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치란 말야

아이폰 안드로이드폰으로 갈아타라? 이건 아니잖아.

새 날 2019. 1. 22.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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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폰의 전면 상단에는 ‘Microsoft’의 로고가 선명하게 박혀있다. 물론 뒷면에도 같은 로고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다. 그렇다. 나는 전 세계 스마트폰 사용자 가운데 1%도 채 되지 않는 윈도폰 사용자다. (참고로 기술 시장 점유율 분석업체 넷마켓쉐어에 따르면 윈도10 모바일 OS 점유율은 2018년 12월 현재 0.08%다.) 요즘말로 표현하자면 비주류 중에서도 ‘핵아싸’에 해당한다.

이 녀석과의 인연은 꽤나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니까 현재의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이전, 20세기 말 무렵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PDA로 대변되는 개인 휴대용 단말기가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스마트폰의 태동은 바로 이 PDA가 휴대폰과 결합한 형태인 PDA폰의 탄생으로부터 비롯됐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자신들이 개발한 윈도모바일OS를 이들 PDA폰에 탑재시켜 시장에 내놓았다. 반응은 좋았다. 덕분에 PC 친화적인 PDA폰들이 대거 시장에 선보이던 시기이기도 했다. 아직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의 출시 이전이었으니, 사실상 지금 대세로 자리 잡은 스마트폰이라는 단말기의 개념은 당시 MS를 비롯한 PDA OS 및 단말기 제조사들이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MS의 윈도모바일은 전 세계 PC에 설치된 윈도와 찰떡궁합을 이루는 OS였으니, MS는 사실상 모바일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손아귀에 움켜쥔 셈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


그러나 MS는 이 좋은 기회를 보기 좋게 모두 날려버리고 만다. 가장 먼저 시장 진입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후발 주자인 애플과 구글 진영에 비해 불안정한 OS로 인해 절호의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소형 기기 임베디드 시스템용으로 설계된 불완전한 윈도CE 플랫폼을 윈도폰 초기 버전에 이식했던 탓이다. 물론 앱 생태계가 턱없이 부족했던 건 그보다 더 큰 실패의 원인으로 작용했지만 말이다.

그 사이 아이폰이 탄생하고 안드로이드OS가 탑재된 기기가 시장에 등장하면서 그 이전까지만 해도 꽤나 혁신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윈도모바일 PDA폰은 단번에 낡은 기기로 전락해버렸다. MS도 부랴부랴 시장 상황에 맞춰 변화를 꾀하며 새로운 형태의 OS와 기기(윈도폰7이 탑재된 루미아710)를 내놓기는 했으나, 이미 늦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혁신이란 화두는 이미 아이폰이 선점한 뒤였으니 말이다. MS는 이후 윈도8모바일과 윈도10모바일 OS를 잇따라 내놓았다. 그러나 모바일 시장의 점유율은 갈수록 떨어져 최근에는 1%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굴욕을 맛보고 만다.



그렇다면 윈도폰의 매력은 무엇일까? 흔히들 직관적인 메트로 UI와 PC 친화적인 환경을 꼽곤 한다. 물론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PC와 스마트폰의 경계를 허무는 혁신성에 더 무게를 두고 싶다. 비록 카카오톡 등 다수의 범용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없는 극한의 활용성이라 하더라도 이렇듯 혁신을 기대케 하던 사용자들로 하여금 윈도폰으로부터 쉽게 손을 떼놓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노키아


그동안 윈도모바일OS가 탑재된 단말기부터 윈도CE가 탑재된 PDA폰까지 다양한 제품군들이 나의 손을 거쳐 갔다. OS 특성상 조금 불안하긴 했어도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당시 휴대폰 시장은 기껏해야 폴더폰 내지 터치폰 정도가 대세였으니, 뛰어난 활용성을 갖춘 PDA폰은 단연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냈다. 현재의 스마트폰이 그러했던 것처럼 한 번 PDA에 맛을 들인 사람들은 절대로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만큼 모바일 기기는 참 매력적인 녀석이었다.

덕분에 일반 휴대폰이나 안드로이드폰 등으로 잠깐 갈아탄 적은 있어도 결국에는 윈도폰으로 다시 돌아오곤 했다. 국내에는 더 이상 출시되지 못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윈도폰만의 매력적인 UI와 매끈한 활용성을 잊지 못해 해외직구를 통해서라도 제품을 구입, 지금까지 사용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MS가 마침내 윈도폰에 대한 사형선고를 내렸다. MS는 홈페이지 지원 페이지의 공지를 통해 "올해 12월 10일을 끝으로 윈도10 모바일 기기 지원이 종료된다. 윈도폰으로 불리는 윈도10 모바일 기기 사용자는 연내 아이폰(iOS)이나 안드로이드폰으로 전환하라"고 밝혔다.

비록 아쉽지만 모바일 서비스를 중단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여진다. 시장이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MS의 “아이폰 안드로이드폰으로 갈아타라”는 표현은 어딘가 모르게 씁쓸하다. 기존 사용자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듯한 느낌 때문이다.

MS는 지난해 11월 30일 미국 뉴욕 증시에서 애플을 누르고 시가총액 1위를 차지했다. 시가총액 1위 자리를 탈환한 건 20년 만의 일이라고 한다. 이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윈도폰으로 대변되는 모바일시장에서 부진 속에 빠져 패퇴를 거듭해오다가 결국 패배를 공식 선언한 시점이 바로 공교롭게도 시가총액 1위 탈환 시점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뉴시스


MS는 모바일 시장에서 연신 쓴잔을 마시자 클라우드 사업으로 눈을 돌려 최근 안정적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업계는 클라우드가 MS를 고성장 회사로 탈바꿈시켰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지난 3분기 MS는 클라우드 서비스 ‘Azure’의 성장률이 76%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결국 MS의 격한 표현은 자신감의 발로다. 좋은 말로 표현하면 그런 것이고 사실은 오만함이라고 봐야 함이 맞겠다. 모바일시장을 경쟁자에게 내줬으나 클라우드 시장을 통해 반전에 성공하면서 시가총액 1위를 탈환했다는 자신감에 넘쳐 이렇게 외친 것이다. “아이폰 안드로이드폰으로 갈아타라”



그러나 MS가 결정적으로 간과하고 있는 게 한 가지 있다. 나야 비록 전 세계 1%도 채 되지 않는 사용자 가운데 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십수 년 동안 한결같이 MS의 제품을 이용해온 축에 속한다. 함께 경험하고 감성을 느끼며 성장해왔다.

충성 고객들에 대한 위로와 배려라고는 일절 없이 그냥 무조건 떠나라고 종용하고, 그것도 대놓고 경쟁업체의 제품으로 갈아타라고 외치는 행위는 MS의 제품을 사용하며 쌓아온 오랜 경험과 추억을 일시에 사라지게 하는 무척 섭섭하고 씁쓸한 조처가 아닐 수 없다. 서비스를 그만둔다고 하면 어디로 가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일 사람들인데, 굳이 이런 식으로 표현해야 했을까? 그동안 믿고 사용해온 사람들을 일제히 바보로 만드는,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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