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결국은 휴머니즘 'PMC: 더 벙커'

새 날 2018. 12. 2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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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군사기업 PMC, 에이헵(하정우)을 팀장으로 하는 12명의 용병들이 미국 CIA의 미션 수행을 위해 모처로 모여들었다. 이들의 미션 수행 현장은 DMZ 부근에 위치한 지하 30미터의 벙커, 망명이 계획된 북한의 유력인사를 낚아챈 뒤 무사히 의뢰처에 넘겨주면 마무리되는 미션이었다. 하지만 막상 현장을 급습하니 그곳에는 해당 인물이 아닌 북한 지도자 '킹'이 나와 있었다. 돌출 상황이었다.


에이헵은 어마어마한 현상금이 걸려 있는 킹을 잡는 것으로 작전을 급변경하고 동료들과 함께 그를 납치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미션 완료의 기쁨을 만끽할 겨를조차 없었다. 훨씬 강력한 무기와 규모를 갖춘 또 다른 PMC가 그들을 압박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미국 대로 벙커를 폭발시키기 위해 전투기를 벙커 상공에 띄워놓은 상황이었다. 에이헵이 이끄는 용병팀은 어쩔 수 없이 작전을 또 다시 급변경한다. 오로지 생존하기로..


이들은 과연 벙커를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



김병우 감독이 '더 테러 라이브'로 데뷔한 지 5년이 흘렀다. 방송국 스튜디오라는 한정된 무대 위에서 촬영이 이뤄진 공간적 배경처럼 이번 영화 역시 지하 벙커라는 좁은 공간에서 대부분의 촬영이 이뤄진다. 공교롭게도 '더 테러 라이브' 개봉 즈음 이 작품이 구상되고 제작에 돌입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무려 5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셈이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영역인 돈을 받고 전쟁 등의 작전에 투입되는 군사기업 PMC와 그에 소속된 용병을 소재로 한다. 좁디좁은 지하 벙커 내에서 이뤄지는 치열한 액션신은 보는 재미를 더하기 위해 다양한 촬영기법이 동원됐다.



마치 게임을 실제로 하는 것처럼 생동감을 전달해주는 1인칭시점의 촬영뿐 아니라 촬영 전 머릿속으로 구상한 이미지를 컴퓨터상에서 구현해봄으로써 실제 제작 단계에서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는 작업 과정인 프리비즈, 그리고 벙커 공간을 매력적으로 비춰 역동적인 화면으로 탈바꿈시키는 드론 촬영 기법 등이 그에 해당한다. 덕분에 관객들은 비록 한정된 공간에서의 액션이지만, 다양한 각도에서 보다 입체적인 시각으로 각각의 장면을 관람할 수 있게 됐다.



영화 속에서 미국은 패권국가로서의 면모를 가감없이 드러낸다. 오로지 자국의 대통령선거 승리를 위한 묘략 짜내기에만 급급할 뿐 특정국가의 존망이나 용병의 죽음 따위에는 애초 관심조차 없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패권국가가 그려놓은 큰 그림 아래에서 영문도 모른 채 수많은 용병들은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곧 거대한 무덤으로 돌변하게 될 벙커 속을 헤집고 다닌다. 패권을 쥔 국가의 이익 앞에서는 전쟁과 테러마저도 비즈니스로 전락하는 이 냉혹한 현실, 노선이나 이념 등의 가치는 지급 받는 돈의 액수에 따라 손바닥 뒤집히듯이 얼마든 뒤바뀔 뿐이다.



외국인 배우들이 출연하는 작품에서 항상 느끼는 사항이지만, 이번 작품 역시 우리 배우와 외국인 배우 사이의 자연스럽지 못한 조화와 무언가 이질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간극은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1인칭시점의 액션신은 그 자체로 쫀득하고 긴장감을 배가시키며, 연출력을 돋보이게 하는 음향효과와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작전 상황은 관객으로 하여금 몰입감을 최고조에 이르게 한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지금처럼 자신의 일 외에 관심을 갖지 않고 외면하게 되면 결국 전쟁이 벌어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하소연하던 용병(스펜서 다니엘스)의 주장은 왠지 섬뜩하지만, "사람 살리는 데 특별한 의미가 있냐"며 위급한 상황에서도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에 충실히 따르듯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희생을 마다않던 북한 의사(이선균)의 선한 의지와 낙하산이 펼쳐지지 않아 그대로 추락하는 동료를 나몰라라 하지 않고 자신의 낙하산을 이용해 함께 착지, 결국 의족을 달게 된 에이헵의 살신성인은 희망이 되어주기에 충분하다.



이 영화가 가치 있게 다가오는 건 비단 화려한 액션과 볼거리, 그리고 관객을 전율케 하는 음악 및 음향효과 때문만은 아니다. 이러한 공감각적 효과는 다른 작품을 통해서도 얼마든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에이헵은 또 다시 해낸다. 좁은 벙커 안에서 거의 초죽음이 되다시피했던 그가 동이 트며 점차 형형색색으로 물들어가던 광활한 하늘 위, 그곳에서 자신의 몸이 망가질 것임을 익히 알고도 선의를 지닌 또 다른 한 사람, 오로지 그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던진 것이다. 가슴을 쿵쾅거리며 크게 진동시키는 웅장한 음악과 함께.


지금 이 시각에도 전국 상영관에서 인기리에 상영중인 슈퍼 히어로였다면 아마도 이러한 일쯤 가뿐하게 해결할 수 있었겠지만, 따듯한 피가 흐르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이를 서로 나눠가질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토록 눈물 나도록 어려우면서도 지난한 과정을 거쳐 고난을 이겨내고 마침내 해낼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결국은 휴머니즘이다.



감독  김병우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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