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결혼은 사양할게요

새 날 2018. 12. 26.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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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부모는 자식이 장성했으니 '당연히'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살아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반면 20대 후반의 자녀는 결혼할 의사가 전혀 없으며 자신에게 부모님의 삶의 방식을 강요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두 사람의 언쟁은 그 간극이 좁혀들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고의 틀이 워낙 견고하고 각기 달라서다. 자녀는 부모가 자신의 입장을 헤아려주고 의사를 존중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반대로 부모는 너무도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 비정상적(?)이고도 지극히 이기적인(?) 사고방식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결혼, 기성세대는 이를 통과의례로 바라보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크다. 예전 같았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었으나 근래에는 결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다가온다. 결혼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진 셈이다. 결혼관이 바뀌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사회의식 조사’ 결과 ‘결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48.1%에 불과했다. 절반 이상이 결혼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커다란 변화다.



이쯤 되니 50대 부모와 자녀 사이의 좁혀지지 않던 그 간극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일상에서 사용되는 어휘에도 변화의 조짐은 읽힌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흔히 '미혼'으로 불린다. 이 용어에는 언젠가 결혼을 할 것이고, 단지 아직 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밑바탕에 깔려 있는 셈이다. 근래에는 '미혼'보다 '비혼'이라는 용어가 더 자주 쓰인다. 미혼과 마찬가지로 결혼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담겨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결혼이라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처음부터 스스로가 이의 주체가 되겠노라는 일종의 선언적 의미가 내포돼 있다.


더 나아가 부부가 됨을 알리는 결혼식처럼 아예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겠음을 대외적으로 선포하는 의식인 '비혼식'을 치르는 이들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23일 방송된 SBS 스페셜 '결혼은 사양할게요' 편에서는 이른바 비혼을 선택한 이들의 생각을 훑고, 그들의 생활 패턴을 파고 들었다. 결혼은 해도 후회, 하지 않아도 후회한다는 속설이 존재한다. 이는 비교적 사실에 가깝다. 그런데 청년세대들이 이를 놓고 손익계산서를 두드려보았는가 보다. 전자가 훨씬 손해였다. 이날 방송에 출연한 비혼주의자들의 주장은 한결같았다.



결혼은 개인과 개인과의 결합이 아닌 가정과 가정의 결합이 되다보니 줄줄이 엮이는 게 너무 많다. 속된 표현으로 한 보따리이다. 그러다보니 이런 것들이 삶의 족쇄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육아와 이로 인한 경력단절도 큰 짐이었다. 결혼을 통해 누릴 수 있는 심리적 정서적 안정보다는 그로 인해 굴레가 되고 짐으로 다가오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혼자이기에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요소들을 결혼이라는 계약과 동시에 모두 포기해야 하는 그 막막한 현실이 너무도 불합리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결혼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편견으로 바라보거나 차별이 가해지는 행위를 거둬들였으면 하는 속내도 드러냈다. 다행히 정부의 최근 움직임은 이러한 비혼주의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지난 7일 발표한 '저출산 고령사회 정책 로드맵'에 따르면 정부가 비혼 출산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 자녀의 성(姓) 결정 방식을 부성 우선원칙에서 부모협의원칙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비혼주의자들에 대한 차별 방지에 역점을 둔 정책이다.



결혼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시대는 어느덧 저물어간다. 반대로 다양성이 존중 받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는 정답이 없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취업하여 그곳에서 평생을 몸담고 일하는 천편일률적인 삶의 양태에 반기를 들고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가려 하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다. 이렇듯 저마다의 다양한 삶을 존중해주어야 하는 것처럼 결혼 역시 이를 반드시 해야 한다기보다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절실하다.


이러한 담론들이 오고가고, 그러다보면 결혼이라는 합법적인 굴레 속에서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지나치게 개인을 희생시키고 불편을 강요 당해오던 관행들도 조금씩 누그러지며 변화가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갖게 된다. 



* 이미지 출처 : SBS 영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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