔 입히는 시어머니가 못마땅했던 까닭에 다시는 보내지 않겠다며 아기를 볼모로 선전포고를 하는 진영 씨의 발칙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누군가는 카타르시스를, 또 다른 누군가는 불편함을 느끼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고부갈등이 비단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며, 가족만의 문제도 아닌, 사회적 문제로 인식을 전환시키는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데 의의가 있을 것이다. 아울러 우리 사회 안의 성차별적인 요소를 해소하려는 작금의 노력에도 작게나마 보탬이 되고 있다는 점 또한 긍정적인 대목이다. B급 며느리가 A급으로 인정받게 될 그날을 위해..

 

 

감독  선호빈

 

* 이미지 출처 : 에스와이코마드 , 글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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