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정체성 되찾은 소녀의 성장담 '루나'

새 날 2019. 2. 4.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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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레티샤 클레망)는 루벤(줄리앙 보데)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일행과 함께 생일 파티에 참석하게 된다. 장소는 그들만의 아지트였다. 곧 있으면 광란의 현장으로 변모하게 될 해당 공간에서는 때마침 알렉스(로드 파라도)라는 청년이 혼자 그래피티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술과 흥에 잔뜩 취한 루나와 루벤 일행은 알렉스에게 시비를 건 끝에 그에게 일방적인 폭행을 가한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루나가 일하고 있는 농장에 알렉스가 새로이 합류하게 된다. 끔찍한 일이 벌어졌던 그날 자신을 괴롭힌 사람 가운데 하나가 루나였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알렉스, 두 사람은 점차 가까워진다. 하지만 그럴수록 루나는 알렉스에 대한 죄책감이 동시에 커져만 갔다. 어찌할 바를 몰라해하는 루나, 두 사람의 관계는 과연 어떻게 될까?

영화 <루나>는 과거 집단 폭행을 시도한 일행 가운데 한 사람으로 가담했던 여성이 당시 폭행을 당했던 남성과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겪는 정신적인 혼란과 복잡한 감정을 좇는 로맨스 장르의 작품이다.



피해자와 사랑에 빠진 폭행 가해자

루벤은 이른바 ‘나쁜 남자’다. 루나와 사귀고 있으면서도 또 다른 여성과 교제하는 등 전형적인 바람둥이에 양아치 기질까지 골고루 갖춘 부류의 남성이다. 루나는 루벤에게 늘 끌려 다니는 입장이었다. 루벤이 몹쓸 짓을 행한 뒤 루나에게 사과하는 시늉만으로도 그녀의 분노는 잦아들었으며, 다시금 그의 품에 안기는 일이 다반사였다. 나쁜 남자에게 끌린다는 여성의 심리를 교묘히 파고들어 역이용하는 루벤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나쁜 남자’였다.



루벤 일행이 알렉스에게 가한 폭행은 장난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수위를 넘어선 것이었다. 폭행을 당한 알렉스의 입장에서는 극심한 모멸감과 수치심에 치를 떨어야 할 판국이었다. 루나의 가담 정도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 비록 술기운을 빌린 데다 당시 분위기에 취해 자신의 의지와 별개로 벌인 행위였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기에 알렉스와의 관계가 그녀는 더없이 거북할 수밖에 없었다.

루나가 루벤과 갈라서는 분기점이자 알렉스를 향하게 되는 변곡점은 의외로 그녀가 루벤에게 생일 선물로 준 강아지로부터 비롯된다. 사이코패스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반려동물에 대한 학대이며, 그와는 반대로 반려동물을 좋아하는 사람 가운데 악인이 드물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 알렉스를 괴롭혔던 루벤의 못된 성향은 이번에는 강아지에게로 향했다. 그동안 나쁜 남자 루벤에게 질질 끌려 다녔던 루나가 드디어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되는 순간이다. 이후 루나와 알렉스는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루벤이 루나에게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때와 알렉스가 그 자리를 대신할 때의 삶은 전혀 다른 방향성을 띠게 된다.



겉으로 볼 땐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하고 여느 때처럼 일상을 살아가는 알렉스였으나, 사실 그에게는 루벤 일행에게 당한 폭행이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어 곪아터지다 못해 일종의 트라우마로 자리 잡고 있었다. 특정 상황과 맞닥뜨릴 때마다 당시의 기억이 문득문득 되살아나 그를 괴롭혀오던 터다. 그럴 때마다 루나 역시 알렉스를 향한 자신의 과거 행위에 대해 더욱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혼란스러운 감정 딛고 조금씩 성장해가는 소녀

남모를 비밀을 간직한 루나의 방황은 한동안 지속된다. 그녀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좇아야 하는 관객의 감정도 어지러워지기는 매한가지다. 그렇다고 하여 섣불리 그녀를 응원하기도 쉽지 않다. 알렉스는 루벤과 달리 ‘좋은 남자’임이 분명했으며, 이제 서로를 본격적으로 알아가는 단계에 접어들었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그와 얽힌 과거의 일로 인해 그녀를 갈등 상황으로 더욱 옭아매던 참이었다. 루벤의 일행이 그녀와 알랙스의 사이를 알아채는 등 악화되는 주변 여건도 그런 그녀를 더욱 고민에 빠뜨리게 했다. 그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주인공 루나 역을 맡은 레티샤 클레망은 너무도 완벽하게 루나가 된 덕분에 관객의 몰입감을 한껏 끌어 올리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런 그녀가 연기 경력이 전무하며, 연기 공부조차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관객을 놀라게 하는 지점이다. 차세대 배우들의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가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온 영화였으며, 여성 감독답게 섬세한 연출이 돋보였던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루나라는 소녀가 그녀에게 씌워진 과거의 굴레로부터 스스로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고 조금 더 성장해간다는 성장담을 그리고 있다. 아울러 장난처럼 자행되는 집단 폭행으로 인해 한 사람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하고 자칫 삶 자체를 완전히 파괴할 수도 있으며, 트라우마로 자리 잡아 끈질기게 괴롭히게 되는 현실에 대해 관객으로 하여금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파릇파릇한 루나의 삶을 응원한다.



감독  엘자 디링거


* 이미지 출처 : M&M 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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