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 '얼굴도둑'

새 날 2018. 12. 23. 20:14
반응형

부동산 회사에 근무하는 40대 남성 세바스티앙 니콜라(마티유 카소비츠)는 자신의 삶에 영 만족스러워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런 걸까? 워낙 말수가 적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성격 탓에 다른 사람들 무리 속에 섞여 있을수록 존재감은 그들과 함께 조용히 묻히고 만다. 그런 그에게는 매우 독특한 취미 하나가 있다. 아니 취미라기보다는 그만의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표현이 왠지 더 적절할 것 같다.


그가 업무차 고객에게 소개해준 집으로 몰래 숨어 들어가 고객 얼굴의 본을 뜨고 이를 자신의 얼굴에 뒤집어쓴 채 그의 삶을 모방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활도 이젠 이골이 난 건지 임계치에 이른 듯싶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싶어하는 그의 삶의 태도에는 회의감이 짙게 배어나온다. 그러던 어느날,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인 몽탈트가 그에게 부동산을 의뢰해 오고, 비록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웠지만 비교적 흡족할 만한 물건을 알선시키는데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니콜라는 문득 몽탈트의 삶을 모방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 왠지 그의 삶을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욕망이 내면에서 꿈틀거린다. 이내 행동으로 옮기는 니콜라다. 몽탈트가 집을 비운 사이 그의 거처로 몰래 숨어들어간 그는 몽탈트의 얼굴 본을 뜨고 마침내 동경해 마지않던 몽탈트로 둔갑한다. 몽탈트에겐 과거 연인이었던 클레망스(마리 조지 크로즈)와 아들 뱅상이 있었으나 몽탈트는 무슨 연유에서인지 그들을 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었다.



몽탈트로 변신한 니콜라는 이러한 클레망스와 우연히 마주하게 되고, 그녀가 아들 뱅상을 한 번 만나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는 바람에 어쩔 도리 없이 이를 승낙하고 만다. 뱅상을 만난 니콜라는 자칫 일이 꼬이게 될까 봐 본의 아니게 점차 몽탈트의 삶, 특히 클레망스와 관련된 이것저것에 깊숙이 관여하게 되는데... 



영화는 니콜라가 자신의 주변을 말끔하게 정리하고 집에서 자폭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폭발의 충격으로 인해 집안의 유리창이란 유리창은 모두 산산조각나고 시뻘건 불기둥과 그 파편들이 사방으로 튕겨져 나오면서 주변에 세워져 있던 차량 등이 일제히 파손된다. 니콜라는 왜 이토록 끔찍한 방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걸까? 영화는 니콜라의 자살 시점으로부터 시간을 되돌려 그의 따분하기 짝이 없는 일상 속으로 관객들을 끌어들인다. 관객들은 이윽고 니콜라의 놀라운 이면을 발견하게 된다.



지극히 평범하게 생긴 우리는 잘난 사람들의 외모와 견주며 우리 역시 그들처럼 생겼다면 인생이 혹시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공상에 빠져들곤 한다. 타인의 얼굴 본을 떠 이를 자신의 얼굴에 덧씌워 감쪽같이 외양을 바꾸는 주인공 니콜라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갔다. 단순히 외모만을 바꾸려는 게 아니었다. 얼굴을 바꾸고 그 사람의 행동과 말투를 그대로 흉내내며 아예 그의 삶 자체를 모방하고 싶어했다.



적어도 영화 속에서의 니콜라는 그러한 방면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였다. 얼굴을 똑같이 만드는 건 물론이었으며, 행동과 태도마저도 원래의 것을 완벽하게 옮겨 오곤 했으니 말이다. 업무적인 것이 됐든 아니면 개인적인 필요에 의했든 자신이 모방하고 싶어 하는 인물을 점찍으면 여지없이 그 사람의 외모로 변신하고 삶을 흉내내는 니콜라는 영화의 제목처럼 단순히 얼굴도둑이 아닌 인생도둑이라는 표현이 오히려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캐릭터다.


1인 다역의 연기를 소화한 주연 마티유 카소비츠를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무척 쏠쏠한 작품이다. 세바스티앙 니콜라로부터 몽탈트에 이르기까지, 그밖에 또 다른 캐릭터까지, 그 귀찮다는 분장을 매번 마다하지 않은 채 완벽하게 소화한 그의 열연은 결코 놓칠 수 없는 관람 포인트다.


한 여성과 사귀고 자식까지 낳았으나 헤어진 뒤 사람을 멀리하게 되고 오로지 반려견과 함께 생활하는 몽탈트, 예술적인 재능 및 감성은 이렇듯 고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인 걸까, 아니면 몽탈트 그의 성격이 그저 괴팍한 것뿐일까? 어쨌거나 니콜라는 가짜 몽탈트가 되어 그의 과거 연인 클레망스 및 아들 뱅상을 만나 아슬아슬하게 인연을 이어가면서 비로소 삶에 대한 의욕을 회복한다. 자신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묘한 캐릭터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캐릭터는 우리 주변에도 제법 흔하지 않을까?



'이생망', 이번 생은 망했다는 신조어다. 언젠가부터, 아니 보다 정확히는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 청년들의 자조감 섞인 표현인 '헬조선'과 함께 대한민국 사회 전반을 휩쓴 용어다. SNS의 발달과 초연결시대에 걸맞는 온갖 소통 도구들이 횡행하는 숨가쁜 삶, 그러다 보니 주변의 누군가와 자꾸만 비교하면서 왜 나의 삶만 이토록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지, 오늘도 이생망을 외치면서 남의 것을 부러워하고 탐내는, 혹시 우리 스스로가 바로 세바스티앙 니콜라는 아닐는지..



감독  매튜 델라포테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