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우리가 슈퍼히어로 영화를 더 많이 봐야 하는 이유

새 날 2018. 12. 2.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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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11월 의암호에 승용차가 빠지는 긴박한 현장을 목격하고 그 차가운 기온에도 불구하고 지체없이 물로 뛰어들어 운전자의 생명을 구한 세 청년의 이야기가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사고를 당한 차량 운전자와 이 청년들은 전혀 일면식도 없는 관계였습니다. 이들처럼 위급한 상황에서 헌신적인 도움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살려내는 미담이 간혹 올라와 차갑게 식어 있던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곤 합니다.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칫 자신들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는 상황, 이처럼 누구나 쉽게 행하기 어려운 일을 해낸 이들을 향해 우리는 서슴없이 엄지척 내밀며 의인이라 칭합니다. 어려움에 처한 타인을 돕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의인들의 뒷모습은 흡사 영화속 슈퍼히어로의 그것을 빼닮은 듯합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슈퍼히어로의 존재를 단순히 판타지적 재미의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규정 지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영화속 슈퍼히어로의 이미지를 보면 타인을 돕는 배려와 희생정신이 더욱 강해진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기 때문입니다.


ⓒ한겨레


이러한 결과는 얼마 전 집에 책을 많이 꽂아둘수록 사람들의 지적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는 내용처럼 무척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호주국립대 사회학과와 미국 네바다대 응용통계학과 공동연구진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책을 읽지 않고 단순히 책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들의 학업 성적이 오르는 등 교육 성취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집에 책이 많이 있는 분위기에서 자란 성인들은 언어 능력, 수학 능력, 컴퓨터 활용 능력이 뛰어났으며, 그에 반해 책이 거의 없는 환경에서 자란 성인들은 읽고 쓰는 문해력, 수리력, 컴퓨터 활용 능력이 평균 이하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부지런히 책 사 모으는 일을 내심 부러워하면서도 겉으로는 읽지도 않는 책 장식용으로 그저 쌓아만 놓는다고, 혹은 지적 허영심이라며 괜스레 비아냥거리곤 했는데, 앞으로 그래서는 곤란할 것 같습니다. 앞서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가정에 있는 장서의 규모가 적어도 80권에서 350권 이상은 되어야 교육 성취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 가족 구성원이 지금보다 조금 더 똑똑해지려면 적어도 이 수준에 이를 때까지는 지적 허영심이니 뭐니 따지지 말고 어쨌든 책을 열심히 사 모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듯 책이 갖고 있는 의외의 고유한 효험처럼 마블 등에서 제작한 슈퍼히어로 영화를 많이 볼수록 타인에 대한 배려심과 희생정신이 강해진다고 하니 책을 구입하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이들 시리즈물이 근래 너무 많이, 그리고 자주 출시되는 분위기와 더불어 이를 관람하는 행위에 대해 왠지 딴지를 걸어서는 곤란할 것 같습니다. 아니 반대로 배려심이 함량 미달인 데다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마저 만연해 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되레 이들 영화 관람을 더욱 장려해야 하는 건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미국 버지니아 코먼웰스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스파이더맨이나 아이언맨 같은 히어로 캐릭터의 이미지를 본 사람들은 평범한 사물을 본 사람들에 비해 친사회적 경향성이 더욱 짙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연구진은 실험을 통해 이와 같은 경향성을 직접 입증해 보였습니다. 123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영웅 캐릭터 이미지와 중립적 사물 이미지를 보여준 뒤 어려움에 처한 이를 도와야 하는 가상 상황에 놓이게 하는 실험을 한 결과, 영웅 캐릭터 이미지를 본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대가가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타인을 돕기 위해 더 많이 나선다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서울신문


여느 때처럼 차량들이 바쁘게 오가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교통 상황, 자동차 한 대가 바닥을 위로 한 채 도로 한가운데에 드러 누워 있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것입니다. 차량에 탑승하고 있던 사람들은 꼼짝없이 안에 갇히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차량에 불마저 붙고 말았습니다. 이 긴박감 속에서 곁을 지나던 차량들이 하나둘 멈춰 서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 역시 사고 현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전복된 차량에 달라 붙어 안에 있던 사람이 빠져나올 수 있도록 일제히 차량을 들어 올리기 시작합니다.



곁에 있던 누군가는 소화기로 불을 끄고, 또 다른 사람은 휴대전화로 구급차를 부릅니다.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지체없이 사고 현장으로 뛰어든 사람들, 이들을 움직이게 한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은 채 어려움에 처한 타인을 구조하고 어느 순간 뿔뿔이 흩어져 일상으로 돌아가는 의인들, 아니 이 시대의 진정한 슈퍼히어로들, 이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한결 따뜻해질 것입니다. 슈퍼히어로 영화가 지금보다 더욱 많이 등장해야 하고, 우리가 이를 많이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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