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타인의 불행을 흥미로 소비하는 현대인들 '선량한 시민'

새 날 2018. 12. 1. 19:07
반응형

은주는 한 가정의 주부다. 남편의 사업이 실패한 이래 시부모의 집으로 들어와 아이들 둘과 함께 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40대 아줌마다. 시부모의 집은 흡사 과거로 돌아간 듯 개발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변두리 외진 곳에 위치해 있다. 최대한 세를 많이 놓을 요량으로 디자인 개념이라곤 일절 없이 건평만 크게 늘려놓은 이 집은 요즘 유행하는 최신형 아파트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은주는 이곳에서 한창 공부 중인 아들과 딸 그리고 남편과 더불어 몸이 아파 거동이 불편한 시아버지의 수족이 되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와중이다. 그녀는 언젠가 독립하여 자신만의 음식점을 차리기 위해 요리를 배우고 있지만, 경제권을 움켜 쥐고 있는 시아버지의 태도를 보아서는 그날이 언제쯤 오게 될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어쨌거나 그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그녀는 오늘도 묵묵히 시아버지의 시중을 들고, 또 한 가정의 살림을 꾸려 나간다.


그녀는 사실 너무도 평범하여 눈에 잘 띄지 않는, 그런 스타일의 여성이다. 그러던 어느 날 평범하기 짝이 없던 그녀가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그것도 뚜렷한 동기 없이 말이다. 동창 모임에 갔다가 밤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하천가에서 소변을 보던 아저씨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무방비 상태인 그를 두 손으로 밀기만 하면 왠지 그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래서 그의 곁으로 다가가 볼일을 보던 그를 실제로 뒤에서 확 밀어버린 것이다.



이후 그녀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집으로 돌아왔고, 그렇게 하루가 지난다. 다음 날 하천가에서는 그의 사체가 발견된다. 경찰은 특별한 살해 흔적이 없어 단순 실족사로 사건을 마무리 짓는다. 그러나 그를 살해하던 현장을 목격했다는 사람이 나타나고, 이 목격자는 살해 용의자로 은주를 지목한다. 곧이어 은주는 경찰서에서 관련 조사를 받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물증이 부족하고 그녀의 알리바이가 거의 확실하여 얼마 후 풀려나는데..


은주는 일단 집으로 돌아오긴 했으나 누군가 자신의 행위를 목격했다는 사실이 못내 찜찜했다. 평소처럼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싶지만 목격자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는 바람에 어떤 일에도 몰두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사건의 목격자란다. 드디어 협박이 시작됐음을 직감하는 은주다. 그가 누구인지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실수가 아닌 이상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은 보통 특별한 목적을 지니고 있게 마련이다. 우발적이 됐든 원한을 지녔든 아니면 재물 따위의 무언가를 앗아가기 위함이든 그도 아니면 오로지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든, 상대를 살해할 만한 뚜렷한 동기가 있다는 의미다. 그에 비해 은주의 살해는 실수도 아닌 데다가 그렇다고 하여 특별한 목적 의식을 띠지도 않은 단순한 행위에 불과했다.


더욱 어처구니가 없었던 건 사람을 죽였음에도 그녀는 죄책감 따위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노라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여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사이코패스적 성향을 지니고 있지도 않다. 하천에서 소변을 보던 아저씨를 죽인 이후 은주는 평소의 삶을 되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소설은 은주의 살해 목격자가 전면에 등장함과 동시에 새로운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완전범죄가 되어야 온전하게 일상의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은주는 목격자를 없애버리기로 결심하지만, 그의 잔꾀에 넘어가 또 다시 엉뚱한 사람을 죽이고 만다.


두 사람이 연이어 사망한 마을은 이제 연쇄살인범에 의한 행위라는 흉흉한 소문마저 떠돌기 시작한다.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고 허둥대는 경찰서에도 비상이 걸렸다. 파견 온 경관과 파출소 직원 사이에서 알력과 갈등이 발생, 사건 해결은 고사하고 더욱 오리무중이 되어 간다. 평범하기 짝이 없던 한 가정주부의 일탈 아닌 일탈 행위는 어느덧 나비효과가 되어 온 마을을 뒤숭숭하게 헤집어놓고 만 셈이다. 그 사이 마을에서는 두 사람이 더 죽어 나간다. 뒤숭숭한 마을 뒷산에는 연쇄살인범 놀이를 한다며 몰려든 아이들로 인해 연일 북새통을 이루고, 연쇄살인범에 의한 범죄로 기울어갈수록 은주의 살인 행위는 점차 완전범죄에 근접해 가는 아이러니한 일이 빚어진다.



동기 없는 이 발칙한 살인 사건의 발상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작가는 지난 2009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용산참사에 천착했다. 이로부터 소설의 영감을 얻었노라고 한 매체를 통해 밝힌 바 있다. 이 끔찍한 사건으로 다수의 시민이 희생되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남의 일인 양 누군가의 안타까운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다. 은주가 아무런 목적 없이 한 남자를 죽이고, 뒤이어 목격자를 살해할 목적으로 또 다른 남자를 죽이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저 남의 일인 양 영화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연쇄살인의 형태로 이를 소비해 나가듯이 말이다.


동네 아이들이 연쇄살인범 놀이를 하겠노라며 마을 뒷산으로 몰려가 장난을 치고, 또 그러다가 한 사람이 죽어가나는 장면은 그와 관련한 가장 극적인 사건이다. 자극적인 소재에 길들여진 나머지 현대인들은 누군가의 안타까운 죽음마저도 흥미거리나 놀이로 소비하곤 한다. 팔레스타인의 거주 지역에 미사일 공격을 퍼붓는 광경을 전망 좋은 언덕 위에 올라가 맥주를 마시며 소비하는 이스라엘인들, 그리고 시리아 내전 상황을 관광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려 했던 러시아의 한 관광회사, 소설속 마을 사람들의 행태는 타인의 고통과 불행을 놀이나 관광 등으로 소비하던 이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셈이다.



저자  김서진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