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소확횡, 작지만 확실한 범죄 행위

새 날 2018. 12. 5.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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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결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 앞서 가기는커녕 워낙 따라가는 일만으로도 버겁다보니 정신줄을 놓치기 십상이다. 특히 N포세대라 불리는 청년세대에겐 작금의 시대가 더욱 벅차게 다가온다. 기술발달이 인류에게 유토피아를 선물해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과는 달리 외려 더욱 고달프고 외롭게 둔갑시키고 있다. 이의 대안일까? 좀처럼 극복하기 쉽지 않은 고단한 현실 앞에서 현대인들은 거창한 행복보다는 비록 작지만 확실하게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들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긍정적인 구석이 엿보이는 변화다.


이렇게 하여 탄생한 신조어가 바로 '소확행'이다. 좋게 표현하면 비로소 참 행복을 실천할 기회를 찾았노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사실은 우리 각자 앞에 놓인 어려운 현실을 타개하기가 도무지 여의치 않다 보니 지레 포기하는, 현대인들의 자조적인 표현에 가까운 까닭에 도리어 씁쓸하기 짝이 없다.


사람들은 때때로 엉뚱하다. 정작 필요할 땐 숨을 죽이고 있다가 쓸 데 없는 곳에서, 즉 잉여 영역에서 없던 창의력이 폭발하곤 한다. 자조적인 의미의 소확행이 신조어로 등극하며 유행하다 보니 이의 응용 버전도 함께 만들어져 패키지로 유행이 되고 있다. 일종의 패러디이자 언어유희에 가까운데, 작지만 확실한 횡령이라는 의미의 '소확횡' 놀이가 직장인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통상 횡령이라는 용어를 꺼내들면 무시무시한 느낌부터 들기 십상이지만, 소확횡에서의 횡령은 사실 도둑질이라는 의미보다 되레 아이들의 장난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소소한 일탈 행위의 인증 놀이를 통해 현실의 어려움과 불만을 토로하고자 하는 직장인들의 속내가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평소 제집 드나들듯 하는 탕비실, 원래는 믹스커피 한 개가 정량이지만, 일부러 두 개를 타 마신다.

충전은 반드시 회사에서만 한다.

아주 작은 상처에도 회사에서 제공되는 밴드를 붙인다.

굳이 닦지 않아도 될 만큼 깨끗한 책상을 회사 물티슈를 활용하여 수 차례 닦고 또 닦는다.



이는 직장에서 일을 하며 쌓인 스트레스를 사소한 복수를 통해 재미 삼아 해소하자는 의도에서 비롯된 행위이다. 이 정도라면 평소 우리 조직 문화로 볼 때 그냥 애교로 봐줄 만한 수준일지도 모른다. 아울러 직장을 다니면서 솔직히 비품이 됐든 아니면 다른 물건이 됐든 회사 물건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았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줄로 안다. 그도 아니라면 적어도 시간을 훔친 사례라도 있을 줄로 안다. 물론 이러한 이유로 소확횡을 일삼는 직장인들 모두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의미는 결코 아니지만 말이다.


회사 입장에서도 소소한 지출을 통해 직원들이 불만을 토로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반대로 생산성을 높일 수만 있다면 오히려 이득이 될 공산이 크다. 정말 심각할 정도로, 그러니까 누가 보더라도 도둑질에 해당할 만큼의 비용을 축내는 수준의 일탈 행위가 아니라면 회사 입장에서도 모른 척 눈 감는 게 이득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어쩌면 소확횡은 인정을 하든 그렇지 않든 조직 내에서 비공식 소통의 장으로써 자신의 소임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간혹 회사 비품을 의도적으로 뭉텅이째 가져가거나 간식거리 따위를 양껏 슬쩍 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만일 이런 사례라고 한다면 이미 소확횡의 범주를 넘어섰다고 간주된다. 소확횡이 실제로 불합리한 조직 문화에 찌들고 일에 치인 직장인들에게 소소한 희열를 안겨주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게 해주는 순기능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정확하게 파악된 바 없다. 다만, 소확횡 놀이에 직접 참여하고 이에 열광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럴 것이라 짐작하게 할 뿐이다.


혹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 비품을 조금씩 횡령하게 될 경우 회사의 입장에서는 제법 커다란 비용이 소요될 수 있기에 소확횡은 옳지 못하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비용 따위가 아니다. 정작 문제는 이러한 행위를 통해 우리가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선을 재미 삼아 혹은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너무도 쉽게 넘나든다는 데 있다. 십 원짜리가 됐든 백만 원짜리가 됐든 무언가를 횡령한다는 건 엄연한 범죄 행위 아닐까?


조직 내 불합리한 상황과 불만을 표출하기 위함이라지만, 아울러 재미 삼아 하는 보잘 것 없는 일탈 행위라고 하지만, 어쨌거나 우리에겐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것과 지켜야 하는 것들이 있다. 작금의 소확횡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그냥 슬쩍 밟았을 뿐이라는 핑계로 반칙을 인증하며 공공연하게 부추기고, 너나 할 것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를 공유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하는 행위이다. 해외 사례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소확횡이란 사실 아주 작지만 확실한 범죄 행위임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적어도 이런 영역에서 만큼은 둔감력이 발휘되어서는 곤란하다.



* 이미지 출처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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