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유시민, 그의 선택을 존중하고 환영한다

새 날 2019. 1. 7. 21:00
반응형

아이러니하게도 대중들에게 있어 정치인이란 정치혐오를 불러일으키고 부풀려온 주체로 각인돼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치인 하면 일반적으로 권력을 누리고 그에 기대어 비리를 저지르면서 본인은 호의호식, 그리고 주변인들은 호가호위하는 집단 이미지로 그려져 있다. 주권자가 아닌 자신의 개인적인 부귀영달만을 위해 정치 행위를 일삼곤 해왔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다수의 정치인들은 여전히 이러한 목적으로 현실 정치에 뜻을 품고 있기도 하다. 올바른 한 표 행사가 중요한 건 다름 아닌 이 때문이다.

대중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정치인은 수많은 직업인들 가운데 늘 신뢰도 최하위를 기록 중이다. 지난해 한국CSR연구소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의뢰해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발표한 ‘일반인 신뢰지수’에 따르면 22개 조사 대상 가운데 정치인의 신뢰도는 최하위를 기록했다. 대학생과 일반인을 구분한 조사에서도 나란히 최하위였다.

그런데 정치인 자신과 주변인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나머지, 너나 할 것 없이 이 직업인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난 대한민국 사회에서 신기하게도 아예 공개적으로 정치인이 되지 말 것을 충고한 사람이 있다. 생전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정치는 정치밖에 할 게 없는 사람이 하면 되니, 다른 능력이 있는 사람은 정치를 하지 말라.”고 조언하셨다. 정치인으로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모두 겪은 베테랑 정치인의 입에서 나온 발언치고는 참으로 씁쓸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다.



참 신기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앞서도 살펴봤듯 정치인 하면 그 인식이 호의호식에 호가호위 따위로 점철돼있는데 왜 이 좋은 걸 하지 말라며 손사래를 치는 걸까?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정치인, 그리고 대중들 머릿속에 각인돼있는 일반적인 정치인의 이미지는 서로 다른 것일까? 다르다면 도대체 무엇이 다른 걸까?

물론 정치인라고 하여 모두 같은 정치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정치는 매우 좋은 것이며 충분히 할 만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필시 서두에서 언급한 그런 류의 정치인일 공산이 매우 크다. 적어도 생전에 한반도 평화와 번영, 그리고 사회 정의를 실현시키고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그리고 치열하게 싸워온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분이라면 직업으로서의 정치인은 참 쉽지 않은 직무임이 분명하다. 올곧은 정치인이라면 이에 뜻을 두기에 앞서 몹시 망설여져야 정상일 법하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유훈을 받들어 정계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재차 확인했다. 팟캐스트 방송 '고칠레오'를 통해서다. 그는 "제가 만약 다시 정치를 하고, 차기 대선에 출마할 준비를 하고, 실제 출마를 하고, 대통령이 될 수도 있고 떨어질 수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제가 겪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보다 앞서 2013년 정계 은퇴를 선언하면서도 다시는 정치에 발을 딛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은 바 있다.


노무현재단


이후 작가와 방송인으로서 더 잘 알려진 그의 행보는 실제로 그의 과거 주장을 뒷받침할 정도로 정치와는 멀찌감치 거리를 둔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노무현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또 다시 그의 정치 복귀설이 슬며시 고개를 치켜든 것이다. 당시 “임명직 공직이 되거나 공직 선거에 출마하는 일은 제 인생에 다시는 없을 것임을 분명하게 말씀드린다.”고 정치 재개 가능성을 분명히 일축했음에도 말이다.

정치적 진영의 입장이나 범국가적으로는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유시민 이사장이 매우 현명한 판단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아울러 지금까지 그가 보인 행보로 미뤄 짐작해볼 때 그의 인물 됨됨이는 확실히 보편적인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른 종류의 것임을 재차 확인하게 된다. 일반적인 정치의 이미지란 굉장히 원대하고 멋진데 반해 그 속성은 사실 지저분하고 치졸하기 이를 데 없다. 때문에 현실 정치인이 된다는 건, 더욱이 대중성 있는 정치인이 된다는 건, 벌거벗은 채 진흙탕 속으로 뛰어 들어가 서로 뒤엉켜 싸우고 끝내 살아남을 만한 역량을 지닌 싸움꾼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정치의 세계가 얼마나 험악하고 무서운 곳인지는 정치인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대중적인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인물들조차 이곳에 발을 내딛자마자 이내 엉망진창이 되는 사례를 통해 숱하게 경험해왔다.



"정치를 다시 시작하면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이 다 을이 된다며 자신만 을이 되는 게 아니라 가족도 다 을이 될 수밖에 없다."

멀리는 노무현 대통령부터 가까이는 문재인 대통령까지, 수구세력들이 얼마나 그들의 가족을 정치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괴롭혀왔는지 유시민 이사장은 누구보다 지척에서 이를 지켜봐왔을 테니 잘 알고 있을 터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로 운명처럼 정치인의 길로 들어섰으나, 실제로는 그 역시 이러한 이유로 정치 입문을 애초 꺼려했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유시민 이사장은 굳이 현실 정치인이 되지 않더라도 얼마든 우리 사회에 그만의 선한 역량을 마음껏 펼치고 대중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물이다. 물론 진보 진영의 입장에서는 차기 대선에 가장 가깝게 다가선, 상대 진영과의 험한 싸움에서도 눈 하나 꿈쩍 않을 최적의 인재를 눈앞에서 놓치는 셈이니 다소 허탈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울러 국가 전체의 입장에서도 어쩌면 대한민국 사회를 번영시키고, 정의가 밀물 듯이 밀려들어오게 하는 진정한 지도자를 놓치는 상황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범국가적으로도 막대한 손해가 아닐 수 없다.

정치란 야수의 세계다. 아무리 완벽하고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인물이라고 해도 그 지저분한  세계에서 온전히 자신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유시민, 그의 선택을 존중하고 환영한다. 다만, 가짜 정치가 아닌 진짜 정치가 무엇인지 명징하게 인식하고 있는 그야말로 실은 우리 사회의 올곧은 지도자감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객관적으로 확인하게 된 건 다른 무엇보다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