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삶의 토대를 뒤바꿔놓은 '국가부도의 날'

새 날 2018. 11. 30.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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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대한민국은 OECD에 가입, 선진국에 진입하기라도 한 양 사회 전체가 온통 술렁거렸다. 이를 입증하기라도 하듯 각종 경제 지표는 호황 일색이었다. 어느 누가 보아도 대한민국의 경제 상황은 지극히 낙관적이며 이를 의심할 만한 구석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와중에도 곧 국가부도를 불러올 만큼 엄청난 규모의 경제 위기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견한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이었다. 


이 같은 내용이 윗선에 보고되고, 정부는 국가부도 사태를 막기 위해 뒤늦게 경제 전문가로 이뤄진 비공개 대책팀을 부랴부랴 꾸리게 된다. 당시 위기 해결 방식을 놓고 대책팀 내부의 의견은 첨예하게 갈리고 있었다. IMF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재정국 차관(조우진) 측의 주장과 IMF의 도움 없이 해결 가능하다는 한시현 팀장 측의 주장이 바로 그에 해당한다. 그러나 한시현 팀장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결국 IMF총재(뱅상 카셀)를 비밀 리에 입국시켜 그들 입맛에 맞도록 협상을 이끌어 가는데... 



'국가부도의 날'은 20년 전 대한민국 사회를 미증유의 혼돈과 아비규환 속으로 몰아넣었던 외환위기 사태라는 긴박했던 상황에 영화적 상상력이 덧대어져 탄생한 작품이다. 영화는 크게 세 개의 축으로 나뉜다. 하나는 국가부도라는 초유의 사태 앞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정책 당국, 그리고 곳곳에서 감지되는 위험 신호를 포착, 재직 중이던 금융기관에 사표를 던지고 국가부도의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바꿨던 인물인 윤정학(유아인), 마지막으로 소규모의 공장을 운영하면서 소박한 일상을 꿈꾸던 한 가정의 가장 갑수(허준호)가 영문도 모른 채 겪게 되는 고통이 바로 그렇다. 



그러니까 영화는 IMF의 도움 아닌 도움을 통해 국가부도의 위기로부터 탈출하게 되는 막전막후의 과정과 그의 여파로 평범한 소시민들의 삶이 어떤 식으로 풍비박산이 나게 되며, 다른 방식으로 삶을 영위하던 또 다른 이들은 어떻게 이 엄청난 위기 앞에서 과감히 기회로 바꿔 삶의 지형을 바꾸게 되는지 등 다양한 각도로 그려 나간다. 



영화를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지만, 정부의 정책은 한결같다. 기업 친화적이다. 아니 대기업과 재벌 친화적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작금의 외환 위기 상황 앞에서 IMF가 개입한다는 건 대기업과 재벌만을 살리고 여타 작은 기업이나 서민들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뜨린다는 의미다. 당시 정부와 관료들은 이와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으면서도, 아울러 굳이 IMF가 아니더라도 당시의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IMF와의 협상을 속전속결로 타결 짓고 만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언론의 태도 역시 문제투성이가 아닐 수 없다. IMF의 도움 없이 작금의 위기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이 엄연히 존재했고, 정부가 서민들을 희생양 삼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음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주장하는 목소리에는 침묵으로 일관한 채 오로지 친재벌 친기업을 표방하는 정부의 독단적인 목소리에만 힘을 실어주면서 오늘날의 결과를 빚게 했다는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IMF와의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개입한 정황은 이미 잘 알려진 바다. 미국은 우리나라의 일시적인 외환 보유고 부족을 역이용, IMF를 내세워 알토란 같은 기업들을 헐값에 매입하여 엄청난 이득을 챙겼고, 우리 경제의 체질을 저들의 입맛에 맞도록 대대적으로 변화시켜 서민들의 삶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주범이다. 이 과정에서 일본에 강한 압력을 행사, 우리가 자연스럽게 IMF로부터 도움을 청하도록 분위기를 조성, 미국과 일본 등 자본을 틀어쥔 국가들에 의해 철저히 농락 당하고 만다. 


당시 우리 정부나 관료들의 사고 회로에 얼마나 심각한 오류가 있었는지는 외환 위기를 촉발한 원인을 국민들에게 전가시키는 대목으로부터 엿볼 수 있다. 잦은 해외여행 등 돈을 펑펑 쓰고 다니는 국민들 때문에 국가부도 위기가 촉발됐다는 주장이다. 금모으기운동을 통해 십시일반으로 위기 극복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국민성을 폄훼해도 이쯤 되면 정도가 지나친 게 아닐까 싶다. 



외환위기로부터 20년이 지난 우리 사회, 당시의 상흔은 여전히 우리의 삶을 옥죄어 온다.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효율화라는 명분은 우리 사회에 비정규직이라는 형태의 일자리를 대규모로 양산하였고, 덕분에 모두가 안정성을 직장 선택의 최고 덕목으로 꼽게 되면서 공무원과 교사가 1등 직업으로 등극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업들은 배를 불려나가는 데 반해 개인들은 점점 가난해지고 있으며,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고착화되거나 심화되어가고 있다. 팍팍해진 삶 속에서 그나마 과거에는 계층 상승을 꿈꿀 수 있었으나 이제는 그마저도 사라지고 없다. 계층 이동 사다리가 끊긴 지 오래다. 


며칠 전 통신대란을 불러온 서울 KT 아현지사의 화재 사건도 IMF 외환위기의 연장선이다. 국가의 기간산업 가운데 하나인 통신 회사에 정작 기술자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단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가능한 걸까? 이익과 효율화가 만능인 상황에서 비싼 인건비는 낭비적인 요소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렇듯 단순한 화재 사고가 엄청난 통신 대란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던 건 핵심 인력인 통신 기술자마저도 효율화라는 이름 하에 모두 외주를 준 덕분이다. 앞으로 더 큰 통신 대란이 도래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실정이다.


삶의 토대를 바꾼 '국가부도의 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감독  최국희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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