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2018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신조어

새 날 2019. 1. 2.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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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 '2018 KBS 연기대상'을 축하하기 위해 가수 효린이 등장했다. 파격적인 의상을 갖춰 입고 말이다. 자신이 주인공인 무대였다면 멋지다며 오히려 엄지손가락을 번쩍 치켜올렸을 법한 대중들, 이번 무대만큼은 왠지 싸늘한 반응 일색이었다. 왜일까? 이날의 무대는 연기자들이 주인공이자 그들을 위해 마련된 축제였건만, 지나치게 돋보이는, 누군가에게는 민망하기 짝이 없는 의상을 입고 축하 공연을 펼친 돌출 행동 때문이었다. 이를 두고서 여기저기서 '갑분싸'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튀어나왔다.


'갑분싸'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신조어로써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진다' 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 '갑분싸'는 지난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신조어 가운데 하나였다. 카카오가 지난달 21일부터 사흘간 카카오톡의 #탭에서 실시한 ‘카카오톡 이용자가 뽑은 2018 베스트’ 투표 결과, 신조어 부문에서 이 ‘갑분싸'가 33%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가즈아'와 '인싸'가 그 뒤를 이었다.


ⓒ국민일보


신조어에는 보통 시대적 상황이 고스란히 반영되곤 한다. 물론 변화의 흐름 따위도 엿볼 수 있게 한다. 때문에 우리는 이를 통해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 구조를 헤아릴 수 있으며, 더 나아가 트렌드와 향후 방향성 따위를 점쳐보곤 한다. 그렇다면 2018년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신조어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으며, 이에는 무슨 의미가 담겨 있었을까?


카카오톡 등 메신저상에서 일회성으로 소비되는 유행어보다는 그래도 우리의 삶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으면서 가장 많이 회자되었던 신조어를 한 번 떠올려보자. '소확행'과 '워라밸'이 가장 많이 회자되지 않았을까? 실제로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설문조사 플랫폼 두잇서베이가 '2018 유행어'를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최고의 유행어로 '소확행'이 선정됐다.



'소확행'과 '워라밸'은 사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일과 삶이 서로 균형을 이루고, 이를 통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려는 현대인들의 욕구가 고스란히 반영된 신조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조어가 유행하는 데엔 우리 사회가 그동안 너무 앞만 바라보며 지나치게 열심히 달려온 성공 지향의 삶을 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성찰에서 비롯된 바도 없지 않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이상과 현실과의 머나먼 간극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현실을 택한 뒤 어떻게든 삶의 의미를 찾아보려는 자조적인 의미도 내포돼 있다.


이로부터는 일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은 채 삶과 적절한 균형을 맞추고 일상 속에서 조그마한 행복을 찾으려는 소박한 삶의 형태에 관심을 돌리게 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읽히지만, 빠르게 변모하는 시대의 흐름과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으로 인해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자의식이 내포돼 있는 까닭에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하기 짝이 없다.



이와 연관된 신조어 가운데 '무민세대'라는 어휘도 있다. 요즘 젊은 세대의 특징을 관통하는 단어이기도 한데, 이는 꼭 의미가 있는 것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미한 것들로 눈을 돌려 그 자체로 즐거움을 찾는 세대를 뜻한다. 'N포세대', '청년실신'으로 불릴 만큼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의 희생양이 되다시피한 청년세대들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움직임이다. 소확행의 청년 버전쯤 된다.


반면, 자신의 취향이나 생각을 뚜렷하게 밝히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는 점 역시 변화의 흐름 가운데 하나다. 결혼을 아직 하지 않은 사람을 일컬어 '미혼'이라고 표현하기보다,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주체적으로 결정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비혼'이 요즘 젊은 세대에게 더 많이 쓰인다. 이렇듯 불만이나 불호인 취향 등을 당당히 밝히는 현상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이를 의미하는 '싫존주의' 역시 올해를 달군 신조어 가운데 하나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신조어가 있다. 다름 아닌 '인싸'와 '아싸'다. '인싸'는 앞서 카카오가 조사한 결과에서도 3위를 차지할 만큼 자주 사용되었던 신조어다. 지금도 온라인에서는 온통 '핵인싸' 등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인싸'란 인사이더의 약자로, 자신이 소속된 무리 내에서 적극적으로 어울려 지내는 사람을 일컫는다. 반대로 '아싸'란 아웃사이더의 약자로, '인싸'와는 달리 다른 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지내는 사람을 지칭한다. 한 마디로 '인싸'가 주류라면 '아싸'는 비주류를 의미한다.


누군가를 배척하고 차별적인 의미가 담긴 이러한 신조어의 유행 배경에는 사회 구성원들의 강한 생존 욕구가 담겨 있다. 초연결시대로 지칭될 만큼 서로 간에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음에도 오히려 점점 각박해져가는 이 사회 틀 안에서 어떻게든 생존해보려는 발버둥의 의미가 담긴 용어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강퍅해졌다는 반증인데, 일각에서는 이 신조어를 마케팅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어 더욱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2019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또 어떠한 신조어들이 탄생하여 우리의 삶을 반영하고 변화를 이끌 것인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무엇보다 누군가를 배척하는 문화의 일종인 신조어 따위는 모두 사라지고, 아무쪼록 모든 사람들을 두루두루 감싸 안는 따스한 의미의 신조어가 탄생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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