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균형감각 잃은 KB국민은행 파업 향한 시선

새 날 2019. 1. 8.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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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소위 가진 자들의 갑질은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사안이다. 그럴 때마다 사회적 공분이 들끓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갑질에 분노하고 을을 감싸 안는 것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약자를 두둔하려는 심성을 지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 스스로를 을이라는 처지에 가둬두고 자신과 비슷하다고 여기는 계층에 대한 괴롭힘을 차마 견디기 어려워하는 경향이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우리처럼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른바 보통사람들은 스스로를 늘 을이라 여기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 또한 그때그때마다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경향이 크지만 말이다. 균형 감각이 결여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신을 포함한 세상사람 모두는 각기 처한 환경에 따라 갑이 되기도 하고, 을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느 경우에 갑 또는 을이 되는 걸까?


ⓒ한겨레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직장생활을 하게 마련이다. 이 경우 노동자는 을의 신분이다. 우리 삶에서 회사생활이 차지하는 비중은 과연 얼마나 될까? 정확한 통계를 낼 수는 없지만, 어림짐작해보더라도 7,80% 이상은 되지 않을까 싶다. 회사생활의 비중이 크다 보니 우리는 어느 한순간도 늘 을의 처지라는 사실을 손에 쥔 채 놓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갑질에 쉽게 공분하는 건 이러한 경향성 때문이다. 그렇게 해야 주변의 누군가로부터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기 쉽고 이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부지불식간 스며들어버린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일종의 생존본능이다.



그러나 우리는 의외로 갑의 지위에 놓일 때가 많다. 어떤 경우에 그럴까? 다름 아닌 소비자의 입장에 설 때면 그렇다. 특정 제품을 구입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 신분이 을에서 갑으로 갑자기 뒤바뀌는 것이다. 진상 고객이라는 용어의 쓰임새도 이와 관련이 깊다. 자신 또한 노동자라는 을의 처지임에도 소비자라는 갑의 탈을 뒤집어쓴 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을의 처지는 싹 잊은 채 갑의 권리에만 심취하게 되는 것이다. 갑질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닌 이유다. 이렇듯 우리는 처지나 환경에 따라 언제든 갑과 을 양쪽 모두의 입장에 설 수 있다. 

KB국민은행 노조가 8일 총파업에 들어갔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많은 이용객들이 불편을 호소했다고 한다. 또 다시 귀족노조 프레임이 등장한 것이다. 일단 언론보도를 사실 그대로 받아들여보자.


ⓒKBS


“이렇게 본인들 편하자고 시민들 업무를 방해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요구를 하더라도 자신들의 의무를 이행하면서 해야 한다.”거나 "국민에게 피해를 많이 준다. 고객들을 우습게 보는 것이다."는 등의 시민 반응이 언급되어있다. 심지어 "은행이라고 하면 일반 노동자보다 고액, 고급 인력인데 복에 겨워 그러는 것이다." 라는 극단적인 반응도 여과 없이 전달되어있다.



물론 시민들의 입장은 충분히 헤아려진다. 당장 급한 용무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소비자, 즉 갑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없으니 불만이 폭증한 것이다. 그러나 KB국민은행 고객들의 이러한 반응은 전적으로 자신들이 갑의 지위에만 해당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적어도 이때만큼은 자신들이 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눈곱만큼도 하지 않아 벌어지는 결과물이다. 모순은 이로부터 발생한다. 불만을 토로하는 소비자들이 얼마든 노동자라는 을의 처지가 될 수 있음에도 KB국민은행 직원들 역시 사용자에 의해 고용된 을의 처지라는 입장을 전혀 헤아리지 않아 빚어지는 결과물이다.


ⓒ노컷뉴스


더구나 노동자들의 파업행위는 그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헌법에서 보장해주는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 노동3권 가운데 하나다. 즉, 합법적인 권리 행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직원들이 고급인력이며 일반 노동자보다 고액을 받는지의 여부는 객관적으로 알려진 바 없으니 이는 차치하더라도 그들 역시 자신들만의 사정이 있고 헌법에서 보장되는 권리가 침해당하고 있기에 이를 해소해달라며 합법적으로 권리를 요구하고 나선 것뿐이다. 자신들과 같은 을의 입장임을 조금이라도 헤아리고 있다면 지금처럼 얼토당토않은 불만 따위를 토로할 수는 없을 뿐 아니라, 잠깐의 불편함 정도는 지그시 눈감아줄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뉴스1


물론 일반인들의 시선이 지금처럼 노동자들의 권리 행사를 삐딱하게 바라보는 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른바 기레기라 불리는 불량 언론인들, 그리고 자본과 이를 등에 업은 채 오롯이 이들의 입장만 대변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올곧지 않은 행태가 한 몫 단단히 거들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 모두는 언제든 갑의 지위 그리고 을의 지위가 될 수 있다. 작은 이익 앞에서 이러한 진리를 망각해서는 곤란하다. 소비자, 아울러 노동자로서 늘 균형 감각 있는 생각과 태도를 견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고 있음은 못내 아쉽고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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